"내가 누구랑 말해 본적이 하두 오래돼서"
상태바
"내가 누구랑 말해 본적이 하두 오래돼서"
  • 김인자
  • 승인 2017.04.18 07: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38) 강낭콩 심는 할머니
 
뭐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하루 종일 설사를 하다 탈수현상이 와서 늦은 밤에 응급실에 다녀왔다.
새벽에 가평에 있는 방일초등학교에 강연가야 하는데 아프면 안되는데... 응급실 과장선생님이 며칠 입원해서 검사도 하고 주사도 맞아야한다고 하셨는데 약만 처방 받아 집에 왔다.
늘 그렇듯 나는 강연가는 날 새벽이면 정신없이 바쁘다. 밤새 한 숨도 못자고 이거저거 챙기느라 부산스럽다. 식구들 아침도 챙겨야하고 애들 먹을 과일도시락도 두 개씩 싸야하고 무엇보다도 새벽 4시 30분이면 샤워를 하셔야하는 심계옥엄니 씻겨드리고 식사 챙겨드리고 치매센터 가실 때 입으실 옷 챙겨서 입혀드리고 나면 시간에 쫒겨서 정작 나는 세수만 간신히 하고 뛰어나오기 일쑤다. 하여 화장도 차에서 하거나 미리 강연장에 도착해서 하거나 기차안에서 한다.
 
오늘도 밤새 한 숨도 못자고 나선 강연 가는 길.
가뜩이나 길치가 잠을 못자서 정신까지 몽롱한데다 설사도 완전히 멈춘 상태가 아니어서 강연장까지 어찌가나 걱정이 되었다. 거기다 비는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고 비를 워낙 좋아하는 나지만 오늘은 비내리는 초행길이 부담이 된다. 차에 올라 네비를 키니 방일초등학교까지 1시간 28분이 걸린단다. 출근시간대에 비까지 내리니 10시 강연 시간에 맞추려면 대략 두배 수 시간을 확보해야한다. 밀릴 시간 한 시간, 헤맬 시간 한 시간 그리고 도착해서 화장할 시간 20분 거기다 네비에서 알려주는 총소요시간 까지 모두 합산해서 출발해야 강연시간에 늦지않고 대략 맞는다.
 
해서 나는 오늘 방일초등학교까지 걸리는 이 모든 시간들을 합산해보고 5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비오는 월요일이라 그런가 이른 시간인데도 외곽순환도로 부터 엄청 밀렸다. 경인고속도로도 밀리고 가는 곳마다 밀린다. 올림픽대로도 못들어갔는데 벌써 1시간 30분 학교까지 가는 총소요시간을 다 써버렸다. 올림픽대로를 탄 시간이 8시였다.거기서부터 학교까지 남은 시간이 1시간 10분. 9시 30분까지는 학교에 도착할 수 있으니 강연 시간에 늦지는 않겠지만 화장할 시간이 없네 하며 올림픽대로를 탔는데 거기서부터는 다행히 도로가 조금도 밀리지않는다.
가평 방일초등학교에 도착하니 9시도 안됐다. 빨리 화장하고 마을 좀 돌아보고 운좋으면 내가 좋아하는 할머니도 만나면 좋겠다 생각하며 천천히 마을로 차를 몰았다.
 
마을은 정말 작았다. 그리고 평화로왔다.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속에 있는 방일초등학교는 전교생이 62명이다. 유치원아이들까지 모두 합쳐도 80명이 안된다. 작은 학교라 낯선 차가 학교로 들어가면 선생님들이 창문으로 금새 보실거 같았다. 일찍 도착한 나를 선생님들께서 괜한 마음 쓰실거 같아 학교로 들어가지않고 화장할 수 있는 적당한 장소를 동네에서 찾기 시작했다.그런데 마을이 워낙 작고 길도 좁아 차를 세울수 있는 곳이 마땅치 않았다.
 
화장은 해야겠고 차는 세워야겠고 고민하며 천천히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데 조만치서 교회 십자가가 보였다. 교회는 차를 세울수 있는 마당이 있겠지 싶어 교회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교회에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 걸어서도 온 마을을 금새 다 다닐 수 있을 만큼 작은 마을이다. 그래도 교회 담벼락 길가에 차를 바짝 세우고 꽃단장에 들어갔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마을도 보고싶고 뭣보다 우리 할머니들이 보고 싶어 어디 계시나 화장하면서 연신 두리번거렸으나 비가 와서 그런가 할머니들은 커녕 오고가는 사람 한 명 없이 마을은 고요했다.
 
오늘따라 시골학교 여자아이들의 로망인 굽실머리를 만드느라 구루뿌까지 말고 온터라 비오는데 머리 풀릴까 걱정하며 어디 울 할머니들 안계시나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걸었지만 어디에도 할머니들은 보이지 않으셨다. 이제 고만 학교로 들어가야겠다 생각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차로 돌아오는데, 우와 심봤~~~다.
내가 차를 세운 교회앞에 있는 밭에서 할머니 한 분이 부지런히 뭔가를 심고 계셨다.



내가 할머니 가까이에 가기도 전에 할머니가 나를 먼저 보셨다.
"누구요? 지금 왔어요?"
하시며 할머니가 밭에서 내려오신다.
가까이에서 나를 본 할머니는 제주도에서 아가씨가 온다고 했는데 그 아가씨가 왔나 했지 하시며 다시 밭으로 올라가신다.
"할머니, 비와요."
"그르게... 나 바빠요. 말 시키지마여. 부추도 뽑았다가 다시 심어야하고 강낭콩도 심어야하고 아들 심부름도 가야하고 바쁘다 바빠."
할머니에게 우산을 씌어드리며 내가 할머니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자 "나 바빠여 놀아줄 시간이 없어. 비오기 전에 부추도 심어야하고..."
"네~~~할무니 강낭콩도 심어야하고 아드님 심부름도 해야하고."
"그니까 말야. 이쁜 발에 흙묻어. 비 쏟아지기전에 언능 가여. 저기가믄 수다스런 할망구들 많아."
"시러여 할무니. 저는 할무니가 좋아여. 할무니랑 여기 있을꺼예요."
"죽기만 기다리는 다산 늙은이 좋기는 머시 좋아? 나 싫다고 다들 도회지로 내뺐는데... "
"아... 할머니 혼자 사세요?"
"그럼 혼자 살지. 누구랑 살겠어. 이 고랑은 왜 이렇게 삐뚤빼뚤 파놨지?" 할머니가 거칠게 호미질을 하신다.
"할무니 강낭콩은 한 구멍에 몇 개씩 넣어요?"
"서너 개씩 넣지.
이런 여기는 전에 내가 심었던데구만."
호미질하시던 할머니가 땅에서 강낭콩이 나오자 겸연쩍게 웃으신다.
"와! , 할머니 이거 꽃상추죠?"
"응, 꽃상추야. 이뿌지? 나는 꽃이 좋아. 그래서 상추도 꽃상추만 심어."
"예 할머니처럼 이뻐요. 근데 할무니. 이 까만건 여기다 왜 걸어 놨어여?"
"토끼가 와서 죄 뜯어 먹어서.. 먹지말라고. 비방이야."
"와 할머니 이걸 걸어놓으면 토끼가 상추를 안뜯어 먹어요?"
"그럼 안 뜯어먹지."



꽃상추를 심어놓고 높이 담을 쳐 놓은거 만으로도 토끼가 못뜯어먹을거 같은데 막대기에 걸어놓은 검은 플라스틱이 토끼를 쫒는 비방이 된다니 할머니께 더 자세히 여쭙고 싶었으나 비가 쏟아지기 전에 부추도 심어야 하고 강낭콩도 심어야하고 아드님 심부름도 하셔야하는 바쁜 할머니께 더이상 여쭤보기가 죄송해서 이거저거 여쭙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할머니 고랑은 왜 요렇게 가늘게 파요?"
"할머니는 왜 이렇게 말씀이 없으세요?"
"할머니 혼자서 저 큰 집에 사시는거예요?"
할머니께 이거저거 여쭤보고 싶은거 천진데 입 꼭 다물고 바쁘신 할머니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때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어디까지 오셨어요?"
"예 ,학교앞이요."
"예, 얼른 들어오세요."
전화를 끊고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할머니, 저 이제 고만 갈께요.
할무니 건강하셔야해요."
내 말에도 대꾸없이 강낭콩만 심으시는 할머니, 잔뜩 굽은 어깨가 짠하다.
"할무니 사랑해요." 하고 큰 소리로 말하고 차에 오르는데 그때까지 어서 가라고, 바쁘다고, 조금은 살짝 나를 귀찮아하셨을지도 모를 할머니가 급히 나를 부르신다.
"이봐여 이쁜 애기~
담에 나 안 바쁠때 우리집에 와. 꼭 와.
내가 쑥떡 해주께. 근데 쑥떡 좋아하나?"
"네 할머니 저 쑥떡 무지무지 좋아해요."
"미안하구만... 퉁명스레 대해서... 내가 누구랑 말해 본적이 하두 오래돼서...
고마와.
나한테 말 부쳐줘서... 참 고맙네.
누가 나한테 입 떼고 말 부쳐준게 오랜만이네...
조심해서 가.
이쁜 애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