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댓글' 판치는 사회 … "너무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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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댓글' 판치는 사회 … "너무 무서워"
  • 이혜정
  • 승인 2010.10.03 20: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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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플달기'로 인터넷 문화 확 바꿔야 한다
 

 
 
"그러니 니 애비가 죽지."

이것은 허정무 감독이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한-일전에서 패배하자 누리꾼들이 그에게 달았던 악성댓글이었다.

허 감독이 유럽 원정 전지훈련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귀국해 장례를 치르고 다시 돌아가서 치른 경기에서 패하자 누리꾼들에게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허 감독과 가족은 악성댓글과 10년 전쟁을 치러왔다고 한다. 그는 두 딸이 사춘기 시절이었던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 당시 아버지에 대한 인신공격적인 악성댓글 때문에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울음을 떠뜨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가운데 허 감독이 대표팀 감독 연임을 포기한 것도 가족의 반대가 적지 않게 작용했음을 나타냈다.

지난달 문화방송 '황금어장'에 출연한 허정무 감독.
누리꾼들에 의한 악성댓글(악플)에 대한 심경을 고백해
다시 한번 악성댓글에 대한 폐해를 보여줬다.

취재 : 이혜정 기자
 

인터넷에 올려진 댓글 10개 중 한두 개는 '악성(악플)'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고,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 '폭력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인터넷 기사 등에 올려진 댓글 10개 중 한두 개는 악플인 것으로 조사됐다. 가히 '악플 공화국 대한민국'이라는 오명을 얻을 만한 수치다.
 
한국 인터넷 진흥원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00개 이상 댓글이 달린 기사와 동영상 등 게시물 595개를 표본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댓글 5만8천49개에 악플은 11.9%였다. 욕설이나 비난, 음란성 등 악플 정도에 따라 가중치를 줘 산출한 악플 지수는 7.36%이었다.

악플이 많이 달리는 분야는 연예(상반기 20.6%, 하반기 33.3%), 사회(상반기 28.5%, 하반기 21.1%), 정치(상반기 27.2%, 하반기 22.1%), 스포츠 (상반기 12.8%, 하반기 12.5%) 등 순으로 나타났다. 악플의 유형별(중복 포함)로는 욕설 39.9%, 조롱 28.1%, 비난 26.9% 등 모욕성 글이 많았고, 없는 사실을 적은 명예훼손(18.4%), 성희롱성 4.5%, 비속어 19.5% 등의 댓글도 있었다.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악플'
 
지난 6월 30일 자살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배우 박용하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나를 너무 쉽게 이야기한다"라며 악플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글로 남겼다. 이로 인해 그의 자살에도 악플이 한몫을 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일고 있다.
 
그 외에도 최진실, 정다빈, 유니 등의 자살도 누리꾼들의 악플로 인한 폐해가 심각하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지난 2008년 10월 3일 배우 최진실은 생전 후배 정선희의 남편 고 안재환과 관련해 '최진실이 '바지사장'을 두고 사채업에 손을 대면서 안재환에게 25억원을 빌려줬다'는 사채설로 큰 심적 상처를 받아 자살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이가 사망한 뒤에야 누군가 조작해 퍼뜨린 소문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후 정부는 인터넷 악플에 대한 대비책으로 인터넷 실명제 확대 등을 포함한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가수 유니는 '그렇게 벗어대지 말고 누드나 찍어서 돈벌어라', '인조인간아, 컴백하지 말고 그냥 살아라', '볼 때마다 로보캅이 생각난다' 등 여자로서 견디기 힘든 심한 악플로 고민하고 절망하다 우울증에 빠져들어 자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 정다빈은 자살 당시 자신을 향한 누리꾼들의 악플과 인기하락이 맞물려 심한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을 택했다고 한다.
 
이러한 악플로 인한 폐해는 유명 연예인이나 공인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친구 블로그에 악플 폭탄보내기, 욕설쓰기 등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즉, 악플의 고통은 누구나 당할 수 있고, 이로 인해 불면증, 우울증 등 다양한 병을 유발한다.

피해 연예인 '여성 67.5% > 남성 30%'
 
최근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KBI)에서 발표한 '연예인 악성 댓글 사례와 개선 방안'(윤성옥 박사의 '연예인 악성댓글 사례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악성댓글 피해는 여성 연예인이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악성댓글로 피해를 당한 연예인은 여성이 67.5%로 남성(30%)에 비해 2배 이상 많았다. 직업별로는 총 40건의 사례 중 배우 47.5%(19건), 가수 32.5%(13건), 코미디언 10%(4건) 순이다. 내용별로는 임신ㆍ출산ㆍ낙태설 13.7%(7건), 결혼ㆍ애인설 11.8%(6건), 자살ㆍ사망설 11.8%(6건), 성관계 관련설 7.8%(4건) 등이다.
 
그러나 이들 댓글은 소문과 추측 등 거짓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경우가 66.7%로 사실 33.3%(17건)보다 2배 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한 연예인들의 대응방식은 무대응이 32.5%로 가장 많았고, 수사와 고소에 이르는 경우도 25%(10건)에 달했다.
 
이처럼 누리꾼들의 악성댓글이 자살에 이르게까지 하니 악플의 무서움을 알 수 있다. 



'선플달기' 캠페인으로 인터넷 문화 바꿔야
 
그럼 이런 '인터넷 문화'에 희망은 있는가?
 
지난 2007년 5월 설립된 (사)선플달기 국민운동본부(이하 선플운동본부)는 실용영어교육으로 유명한 민병철 건국대 교수(선플운동본부 이사장)를 주축으로 '선플운동'을 통해 인터넷 댓글 정화에 앞장서고 있다.
 
선플운동본부는 2007년 가수 유니가 악플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건을 계기로 악플의 심각성을 알리고, 인터넷에서 상대를 존중하고 격려하자는 차원에서 다양한 사업을 벌인다.
 
선플달기운동은 칭찬과 격려, 감사와 위로, 사과와 용서의 메시지를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내가 먼저 상대에게 보내는 실천운동이다. 지난해 844개 학교와 단체에서 30여 만명이 선플운동에 참가했다.
 
올해는 100만 명을 목표로 전국 규모의 범국민 선플달기 실천운동을 펼치고 있다. 선플달기 실천운동에는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16개 시‧도, (사)선플운동본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주관하고 있다.
 
선플 문자보내기는 '선플달기 운동' 홈페이지에 선플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이다. 이때 한 아이디 당 20개의 코인을 충전할 수 있으며, 추가 신청도 가능하다. 단, 상습적으로 악플을 작성할 경우 요청이 거부될 수 있다.
 
또 선플운동본부는 매년 40여 개 학교의 선플누리단을 선정해 학생들이 악플보다는 선플을 다는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오는 11월 열리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선정된 선플누리단과 함께 글로벌 선플달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행정안전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은 '선플달기 전국 릴레이 캠페인'에 참가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인정한다. 선플달기 실천운동 참여 학생이나 선플 20건 이상 보낸 학생에게 사회봉사활동확인서(최대 2시간)를 발급하는 것이다. 또 일부 학교에서는 선플달기 활동을 여름방학 과제로 지정해 청소년들의 참여를 이끌기도 했다.

온라인 여론재판, 부작용은 없나?
 
지난 7월 28일 서울남부지검에는 EBS 국어강사 장희민(38)씨에 대한 진정이 접수됐다. "장희민씨가 군의 명예를 훼손했으니 수사해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장씨는 같은 달 24일 EBS 강의 도중 "군에 가서 사람 죽이는 것 배워 온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이 사건이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논란을 빚자 전원책 변호사 팬카페 회원들이 대검찰청과 국방부에 민원을 넣은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지난달 말 장씨를 무혐의 처리했다고 밝혔다. 수사를 한 남부지검 관계자는 "군(軍)이라는 대상이 특정되지 않아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네티즌의 여론재판이 진화하고 있다. 인터넷에 비난 댓글을 다는 수준에서 벗어나 국가기관에 진정하거나 형사 고소를 하는 적극적인 형태로 변한 것이다.

올 여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사건들은 현재 대부분 수사기관으로 넘어갔다. 서울 중앙지검 외사부는 방송인 신정환(35)씨의 필리핀 불법 해외 원정도박 의혹을, 형사5부는 가수 타블로의 학력위조 의혹을 수사 중이다. 국세청은 현재 '4억 명품녀'로 알려진 김모(24)씨의 불법증여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이들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네티즌의 여론 형성→네티즌과 일반 시민의 진정·고발→국가기관의 조사 및 수사 착수란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가수 타블로의 학력 의혹 규명에 검찰이 직접 나선 것은 대검찰청 전자민원 사이트에 네티즌이 집단으로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신정환씨에 대한 서울 중앙지검의 수사는 인천에 사는 한 시민의 고발로 시작됐다. 앞서 네티즌들의 처벌 여론이 거셌다.

국세청이 '4억 명품녀'에 대해 세금 포탈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나선 것도 국세청 홈페이지에 네티즌 민원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 '신상 털기'에서 실제 고발로

사회적 논란을 빚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네티즌의 주무기는 '신상 털기'였다. 2005년 지하철 '개똥녀' 사건, 지난해 '루저녀' 사건이 대표적이다. 네티즌들은 당사자 얼굴, 출신 학교, 가족관계 등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표적이 된 사람은 사생활이 완전히 발가벗겨졌다. 하지만 이런 관심은 대개 냄비처럼 끓었다가 곧 잊히곤 한다.

최근에는 온라인상의 논란이 오프라인의 고발과 수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서강대 전상진(사회학) 교수는 "사회 정의에 대한 네티즌의 감수성이 예민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비난과 화풀이로 그치지 않고, 사회 공론화를 거쳐 법적으로 교정하려는 움직임이므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해 바이올리니스트 유진 박(35)씨가 매니저에게 감금·폭행을 당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을 때, 네티즌이 큰 몫을 했다. 국민 신문고에 '유진 박을 도와 달라'는 민원을 제기해 검찰 수사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고소·고발이 남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희민씨를 상대로 한 진정에 대해 남부지검의 한 검사는 "정식 수사로까지 이어질 확률이 낮은 사건이었다"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명예훼손의 법리를 따져보지 않고 접수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곽금주(심리학) 교수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네티즌의 '인정 욕구'에서 찾았다. 곽 교수는 "평범한 비난 글로는 인터넷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진정·고발을 하면 확신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 악성댓글과 악성루머

"인기를 끌며 활발하게 활동하다 근거 없는 루머가 터지자 속상하고 억울하다며 잠시 연예 활동을 중단하더군요."

최근 악성댓글과 악성루머로 고통받고 있는 한 유명 가수의 변호인은 "당사자는 극복하려 하는데, 가족까지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견디기 힘들어했다"라고 말했다.

대중 앞에서는 늘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연예인들도 악성댓글과 악성루머 앞에선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일단 한번 만들어진 루머는 인터넷과 트위터 등을 통해 순식간에 많은 사람에게 확산되고, 루머가 틀린 것이라는 증거를 제시해도 사람들 뇌리에 박힌 루머의 이미지를 바로잡기란 쉽지 않다.

일부 연예인은 루머로 인한 악성댓글과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 루머는 대개 근거 없는 것

인기 연예인들은 많은 사람에게 관심의 대상이며 그들의 사생활과 일거수 일투족은 호사가들의 화젯거리다.

유명 연예인에 관한 정보라면 누구나 알고 싶어하며, 일부 학생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좋아하는 연예인 숙소와 미용실, 식당 등을 쫓아다닐 정도로 '사생활 엿보기'에 병적으로 집착하기도 한다.

2005년 한 광고기획사가 연예계 관계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유명 연예인들에 관한 사생활 정보를 정리한 '연예인 X-파일'이 유출돼 사회적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문건에 이름이 거론됐던 연예인들이 '근거 없는 얘기'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순간에도 많은 사람은 이런저런 경로로 문건을 구해 보느라 혈안이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악성 루머의 진원지로 지목된 '찌라시'를 대대적으로 단속하는 등 정화 노력을 벌였지만, 이후에도 X-파일 2탄, 3탄, Y-파일 등 확인되지 않은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담은 문건이 등장해 많은 사람이 돌려 읽었다.

회사원 송모(31) 씨는 "당시 'X-파일' 소문을 듣고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 친구들을 통해 구해 봤다"면서 "친구들은 문건에 나온 내용을 사실이라고 믿는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대개 루머를 처음 접하면 '그럴듯하지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생각도 함께하게 된다.

대부분의 루머는 근거 없는 것이지만 가끔 사실로 밝혀지는 것들도 있어 무조건 뜬소문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직장인 김모(28, 여) 씨는 "틀린 루머라고 생각했던 얘기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 황당한 얘기라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듣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5월 결혼한 탤런트 장동건-고소영 부부의 경우, 지난해 증권가 정보지를 통해 처음으로 열애설이 불거졌다가 사실로 확인된 사례다.

루머는 그 속성상 대부분 스타 개인의 이성관계나 연애사, 금전관계 등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한 것들인 경우가 많아 일일이 해명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한 여성 연예인 매니저는 "루머를 바로잡으려고 나서서 진실을 강변해도 사람들이 믿으려 하지 않아 그냥 속으로 삭이고 대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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