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우 작가의 첫 소설집『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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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우 작가의 첫 소설집『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출간
  • 배천분 시민기자
  • 승인 2017.12.08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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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애정, 소설에 대한 열망이 결합해 빚어내다

 
이선우 작가의 첫 소설집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가 출간됐다. 이 소설집에는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렸다. 관계로부터 고립되거나 악연(惡緣)에 얽혀 피로와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 혹은 그럼에도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선우 소설가는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2015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깃발이 운다』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인천 문인협회 소설분과장으로 2017년 인천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이 소설집을 펴내게 됐다.
 
소설을 읽으면 평소 현실에서 회피하고 싶은 무수한 감정을 소설 속에서 마주치고 곱씹게 되어 골치가 아파 온다. 독자들은 덤덤한 듯 그린 현실의 부조리에 불편한 공감하지만, 저자는 인물들이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무심한 위로를 건넨다.
 
이선우 소설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이나 사건은 매우 다채롭다. 다양한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빚어내는 이선우 소설의 이야기는, 일상의 이면에 자리 잡은 불안과 공포를 들추어내면서 우리를 삶의 비의와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다.
주목할 부분은 현실의 모순과 폭력성을 경험하는 주체의 다수가 성장기에 있는 어린아이나 청년이라는 점이다.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채 남자의 폭력에 시달리는 「동거」에서의 ‘나’는 초등학생이고,「그 여름의 윤헤어」의 주인공인 ‘나’ 역시 초등학교 때의 기억으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정신적 어린아이이다. 그리고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에서 아버지가 파산하여 도망자 신세를 겪으며 피폐해져 가는 일련의 과정들을 바라보며 성장한 ‘나’와 「깃발이 운다」의 ‘나’는 이제 막 성장기의 끝에 서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선우 소설의 주체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을 그저 겪어 낼 수밖에 없다는 면에서 비극적인 편집성을 갖는다.
 




이선우 소설가는 그동안은 인물이나 인물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일들을 소설로 썼다. 그는 "앞으로도 아프지만 억울하지만, 대변도 할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을 소설로 쓸 것"이라고 말한다. 가난해서 만이 아니라 풀어낼 수 없을 만큼 꽉 찬 고독과 억울함 같은, 사회화 안에서가 아닌 나 개인의 아픔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내년에는 어렴풋이 생각해 놓은 것이 있어 장편을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선우 작가의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소설을 읽으면서 불편하고 혼란스러운 독서 여행 끝에 일상이 파괴된 가족의 무력함이 이제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혈연의 범위 내에 있는 가족조차 일상을 전도시킨 공포에 맞서 싸울만 한 의지나 능력이 없다는 사실. 나아가 삶이 불안할 때 가족조차 울타리가 되지 못하는 이들의 ‘무능한 고립’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신상조 평론가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선우 소설의 특징은 자연적 범주로서의 가족을 축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각의 주체들은 가족이라는 공간 속에서 갈등하고 화해하는 관계를 맺기보다는 ‘가족’이라는 전망을 포기함으로써 가까스로 정체성을 획득한다. 「동거」의 경우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인 아이의 시점으로 불안과 공포를 극대화할 뿐, 그 이상의 어떤 논평이나 설명을 곁들이지 않는다. 독자들이 폭력에 노출된 가족과 그들의 파괴된 일상을 경험하게끔 만들었지만, 가족의 역할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를 아직은 유보한다는 듯이"

 
추천사
양진채(소설가)

일상을 낯설게 직조해 내는 이선우 소설의 힘은 문장이다. 씹으면 씹을수록 조금씩 다른 맛이 우러나는 문장은 소설 곳곳에 포진해 있으면서 인물을, 풍경을 한순간 낯설게 만든다. 나는 이러한 맛을 내는 소설을 근래에 본 적이 없다. 능청스러우면서 활달하고 단단하다. 이런 문장의 힘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소설에 대한 열망이 결합해 빚어낸 결과물로 이선우 작가가 문학이라는 깃대 위에 꽂은 깃발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 깃발이 오랫동안 펄럭이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작가의 말
 
바다에서 헤엄치는 꿈을 꿨다. 짙푸른 바다에서도 붉은 산호는 선명했다. 나는 그 바다에서 오래도록 헤엄쳐 다녔다. 물고기들이 나를 툭툭 건드리며 지나다녔고 그 시간이 즐겁고 행복했다. 어느 순간 두 팔에 가득 찰만한 물고기 한 마리를 품에 안았다. 품에 안은 물고기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이상하게 손을 놓아 버리게 되었다. 내 손을 벗어난 물고기는 재빠르게 헤엄쳐 앞으로 나갔다.
잠에서 깨어난 뒤로도 꿈의 여운은 오래갔다. 내 소설도 이제 내 손에서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며칠 뒤 오랜만에 밭에 나가 포도를 몇 송이 땄다. 흰 봉지 속 검붉은 포도를 꺼내 들었다. 뜨거운 태양과 쏟아지는 폭우를 견뎌 내고 익은 포도송이 한 알을 떼 입에 넣었다. 잘 익은 포도송이 사이로 아직 덜 여문 여린 알갱이가 드문드문 보였다. 어쩌면…….
여덟 편의 소설은 이웃의 이야기나 내가 경험한 어떤 것들이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희미한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다 마침내 발화하여 탄생한 것들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들이 다음 문장으로 나가지 못하고 오랜 시간 제자리걸음을 할 때, 못 듣고 못 본 일이라고, 없었던 일이라고 이야기를 밀어냈다. 그래도 끝까지 이야기가 나를 떠나지 않고 배회하다가 한 편의 소설로 남아 주었다. 고맙게도.
물고기처럼 내 손을 떠난 소설들이 누구를 만날지, 뭐라고 평가받을지 상상만으로도 떨리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힘차게 헤엄쳐 나아갈 내 소설의 등을 밀어주고 응원하는 일밖에 없다.
소설은 겁이 많은 나에게 숨고 도망치지 말라고, 고개 돌리지 말고 앞을 보라고 가르쳤다. 내가 머무는 곳이고 앞으로도 머물 이곳에서 지치고 소외된 내 이웃의 삶에 결을 소설로 쓰라고 가르쳤다.
헤엄쳐 가는 물고기처럼 뒤돌아보지 않고 젊은 패기로 오래도록 소설을 쓰겠다. 내게는 어제가 너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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