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속 다문화 가정 발굴·지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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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속 다문화 가정 발굴·지원 아쉽다
  • 이혜정
  • 승인 2010.10.26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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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결혼이주여성 정착사례와 현 지원정책은?


 

취재 : 이혜정 기자

1편에서 한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결혼이주여성의 고통과 개선방향을 소개했다면, 2편에선 안정적으로 '다문화 생활'을 꾸려 정착하며 살아가는 결혼이주여성을 널리 알리고 또 지원정책도 살펴본다.

① 결혼이주여성 피해사례와 문제점, 해결방안은?
② 결혼이주여성 정착사례와 현 지원정책은?

남구 다문화지원센터 통‧번역사 베트남 여성 이유리(46)와 예안 차크리아(23)씨

"14년 전에 한국에 왔을 때는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물론 지금처럼 지원센터는 더더욱 없었고요. 그래서 혼자서 한글을 독학해야 했지요. 처음에는 의사소통도 어렵고 사회적 인식이 너무 좋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통‧번역사 일을 하면서 베트남대사관에서 교민대표로 활동하고 있어요." -베트남 여성 이유리-

남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베트남 여성 이유리(46)씨와 캄보디아 여성 예안차크리아(23)씨를 만났다. 이들은 올해부터 남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찾는 다문화 가정 결혼이주여성들의 고충을 해결해주고 있다.


베트남 여성 이유리.

남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입구 앞에 마련된 책상에 앉아 유창한 한국말로 "어서오세요"라며 이유리씨가 먼저 반겼다.

이유리 통‧번역사는 1993년 베트남에서 친한 동생 집들이에서 현 남편과 우연히 만나 3년 연애 끝에 베트남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결혼 직후 남편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이주했다. 한국에 간다고 생각을 전혀 못했던 이씨는 TV에서 나오는 이상적인 한국생활만 꿈꾸며 남편을 믿고 따랐다.

그러나 그의 한국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김치찌개, 된짱찌개, 미역국 등 대부분의 한국음식은 먹지도 못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밖에 나가지도 못했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우울증까지 앓을 정도였다.

"한국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우선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한국인을 위한 베트남 책을 어렵게 구해 공부했지요.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거리 간판 읽기를 비롯해 한국드라마(형제의 강)를 수차례 반복해서 보면서 따라 했습니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남편과 자주 다툼도 벌였다. 가부장적 한국사회와 달리 베트남에서는 남녀 모두가 일을 하고 가사일을 분담해서 한다. 결혼 초기 남편은 집안일을 거의 도와주지 않았다. 특히 몸살로 누워 있을 때조차도 남편은 밥상한 번 차려준 적이 없어 섭섭했다고. 하지만 이제는 서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많은 도움을 준다.

그렇게 살아온 한국생활 10여 년. 이유리씨는 "지금은 한국사람이 다 됐다"면서 웃는다. 남편은 이씨가 만들어 준 김치찌개를 먹을 때면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린다고 한다. 이젠 김치·된장찌개가 없으면 밥 먹기가 불편하다는 그다.

오랜 한국생활에 익숙한 이씨는 다문화 가정 베트남 여성을 다방면으로 도와주기 위해 남구다문화지원센터에서 통‧번역서비스와 상담 등을 하고 있다. 아울러 베트남 대사관 베트남교민대표이고, 출입국관리사무소, 다문화방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씨는 "제가 처음에 왔을 때는 도움을 받을 곳이 없어서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은 많은 베트남 결혼이주여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캄보디아 여성 예얀차크리아(23)씨는 지난 2008년 인천여성복지회관에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남구 다문화지원센터에서 통‧번역사 일을 한다.


캄보디아 여성 예안차크리아.

예얀차크리아씨는 지난 2006년 한국인 남편을 만나 한국에 정착했다.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사는 게 두려워 1년 가량은 혼자 밖을 나갈 수도 없었다고 한다. 낮에는 하루종일 방에 앉아 있다가 남편이 퇴근해서 집에 오면 같이 장을 보러 나갈 정도였다.

"처음에는 피부색도 다르고, 말도 통하지 않아서 무서웠어요. 한국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욕을 하는 것 같아서 밖에 나갈 수도 없었지요. 혼자 TV만 보고 있었어요. 남편이 퇴근하면 겨우 같이 바람을 쐬러 나가고…. 너무 갑갑하고 답답했어요."

그러던 중 예얀씨를 많이 도와준 동네 주민이 인천여성복지회관을 소개해 한국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다른 결혼이주여성보다 한국어 향상 속도가 빠른 그이는 지난해 9월 부품조립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캄보디아 통‧번역사 자격증 시험준비를 했다. 드디어 올 3월 통‧번역사 시험에 통과하고 남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어렵고 힘들었지만, 한국에서 열심히 생활하면서 일자리도 얻고 자리를 잡아가는 거 같아서 정말 좋습니다."

예얀씨는 "특히 같은 캄보디아 여성이 이곳에 오면 고향 사람을 만났다는 마음에서인지 조금만 대화를 나눠도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기뻐한다"면서 "관련 법은 잘 모르지만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걸 보면 더 행복함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다문화 가정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정책개발 시급하다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이주민은 총 1만486명으로 2008년에 비해 26.5%(8천291명) 증가했다. 이중 결혼이주 여성이 88.2%(9천244명)이고, 남성이 11.8%(1천242명)이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46.9%(4천913명)으로 가장 많고, 조선족 26%(2천727명), 베트남 10.3%(1천81명), 필리핀 3.8%(393명) 등의 순이다. 군‧구별 결혼이주여성 분포도를 보면 부평구 20.5%(1천895명)가 제일 많고 남동구 18.3%(1천690명), 남구 16.5%(1천527명), 서구 15.5%(1천432명), 계양구 10.8%(996명), 중구 6.3%(582명), 연수구 6%(556명), 동구 3.4%(314명), 강화군 2.4%(224명), 옹진군 0.3% 등의 순이다.

이렇듯 결혼이주여성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지역 특성에 맞게 결혼이주민을 실질적으로 도울 지원정책 개발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인천시는 다문화 가정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생활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지난해 3개(중구, 부평구, 서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설치하고 올해 4개(남동구, 계양구, 남구, 강화군)를 추가해 7곳으로 늘렸다.

다문화지원센터에서는 한국어 교육을 비롯해 다문화 사회 이해교육, 가족교육, 상담, 취‧창업지원 등을 실시한다. 이와 함께 통‧번역서비스 자조모임, 자원봉사단(멘토링 등) 운영, 다문화 인식개선사업, 홍보사업 등을 통해 내국인과 이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밖에 센터가 없는 연수구, 동구, 옹진군에선 자체적으로 상황에 맞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시비를 지원하기도 한다. 특히 다문화지원센터 종사자들에게는 1인당 월 15만원을 지급한다.

올해부터는 지역 내 대학(인천대, 인하대)과 연계해 다문화 가정 자녀의 부족한 학업을 도와주는 대학생 멘토링사업를 확대하고, 다문화 가정 구성원들이 온라인을 통해 교육받을 수 있는 'e-배움 캠페인', 다문화가정 자녀 언어발달 지원, 다문화 합동결혼식, 다문화 포럼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원이나 서비스는 일부 결혼이주여성에게만 국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도 많은 결혼이주여성이 한국사회로 나오지 못한 채 '음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만큼, 이들을 적극 발굴해 도움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또 이들을 지원하는 정책이 형식에 흐르거나 '생색내기'를 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려는 정책이 아쉽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성미경 인천여성의전화 회장은 "다문화 가정이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들을 지원하는 건 당연한데도 현 지원정책을 보면, 그저 결혼이주여성들을 한국사회에 동화시키기 위한 한시적 지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결혼이주여성들이 실질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어우러져 살게 하려면 복지정책 차원에서 빈곤을 아우르는 정책이 절실하다"라고 강조했다.


인천 남구 새마을부녀회가 지난 9월13일 다문화 가정 여성들과
마련한 '송편 만들기' 행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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