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영감이 기특하다고 살려준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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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영감이 기특하다고 살려준게지"
  • 김인자
  • 승인 2018.06.26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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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 수원 '숙지노인복지센터'에서(1)

"얼씨구나~ 좋구나 ~이럴 때 안 놀면 내 언제 놀아보나~~~ 내가 기분이 좋아서 오늘은 노래를 다 부른다."
91세 이영숙할머니 바람 솔솔 부는 공원정자에 친구 할머니들과 함께 나와 앉아 계시니 기분이 좋으신가보다. 노래 한 가락 뽑으시더니 묻지도 않은 말을 먼저 꺼내신다.
 
"우리집 영감이 나이 사십 둘에 저 세상으로 갔어." 남의 얘기하듯 영숙할머니가 툭 하고 던지시니 공감대장 엘리트 병순할머니가 척하고 받으신다.
"꽉 잡지 그랬어. 못 가게."
"잡는다고 잡히는 것이면 내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잡았지. 우리집 영감이 일찍 죽으면서 내헌테 미안했던게지? 영감이 즈그 친구덜 보고 자기 죽으믄 나 시집가라고 했대." 이번엔 영숙할머니가 병순할머니의 말을 톡하고 받으신다.
 
"그러게 시집가지 그랬어? 영감이 사십 둘이었으믄 할메도 한창 좋을땐데... 지금 봐서는 인물도 넘에게 빠질 정도도 아니고?"
"애덜은 어쩌구 시집을 가? 천 벌 받을라구? 네 살, 여섯 살 여덜 살 고만 고만한 것들 천애고아 만들고? 나 좋자고 시집을 가? 오메 숭헌 소리도 헌다." 영숙할머니가 손사래를 치신다.
"그게 또 그렇다. 자식이 뭔 죄고..." 병순할머니가 한숨을 폭 하고 내쉰다.
"내가 그때 팔자 고친다고 영감친구들 말 듣고 시집을 새로 갔으믄 급살이 맞아 죽었을 거야. 그래도 정신 빠트리지 않고 애덜 데리고 이리 살아서 죽을 거 면했어."
"죽을걸 면해?"병순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영숙할머니에게 바짝 다가 앉으신다.
"그랬지.내가 요저녁에 화장실갔다가 고대로 쓰러졌는데 죽지않고 여태 살았잖아. 화장실가서 쓰러지믄 열중에 아홉은 죄 죽는대잖어."
"죽은 영감이 할메가 팔자 안 고치고 애덜 키우믄서 혼자 살았다고 기특하다고 살려준게지." 돌아가실 뻔했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는 영숙할머니나 심각한 얘길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장단 맞춰주시는 병순할머니 두 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이런거보믄 귀신 읍따고도 못햐."
대전여고 출신이신 병순할머니가 영숙할머니 어깨를 살살 쓸어내리신다.
 
해마다 요맘때 쯤이면 나는 경기도내 소외계층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독서 나들이 시간을 갖는다. 올해는 수원에 있는 '숙지노인복지센터'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즐거운 독서 나들이 시간을 가졌다. 저자로서 어떤 강연이든 소중하고 귀하지 않은 시간이 없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특히나 좋아하는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하는 강연에는 무조건 간다. 해마다 이때쯤 '김인자작가와 함께 하는 독서 나들이' 라는 이 특별하고 귀한 시간이 너무도 감사하다. 오롯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그림책이야기도 하고 그림책도 읽어드리고 뭣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당신들 육성으로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서 참 좋다. 운이 좋으면 할머니들의 구수한 노동요도 들을 수 있다.




수원에 있는 '숙지 노인복지센터'(가치: 의미있는, 가치있는, 소망있는 어르신)는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장애'이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용하시는 주간보호센터다. 모든 기관들이 다 그렇겠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용하시는 시설은 특이나 센터장의 마인드가 아주 중요하다. 센터장의 운영마인드가 어떠냐에 따라 시설분위기가 천차만별이기때문이다. 숙지노인보호센터 센터장님의 마음밭은 언듯 보기에는 평범해보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대함에 있어 아주 특별했다. 2시간의 강연이 끝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하러갔다. 보통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리에 앉으시면 선생님들도 자리에 앉아 같이 식사를 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숙지복지센터' 센터장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식사를 마치실 때까지 자리에 앉지 않으셨다. 센터장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식사하고 계시는 자리를 여기저기 다니시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식사를 편하게 하실 수 있도록 이것 저것 살뜰히 챙겨드리고 있었다. 관리자가 솔선수범을 보이니 요양사 선생님들도 할머니 할아버지들 식사시중을 드니라 당신들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터장님이나 요양사선생님들 얼굴에서는 항상 따뜻한 웃음이 함께 했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응대하는 목소리에는 따뜻한 정이 넘쳐 흘렀다.
식사장소가 센터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좀 걸으셔야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연세들도 많으시고 (평균나이 80대, 91세 할머니도 세 분이나 계시고 93세 할머니들도 세 분 계신다) 한 낮이라 햇볕도 쨍쨍해서 걷는게 무리가 되지 않으실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잘 걸으셨다. 요양사 선생님들이 옆에 꼭 붙어서 모시기도 잘 모셨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휘청 휘청 힘겨워 하시면서도 감사하게도 아무 사고 없이 끝까지 잘 걸으셨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중에 유독 걸음이 제일 불편하신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지팡이를 짚고 요양사 선생님 부축을 받으면서도 많이 힘들어하시는 소희할머니를 보니 우리 심계옥엄니가 생각났다. 우리 심계옥엄니도 지팡이를 짚고도 잘 걷지 못하셔서 센터에서 나들이를 가면 끝까지 다 걷지못하신다.
 
"소희 할머니,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나? 구십 서희."
93세라니, 전혀 그 연세로 보이지 않으시는 소희할머니는 피부도 하얗고 참 고우셨다. 옷도 열 일곱 살 수줍은 소녀처럼 잔꽃무늬 원피스를 단정하게 입고 계셨다.
"할머니, 옷이 너무 예뻐요. 누가 이렇게 예쁜 옷을 사주셨어요?"하고 여쭈니 "딸이 ~" 하신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힘겹게 한 발 한 발 무거운 걸음을 떼시는 소희할머니를 뒤따라 걸으며 소희 할머니가 걷는 걸음이 열 일곱 살 소녀처럼 사뿐사뿐 가벼운 걸음이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번 독서나들이는 경기도가 주최하고 한국독서지도연구회협동조합에서 주관하는 '2018 정보소외계층 독서문화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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