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 흔적’ 포기했던 인천시, ‘천만 관객 발상지’ 자화자찬 (주말기사로 내도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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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흔적’ 포기했던 인천시, ‘천만 관객 발상지’ 자화자찬 (주말기사로 내도 될듯)
  • 배영수 기자
  • 승인 2019.02.24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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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예술인들 “과거 보여온 행정자세 생각하면 뻔뻔” 비아냥



박남춘 인천시장(사진 왼쪽)이 13일 인천영상위를 찾아 영화인들과 만남의 자리를 갖던 모습. ⓒ인천시

 

최근 박남춘 인천시장을 비롯한 인천시 관계자들이 인천영상위원회에 연초 방문했던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방문 자체는 문제가 없는 일이었지만, 최근 영화계에서 흥행한 작품이 단지 ‘인천에서 찍은 영화’라는 것을 이유로 시 공직자들이 난데없이 ‘고무된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2일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 13일 박남춘 인천시장을 비롯한 시 관계자들은 중구에 위치한 (사)인천광역시영상위원회를 찾았다. 당일 시는 이를 보도자료로 배포하면서 ‘간담회를 가졌다’고 밝혔으나, 영상위 및 당시 참석한 영화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간담회보다는 ‘연초 접견’ 정도의 성격이었다.
 
당시 자리에는 이춘연 한국영화단체연대회의 이사장과 임순례, 권칠인, 연상호 등 한국 영화계 감독들과 인천영화인협회 송인혁 회장 및 배우 전노민씨 등도 함께 박 시장 일행을 접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자리에 함께 있었던 영화인 및 영상위 등에 따르면 이날 자리에서 박 시장 일행은 최근 천만 관객을 돌파(22일 현재 1,480만)한 영화 ‘극한직업’을 언급했다. 이날 박 시장은 “인천이 영상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 일행 등 공직자들이 영상위를 다녀간 당일 시는 ‘1천만 관객의 발상지 인천을 영상문화도시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어떻게 문화도시를 만들겠다느니 하는 내용은 전무한 채 이날 영화인들과 자리를 갖고 의견을 듣는 정도 수준의 내용을, 제목으로 ‘뻥튀기’한 것에 불과했다.
 


박남춘 인천시장이 인천영상위를 다녀간 직후 당일 시에서 곧바로 배포한 보도자료. 제목 때문에 영상위 내부가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 ‘사실상 인천 담지않은 영화’... 인천 실체 드러내준 건 ‘네티즌’
 
‘외연’으로만 보면 인천에서 촬영한 영화가 모처럼 대박을 냈다고 하니 공직자들이 고무된 분위기를 보일 수도 있다. 영화의 상당수를 동구 배다리 일대에서 촬영한 것이 영화 개봉 후 인천시민들을 비롯한 네티즌들에 의해 자세히 알려지고 있는 건 맞다. 실제 시는 이 영화가 인천에서 촬영되는 점을 감안하고 영상위를 통해 제작비 일부에 해당하는 3천만 원의 재원을 직접 지원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줄거리 및 화면을 감안하면, 과연 인천시 공직자들 스스로 극한직업을 운운하는 것이 바람직하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 이같은 논란은 영화를 관람한 인천시민들 일부는 물론 영화를 봤다는 시 관계자 및 시의원 등을 통해서도 표면화되고 있기도 했다.
 
실제 ‘극한직업’에 등장하는 5인의 주인공들은 모두 서울 마포경찰서 소속의 마약계 형사로 등장한다. 때문에 실제 배다리에서 촬영된 영화에서는 기초 줄거리에 어긋나는 배경을 만들면 안 되는 만큼 촬영화면 배경에서 인천을 최대한 없애기 위한 작업도 군데군데 보였다. 영화 속 코미디 소재인 ‘갈비통닭’의 배경을 수원으로 삼으면서, 오히려 인천보다는 수원의 통닭거리가 대박을 쳤다.
 


영화 ‘극한직업’의 스틸컷 중 하나. 인천 배다리에서 촬영된 이 장면의 전화번호는 02, 즉 서울로 설정돼 있다. 영화가 서울 마포경찰서 형사들을 주인공으로 했기 때문이다. 전화번호의 표시에도 불구하고 인천이 알려진건, ‘네티즌의 힘’이 컸다.



인천영상위 측 관계자도 “박 시장이 자리를 뜬 후 시에서 보도자료 제목을 저렇게 낼 줄은 몰랐다”며 “제목을 보고 좀 황당했던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영화인들도 이러한 인천시의 자세에 ‘코웃음’을 치는 건 마찬가지다. 영화로 인천을 알리게 됐다면, 그 자체로 흥분하기보다 과연 그 작품이 인천을 알린 것이 맞는지, 만약 아니라면 어떤 외부요인이 작용했는지를 면밀히 따지고 향후 정책을 고민해 보는 것이 맞다는 의견이다.
 
당시 인천시의 보도자료에 입각한 뉴스 보도들을 접했다는 영화계 종사자는 “그 영화 속 인천을 대중들에게 알린 사람들은 사실 배우나 감독 등 영화인들이 아니라, 오히려 초기 시사회나 초기 관람을 한 관객들 중 인천시민들 위주로 배다리를 알아보며 입소문 및 온라인으로 내용을 확산시킨 것 같았다”며 “그렇다면 천만관객 속 인천을 알렸다는 건 영화인들이 아니라 네티즌들이 될 텐데, 왜 그들을 대상으로는 시가 표현을 하지 않느냐, 그건 엄연히 모순”이라고 말했다.
 
비록 영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네티즌들과의 소통의 자리는 역대 인천시의 행정에서 이미 사례가 있었다. 지난 민선5기 당시의 송영길 인천시장은 자신의 임기 초중반기였던 2011년 중구 소재의 한 식당에서 파워블로거 14명과 소소히 만남을 가진 바가 있었기 때문.
 
시가 의지만 있다면 그간 영화와 드라마 등 영상물 속에 드러난 인천을 꾸준히 자발적으로 알려주었던 네티즌들과는 충분히 소통의 자리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영화인들을 만난 후 ‘천만관객의 발상지’ 표현을 아끼지 않았던 인천시는, 정작 ‘극한직업’ 속의 인천을 알리는 데에 공헌한 온라인의 부분은 안중에 없다. 시 문화콘텐츠부서 관계자는 “그런 파워블로거들이 모두를 반영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회적으로 ‘아예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러나 영화인들 위주로 구성된 인천영상위는 시 공직자들과 생각이 다르다. 영상위 측 관계자는 “최근 영화인들 및 예술인들 중심으로 영상물 속 인천에 대해 알려주는 네티즌들과의 소통 필요성이 제기되긴 했었다”며 “영상위 내에서도 이에 대해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 전부터 꾸준히 영상물 속 인천을 알려주는 파워블로거 등의 수를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천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 소속인 유세움 시의원도 “비단 문화예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시의 시정 전반을 이렇게 온라인에서 블로거 등 네티즌들과 공유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며 향후 마땅히 그리 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지금도 적잖은 지자체들이 이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마당에, 시 공직자들이 이를 아예 배제하고 있다면 그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꼬집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극한직업과 관련해 간단하게 검색만 해도 이렇게 인천을 언급한 블로그들이 다수 언급된다. 이중 지속적으로 인천을 조명한 네티즌들과는 소통의 지점을 조금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 영화인들 “인천시 그간 해온 행태 보면 뭘 기대하겠느냐”
 
‘극한직업’과 관련한 인천시의 행정을 지켜보는 영화인들은 이번에도 인천시 공직자들의 ‘반짝 관심’이 반복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까지 역대 인천시가 보여준 행정을 감안하면 기대를 안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저 관할에서 찍은 영화가 1,500만에 육박하는 관객 수를 찍었으니 그저 ‘뭔가 움직인다’는 걸 보여주는 수준이라는 의견이다.
 
인천시가 영화 등 작품이 ‘반짝’할 때만 관심을 보여주거나 아예 신경도 쓰지 않은 사례는 꽤 많다. 대표적으로 최종 관객 1,100만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천만 관객 흥행작이었던 ‘실미도’는 단적인 예다.
 
당시 ‘실미도’는 실제 무의동 소재 실미도에서 거의 모든 촬영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나 관할인 중구는 영화 크랭크업 직후 세트장을 철거한 것은 물론 건축법, 산림법 등을 들먹이며 제작사를 고발하기까지 해 적잖이 논란이 됐다.
 
당시 안상수 전 시장이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될 수 있었는데 이를 행정의 잣대만으로 철거해 인천시의 대외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시 문화관광체육국장과 중구 부구청장 등 책임자를 대기발령했다. 그러나 시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책임에선 자유롭지 않다. 또 당시 영화인들 사이에서는 “실미도 세트를 남겨놓으면 인천에서 그렇게 좋지못한 과거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에 당시 공직자들이 불편함을 느꼈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돌기도 했었다.
 
결국 그렇게 철거된 후 서울 충무로에서는 ‘인천에서는 영화를 제작하면 안 된다’는 말을 영화인들끼리 정보공유를 하는 웃지못할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또 ‘나무위키’ 등의 위키사이트에서는 “관광지를 스스로 포기했다”는 등의 조롱 섞인 표현이 지금도 등장하고 있다. 실미도 세트장을 어이없이 잃고도 느끼는 게 없었는지, 무의도 하나개 해수역장에 있었던 ‘칼잡이 오수정’ 세트장을 방영 후 곧바로 철거하면서 다시금 논란을 빚는 등의 행정은 반복돼 왔다.
 
또 지난 2000년 개봉했던 ‘시월애’는 강화 석모도에 조성했던 세트장 ‘일 마레’가 태풍에 의해 사라졌음에도 이를 전혀 모르고 보러 온 관광객들이 한동안 허탕을 치기도 했다. 당시에도 PC를 중심으로 온라인 네트워크가 조성돼 있었던 만큼 시나 일선 군·구 홈페이지를 통해서라도 사실이 알려졌다면 일부 막을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극한직업’은 영화 촬영을 종료한 후 아예 스스로 신속하게 이를 ‘원상복귀’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을 테지만 과거 ‘실미도’가 보여준 행정의 자세를 감안해 ‘아예 문제를 만들지 말자’고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게 영화는 1,500만 관객을 얻고 흔적 없이 떠났다. 그렇게 떠난 자리에, 인천의 공직자들이 영화인들의 성과를 이입시켜 이른바 ‘자위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 적잖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중구 실미도에서 촬영한 영화 ‘실미도’의 스틸컷 중 하나. 대한민국 영화사 최초의 천만 관객 영화라는 점 때문에 인천시가 ‘천만 관객 발상지’라는 표현을 한 것인데, 정작 영화계는 이 영화에 대한 과거의 행정을 언급하며 “뻔뻔하다”는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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