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취업' 고통 … "당하지 않으면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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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취업' 고통 … "당하지 않으면 모른다"
  • 이혜정
  • 승인 2010.12.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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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지내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는 대학생들.
취재: 이혜정 기자

"학교공부보다는 취업준비를 하는 게 더 힘이 들어요. 남들 다 하는 자격증은 기본이고 뭐 특별한 자격증이나 경력이라도 한줄 넣으려고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회사에서 예쁜 여자를 뽑는다는 주변 사람들 이야기에 외모 가꾸는 일에도 신경을 쓰고 있어요." 

I대학 4학년 황모(25)씨의 '하소연'이다.
 
황씨는 학교 수업 이외에는 취업준비를 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한다. 아침 9시부터~11시까지 HSK 시험을 위해 중국어 학원에 갔다가 바로 학교 도서관으로 이동해 토익공부를 매달린다. 그리고 자격증을 따려고 주말을 이용해 전산회계학원도 다니고, 틈틈이 피부관리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K대학 4학년 이모(24)씨도 황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씨는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자들보다 직장을 구하기 더 어렵다는 걸 절감한다. 일부 동기생들은 취업을 했어도 비정규직이기 일쑤다.

"요즘 대학의 취업준비생들은 거의 사법고시 준비생과 비슷해요. 학교성적 3.5 이상에 토익과 컴퓨터자격증은 기본이죠. 남들과 다른 뭔가 해보려고 한두 개 자격증도 땁니다. 아직 취업전선에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친구들 이야기를 듣다보면 정말 속상해요. 얼마 전 친구가 면접을 보고 왔는데, 스펙이 아닌 각선미와 외모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렇게 취업에 발버둥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생각에 좌절감부터 생깁니다." 이씨는 길게 한숨을 내쉰다.
 
황씨의 경우 더 나은 직장을 구하려고 갖은 애를 쓴다. 지난해 2학기에는 휴학을 하고 영어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영어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뒤, 3개월 동안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그리고 중국어 실력향상을 위해 3개월 간 중국 상하이에서 인턴생활을 하고 올 중순에 다시 학교로 복학을 했다.
 
"이력서에 한줄이라도 늘리고 싶은 심정에 휴학 1년 동안 이것저것 해봤어요. 그래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아서 졸업을 유예하고 내년에는 미국 인터십을 가려고 지금 준비하고 있어요." 황씨의 말이다.
 
이처럼 취업준비를 위해 힘겹게 시간투자를 해도 취업이 될지 고민하는 여성들이 많다. '사회풍토상'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직장에서 채용하기 꺼려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또 집안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여성들의 경우 부모들은 빨리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하라고 성화다. 그래서 차라리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돈이나 벌까 하는 생각을 하는 여성들도 많다. 하지만 그 동안 열심히 공부한 것도 아깝고, 더 나은 일을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러지 못하기 일쑤다.


취업을 해도 직장현장에서 겪는 여성들의 어려움은 또다른 문제로 다가온다.

홍모(27)씨의 억울함을 한 번 들어보자.
 
"이건 말도 안 되요. 회사에 결혼한다고 알리자마자 업무태만이라는 사유를 내걸어 회사에서 나가라고 했어요. 더군다나 여성이 더 많은 회사에 이런 황당한 경우가 어디 있어요?"
 
홍씨는 지난해 9월 W섬유회사에 입사를 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A팀장에게 결혼을 하게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자 팀장은 못 들은 걸로 하겠다면서 확실히 결정되면 말해달라고 했다. 그러다 지난 6월 결혼 날짜가 결정되면서 팀장에게 결혼이 확정됐다는 사실을 알렸다. 팀장은 "입사한 지 얼마나 됐지?, 왜 결혼을 빨리해?" 등 모욕적인 말을 했다. 
 
"회사에 입사하기 전부터 황당했어요. 설문지형태의 입사지원서란에 입사 후 결혼계획과 출산계획에 대해 쓰라고 하더라고요. 형식적인 것이려니 생각하고 결혼계획 1년, 출산계획 3년이라고 작성했어요. 그런데 팀장이 회사에서 원하는 답변은 결혼계획 3년, 출산계획 5년이라면서, 당신이 계약을 파기한 거니까 스스로 나가라고 어이없는 이유를 대더라고요."
 
홍씨는 갑자기 업무태만이라는 명목으로 사직서 제출을 강요당하다가 '권고사직'으로 쫓기듯이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는 억울한 마음에 노동청에 신고하려고 했지만, "잘 해봐야 복직"이라는 데 이런 분위기에선 그 회사를 다니기 싫어 그냥 있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회사 해외영업부에서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던 홍씨는 수도권 대학의 국제통상학과를 4년 평균성적 3.5 이상으로 졸업했다. 토익 845점, 오픽(OPIC) IP등급으로 원어민 수준의 영어회화 실력과 일본어 실력도 갖췄다. 누가 봐도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에게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보이지 않는 벽'에 시달린다.
 
국가에서는 출산장려나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 등 말로는 떠들지만 정작 현실은 그렇지 않다. 홍씨처럼 결혼을 한다는 이유로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다. 
 
홍씨는 "오죽하면 퇴사 후 6월에 결혼하고 지금까지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다"면서 "7~8곳에 이력서를 낼 때 기혼이라고 썼다가 퇴짜를 맞은 뒤에는 미혼으로 서류를 제출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취업이 될 때까지 자신이 기혼여성이라는 걸 밝힐 의사가 없다"면서 "결혼‧출산‧육아라는 게 사회적으로 여성들에게 큰 부담을 주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여전한 여성고용 불안정

 

※ 출처 : 여성가족부 자료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생활밀착형 여성가족정책의 방향정립을 위한 20~30대 여성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으로서 직장생활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낮은 임금과 과중한 업무부담(41.5%), 불규칙하거나 늦은 퇴근 시간 (21.4%), 여성에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승진장벽(11.5%), 업무배정에서의 성차별(8.3%), 남성중심적인 회식 및 접대문화(4.1%), 비공식적으로 유통되는 정보로부터 소외(3.8%) 등으로 나타났다.
 
또 여성들이 직장을 그만 두는 원인을 보면 업무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19%, 출산‧육아부담 18%, 더 나은 일자리로 이직·창업·진학·유학 등을 위해 16.2%, 결혼을 계기로 11.1%, 하는 일에 비해 수입이 너무 적어서 10.7%, 회사의 파산‧구조조정 6.4% 등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여전히 여성들이 결혼‧출산‧육아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결혼과 출산을 지연시키거나 안 하도록 만들고 있는 원인임을 보여준다. 특히 자녀를 둔 여성 중 출산휴가제도를 이용해 본 여성이 24.6%였고, 육아휴직제도를 이용해 본 여성은 그보다 더 낮은 10.1%에 불과했다. 출산과 육아 휴직제도가 아직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 미혼여성 중 결혼 후 출산을 생각하는 여성이 적어 저출산 문제가 단순히 여성의 출산기피 현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회에 진출하려는 여성들. 그들은 무엇보다 '남자들과 동등한 대우'와 '고용안정'을 바라고 있다.
 
 ※ 출처 : 여성가족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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