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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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화를 향한 80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 김호선 시민기자
  • 승인 2013.08.17 0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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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까지 독립운동가 5천명 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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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8주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모습
 
서대문 독립공원의 서대문형무속 역사관 붉은 담장길 따라 붉은 건물이 빼곡하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10월 일제강점기에 경성감옥으로 시작되어 1945년 해방 때까지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수감시켰다. 당시 수감기록에 의하면 그 수가 5천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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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현대사에서도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인사들이 수감되었던 곳이다.
그 현장이 이렇게 보전되어 광복절 수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일제 만행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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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독방

수감시 취조 후 옥사로 이동하기 전 감금했던 곳. 곳곳에서 들려오는 고통의 비명소리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고문의 공포로 휩싸인 공간. 그러나 이러한 지하독방에서도 독립운동가는 만세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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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내부, 복도 양 옆으로 감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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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관 고문

옴짝달싹할 수도 없이 좁은 공간에 사람을 감금하여 앉을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벽에 서있는 관이라 하여 벽관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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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감자 노역 시 탈주를 방지하기 위해 허리에 채웠던 형구(무게 5kg, 길이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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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수

수감자 이송 시 일반인에게 독립운동가의 얼굴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얼굴에 씌웠던 도구, 2008년에 발굴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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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 고문

상자 안쪽에 날카로운 못을 박아 놓고 사람을 상자 안에 집어 넣어 마구 흔들어 못에 찔리게 하여 고통을 주었던 고문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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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벽장

수감자들이 운동할 때에 서로 대화하는 것을 방지하고 감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여러 개의 칸막이를 만들고 각 칸에 수감자들을 분리, 수용하여 운동을 시켰던 일종의 운동시설. 1920년대 지었졌다가 해방 이후 철거 되었던 것을 2011년 원 위치에서 약 20m 이전하여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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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한의 미루나무(높이 30m)와 사형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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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을 위해 외쳤던 구호들

"바람 앞에 흔들리는 조국, 만 사람들이여 일어나라" 
"죽어서도 차마 놓지 못할 광복의 그 찬란한 꿈"
"흰 저고리 피로 물들어도 웃음으로 밝은 세상 꿈꾸리라"
"그대는 정년 일신의 딸 조선 독립의 화신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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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의 망루와 담장

서대문형무소의 울타리로 개소 당시 함석판으로 되어 있던 것을 1923년 벽돌로 다시 4m의 담장과 수감자들의 탈옥을 막고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1930년대 후반 설치되었던 높이 10m의 망루이다.
당장은 총 1,161m 가운데 현재 앞면에 80m, 뒷면에 200m가 보존되어 있다. 망루는 총 6개소 가운데 앞, 뒤면 각 1기씩 2기가 보존되어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관람 위해서는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출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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