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는 엄마 - 우디 앨런 감독 영화 [인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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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는 엄마 - 우디 앨런 감독 영화 [인테리어]
  • 이한수 선생님
  • 승인 2015.04.08 15: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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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수 선생님의 교실밖 감성교육] 제21회

간섭하는 엄마 때문에 힘든 아이 얘기를 하면 엄마가 참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아이가 신경질을 내고 대드는 게 엄마의 잘못 때문이기만 할까요. 자칫 이런 얘기가 엄마들 마음을 불편하게 할까봐 걱정이 됩니다. 엄마도 위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자식 잘 되라고 인생 전부를 바쳤는데 그게 아이를 망쳤다니요, 억울해서 미쳐 버릴 것만 같은 엄마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요. 그냥 위로하는 차원이 아니라 뭔가 근본적인 치유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엄마가 매사 간섭을 하면 아이가 너무 힘들어진다는 건 이해할 만한데 그러는 엄마도 마음이 너무 아프며 속으로 병들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 성심편(省心篇)에 ‘사람이 너무 살피면 친구가 없다(人至察則無徒)’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너무 깐깐하면 곁에 있는 사람이 불편하다는 의미이겠지요. 그런데 ‘무도(無徒)’라는 말이 참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徒(무리 도)라는 글자는 ‘걷다’는 의미의 ‘?’와 ‘달리다’는 의미의 ‘走’가 결합한 글자인데 저는 이 글자를 ‘동행(同行)’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러니 너무 깐깐하게 살피면 외로워진다는 게 더 정확한 의미이겠지요. 엄마가 간섭이 심하면 아이가 무척 괴롭겠지만 그러는 엄마는 더 아프다는 걸 새겨 봐야 합니다. 엄마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겠습니까.
 
 
혼신을 다해 남편과 자식을 뒷바라지 해온 엄마가 가족 해체의 원인으로 비난받게 되는 슬픈 이야기가 있어 소개합니다. 영화 [인테리어]는 누가 보기에도 강인한 엄마가 실상은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으며 나중에는 인생 전체가 무너져 버리는 모습을 아프게 그리고 있습니다. 엄마가 정성 들여 키운 딸들은 저마다의 꿈을 좇아 매진하고 있으며 엄마의 후원에 힘입어 아버지의 사업은 자리를 잡았습니다. 맏이는 촉망받는 시인이 되었으며 재능은 있지만 자리를 아직 잡지 못한 둘째를 엄마는 헌신적으로 돌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이런 헌신에 자식들은 감사하지 않습니다. 엄마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라고 둘째 살림집을 수시로 드나들며 세간을 정리(인테리어)해 주는데, 정작 당사자에게는 엄마의 이런 관심이 견딜 수 없는 집착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막내는 엄마의 간섭이 싫다고 일찌감치 엄마와 연락을 끊고 삽니다. 성공한 맏이도 삶이 황량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출세욕이 지나쳐 무엇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늘 빈곤감에 허덕거리며 삽니다.
 
혼신을 다해 키워온 자식들이 다 이 모양이니 엄마의 삶은 근본부터 흔들립니다. 엄마는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집안의 소품들을 매일 이리 저리 옮기며 인테리어에 매달립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성공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지 않으면 외로움을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모두 소통하지 못하고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을 예쁘게 꾸미는 데에만 신경을 쏟으며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부인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 남편이 이혼을 요구하면서부터 엄마의 견고한 세계는 허물어지고 맙니다. 집안의 장식물들을 매일 이리저리 옮기며 살림을 가꾸는 엄마의 ‘인테리어’는 결핍감을 감당할 수 없어서 생기는 도착증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성공하려면 딴 생각 하지 말고 일로매진(一路邁進) 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경영사상가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은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입니다. 10년 동안 한 가지 일에 전념하면 안 될 일이 없을 법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성공하려면 그 한 분야 이외의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인간의 인지 능력은 한계가 뚜렷해 관심 있는 것만 보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남보다 앞서 가기 위해 빨리 달릴수록 내 앞의 것만 보이는 '터널시야효과(Tunnel vision effect)‘에 빠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제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한테 동행자(同行者)가 있을 수 없겠지요.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집안 살림을 위해 맞벌이를 하는 요즘 엄마들 참 외롭습니다. 바깥일도 보고 집안일도 감당하느라 늘 바쁜데 아이가 학교에 가면서부터는 그야말로 초인적인 힘이 필요합니다. 차분하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기다려 줄 수가 없고 그러니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간섭이라고 느낍니다. 직장 일, 집안 살림, 아이 교육을 다 감당하려니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정서 교감은 ‘배부른 소리’가 되어버리지요. 그렇게 고생을 해서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고 살림살이도 펴지고 아이도 제법 공부를 하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여유가 좀 생기겠다 싶었는데 느닷없이 파국이라니요. [인테리어]가 그리고 있는 파국이 너무 비극적이라 이런 이야기로 엄마들이 치유 받을 수가 있을까, 오히려 상처를 덧내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둘째가 ‘이게 다 엄마 탓’이라며 소리를 지를 때에는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육아에 관한 지혜로운 말씀으로 엄마들을 일깨워주고 계시는 ‘법륜’ 스님도 이게 다 엄마 탓이라고 하십니다. 유아기 때에는 엄마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세 살부터는 아이가 엄마 아빠의 생활 모습을 보고 배우는 만큼 부모는 각자의 내면에 충실하고 서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답니다. 자신에 대해 성찰하지 않으면서 자식의 일상을 사사건건 살피고 따지는 것은 결국 아이를 병들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정서적으로 피폐해지게 만든답니다. 엄마가 가족을 넘어 이웃에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관심을 갖고 사랑을 실천하면서 자아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가장 큰 아이 사랑이 아닐까요. 법륜 스님은 자식이 클수록 부모는 냉정해져야 한다고 했는데 냉정한 사랑이라는 게 참 어렵습니다. 관심을 갖고 살필수록 멀어지고 거리를 두어야만 더 잘 통하게 된다는 말이 요령부득이랄 수도 있는데 이 역설이 참사랑의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알 듯하기도 합니다. 목적의식을 내려놓고 ‘나는 누구인가’ 물으며 나 자신에게 무한 사랑의 시선을 주어야겠습니다.
 

인성여자고등학교 이한수 선생님
블로그 http://blog.daum.net/2han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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