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왔으니 추석에는 또 못 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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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왔으니 추석에는 또 못 오지?"
  • 김인자
  • 승인 2018.09.1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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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강화 큰집

"나, 너도 못보고 죽는 줄 알았다.
병원에 있는데 나는 니가 그렇게 보구싶더라."
 
비오는 일요일
강화에 사시는 큰아버님댁에 갔다.
"비오는데 아버지 산에 가실까?"
"아부지가 가신댔으니까 비와도 가실걸." "안가실거야.오늘 못가면 추석에 가등가.비 안오는 평일에 다녀오지뭐."
"아부지한테 전화드려봐. 아부지가 가신다고 하셨으니 오늘 비와도 가실거야."
 
나는 안다. 할머니하고 할아버지들은 당신이 한번 정하신건 왠간해선 번복을 하지 않으신단걸.
당신들이 간다하고 정하셨으면 하늘이 두 쪽 나도 꼭 가셔야하고 온다하고 정하셨으면 꼭 오신다는걸.
 
지난 여름 시큰아버님이 암수술을 하셨다. 병원에 계실 때 진즉 찾아뵀어야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병원으로 찾아뵙지를 못했다. 큰어머니도 앉아서만 생활하신다는 말을 일찌감치 들은터라 찾아뵙지 못한 송구함에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않았더랬다.
 
"아부지가 이도한테 강화가자고 하셨대 일요일에."
저녁상을 물리는데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툭 던진다.
"추석에 안가시고 미리 다녀오시려나보다."
"할머니 산소에도 미리 가보고 납골당도 가보신다고.
 
15년 쯤 되었을래나. 시아부지가 납골당에 가족묘를 사셨다.
아파트로 치면 대형 평수다.
"니들 자식에 자식까지 다 묻힐 수 있어. 그러라고 내 일부러 큰거 샀다. 풍광도 좋고 앞에 뭐 하나 거칠 것이 없게 탁 트인게 제일 전망 좋은 곳에 샀다. 어떠하냐, 좋지?"
 
생전 결혼이란걸 안하고 살 줄 알았던 시동생이 늦은 결혼을 하고 딸 낳고 아들 낳고 알콩달콩 잘 사는게 기특하고 좋으셨나보다.
"딸 다 필요없다. 아들이 최고야. 뭐니 뭐니해도 제사 지내 줄 아들이 최고지."
"아부지, 저는 딸만 둘인데."
"너는 니가 나한테 최고라서 너는 아들 없어도 괜찮다.이도 아들이 니 제사도 지내줄거다. 딸들 다 필요없다.
지금도 봐라. 내 끼니 정성껏 챙기는건 너 밖에 없잖냐."
 
지난 여름 시어머니가 허리수술을 하셔서 병원에 계실때 한 달 넘게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 끼 시아버지 식사를 챙겨드렸다. 시아부지는 그때도 제사 얘기, 아들이 최고란 얘기를 하셨더랬다. 딸은 있어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딸만 둘인 며느리 앞에서.
 
"애들 다 데리고?"
"응, 돌도 안된 애길 데리고 납골당엘 왜 가신다는건지 아부지도 참."
툴툴대는 남편 맘을 모르는 바 아니나 난 시아부지가 왜 그러시는 줄 안다.
시아부지는 시동생이 낳은 아들을 조상님들께 자랑을 하고 싶으신거다.
 
"아부지가 강화 큰집에 가자고 전화하셨어."
"다녀와."
"자긴 안가고?"
"어, 나는 안가."
했더니 남편이 하는 말
"자기 안가면 나도 안갈래.
하는 거다.
"아부지가 가자고 했담서 어캐 안가냐?" 했는데
막상 일요일이 되어 밍기작 밍기작 가기싫어 늑장부리는 남편을 보니 안되겠단 생각이 들어 채근해 길을 나섰다.
 
"산소에 가져갈 술이랑 포랑 사셨나?"
"몰라."
"어무니가 사서 보내셨겠지?
큰집에 과일이라도 사서 가자."
"아부지가 사셨겠지."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더니 시아부지가 산소에 가져갈 제물이랑 사과 한 박스랑 사셨단다. 큰아부지가 큰어무니대신 조석 끼니를 챙기신다기에 밑반찬을 사가려고 재래시장에 들렀다.
"차 세울 때 없어. 한바퀴 돌고 올테니 빨리 사가지고 와."
"얼굴 좀 펴라.이왕에 나선길. 아부지 앞에서도 그렇게 인상써라." 처갓집에 가자는 것도 아닌데 볼멘 소리를 하는 성질 급한 남편. 가뜩이나 가기 싫어 하는데 한 소리 듣기 전에 서둘러 물건을 사려고 하니 마음이 더 바빴다.
앉아서 생활하시는 큰어머니 대신 큰아버지가 조석을 하신다하니 드실 반찬이 필요할 것 같았다.'
'소문난 밑반찬가게' 간판이 보인다. 한 눈에도 맛있어 보이는 반찬들이 팩에 예쁘게 포장되어있다. 큰아버지 큰어머니 두 분 다 틀니들을 하셨으니 멸치볶음은 중멸치보다 잔멸치가 좋겠지 하는 생각에 잔멸치 두 팩 사고 아몬드랑 해바라기씨, 땅콩 등을 버무린 견과류 두 팩도 사고 큰아버지 좋아하시는 더덕무침도 두 팩사고 깻잎 간장무침도 두 팩, 고추절인거, 잔게고추장 무침도 두 팩 사고 김 무침, 동태전도 사고.
밑반찬을 사고 보니 다음 주면 추석이라 그런지 떡집에 맛있는 송편도 있길래 송편도 샀다. 빵집에 들려 롤케잌이랑 과일가게 들려 큰어머니 좋아하시는 레몬과 아보카도를 샀다. 뜨끈 뜨끈한 두부도 만들어 팔기에 사려고 두부집가는데 남편이 빨리오라 성화다.
 
"뭘 그렇게 오래 걸려? 세 바퀴나 돌았다. 큰아버지 큰 어머니 당신들 자식도 다섯이나 있는데.우린 할 도리만 하믄 된다."
기분좋게 나선 길이 아니어서일까?
남편은 큰집을 가는 내내 길을 헤맸다.
"귀신한테 홀렸나? 왜 같은 길을 뺑뺑 도는 기분이 들지?"
먼저 시아버지를 모시고 출발한 시동생한테서 어디냐고 계속 전화가 왔다.
큰아버지가 식사챙기기 어려울테니 큰집 들어가기 전에 점심먹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길을 헤매는 남편 덕에 점심은 못 먹었지만 강화 온 섬을 순회했다.내가 좋아하는 바다옆에 딱 붙은 동막해수욕장은 사람들로 붐볐다.여름철 휴가때처럼 텐트친 사람도 많고 주차장도 차들로 꽉 찼다.
 
예전에 큰집에 갈때는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갔다. 그런데 이제는 석모도에 다리를 놓아서 배를 타지않고도 큰집에 간다. 그래서 그런지 외포리선착장은 갈매기한테 주는 대형 새우깡을 팔던 가게 대신 대형 음식점들로 꽉꽉 들어찼다. 대형 젖갈수산시장이 들어서 흡사 연안부두를 보는 듯했다. 짧은 거리였어도 배를 타려고 줄줄이 섰던 차들의 긴행렬, 사람들이 던져준 새우깡을 먹으려고 끼룩끼룩 거리며 배에 낮게 날아들던 갈매기들이 그리웠다.
 
"대파 좀 따주랴?"
"감자좀 주까?"
"뭐 줄게 없네." 하시며 뭐 하나라도 더 주시려는 큰아버지.
"그걸 다 주면 어떻해요? 추석때 오는 애덜도 줘야지."하며 말리시는 큰어머니.
"아 나는 몰라. 먼저 가져가는 놈이 임자야." 하시며 고추를 하나라도 더 따서 봉투에 넣으시는 큰아버지가
출발하려는 차창 밖으로 잡은 손을 안 놓으신다.
"애덜 밑으로 들어가는 돈도 많을건데 뭔 돈을 이르케 많이 주냐? 밑반찬도 그케 많이 사오고."
"큰아부지 큰어머니랑 읍내 나가셔서 잡숫고 싶은거 사드세요. 큰아부지 매끼니 식사 챙기시는거 힘드세요."
"그래, 고맙다. 내 잘 쓸께. 힘들텐데 냉장고 청소까정 다해놓고 밑반찬도 채워주고.
니 애비는 참 복이 많다. 싹싹하고 이쁘고, 똑똑하고, 으른맘을 으찌 그리 잘 헤아리냐.."
"큰아부지 ,이장님댁 마이크 갖다드리까요?" 옆에 있던 남편이 웃으며 안하던 농을 한다.
"그래, 그래 ." 큰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오늘 왔으니 추석에는 또 못 오지? 바쁘니까 안 와도 된다." 말씀은 그리 하시면서 잡은 손도 못 놓으시고 눈으로 손으로 또 오라시는 큰 아부지를 보니 나도 따라 눈물이 난다.
"큰아부지, 그러고보니 제가 오늘 큰어머니랑 화투를 못쳤네. 잔전 많이 바꿔가지고 저 금방 또 올께요."
"그래 그래 금방 또 오너라. 어서 가."
"아, 영감이 손을 놔야 가지요. 애 손 다 짓무르겄네." 큰 어머니가 소리를 빽 지르신다.
차가 출발하고 뒤를 돌아보니 서서 큰아버지와 앉아 큰어머니가 잘가라 손을 흔드신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내 눈앞이 자꾸만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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