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합리화의 덫에서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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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합리화의 덫에서 벗어나기
  • 최원영
  • 승인 2021.07.0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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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의 책갈피 - 제7화]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합리화는 자책감이나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한 행위를 자기 스스로 정당화시키는 심리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심리적 방어기제가 필요한 이유는 자책감이나 죄의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일상생활을 온전히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가 지나치게 되면 건강한 사회생활이나 원만한 인간관계는 불가능합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경향이 지나치게 강한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며, 심한 분노나 서운함을 극단적으로 표출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을 판단할 때는 그 상황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해 합리화하기보다는 조금 더 넓은 시각이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나의 상황을 두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에 대한 좋은 사례가 《따뜻한 영혼을 위한 101가지 이야기 2》(잭 캔필드 저)에 나옵니다.

 

성지를 순례 중인 두 성직자가 어느 강가의 여울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아름답게 차려입은 어느 여인이 깊은 물을 어떻게 건너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걸 보았다.

그래서 성직자 한 분이 별 어려움 없이 그녀를 등에 업고 강을 건너서 반대편 마른 땅에 내려주었다. 그리고 성직자들은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런데 한 시간쯤 지났을 때 동행하던 성직자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여인을 만지는 것은 분명히 옳지 않네. 여인과 가까이 접촉하는 것은 계율에 어긋나지 않은가? 어떻게 그런 계율을 그리 쉽게 어길 수 있단 말인가?”

여인을 업어준 성직자는 조용히 걷다가 마침내 이렇게 대꾸했다.

“나는 벌써 한 시간 전에 그 여인을 강가에 내려놓았는데, 자네는 왜 아직도 그녀를 업고 있는가?”

 

그들은 ‘성직자가 여성의 몸을 만지는 것은 안 된다’라는 계율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계율은 누군가를 진실로 사랑해야 한다는 종교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입니다. 곤경에 처한 여성이 도움을 청했을 때 그들은 여성의 몸을 ‘만져서는 안 된다’라는 계율과 ‘도와야 한다’라는 계율의 원래 목적 사이에서 당황할 수 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을 가야 하는데, 지하철이 고장이 났다면 버스로도 얼마든지 갈 수 있을 겁니다. 여기서 서울은 ‘목적’이고, 지하철이나 버스는 ‘수단’입니다. 이렇게 목적은 변하지 않지만, 수단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계율은 종교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따라서 목적이 훼손되지 않는다면 수단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의 사례에서, 한 성직자는 그 여자를 ‘여성’으로 봐서 ‘안 된다’라고 했지만, 다른 성직자는 그 여자를 ‘사람’으로 봐서 업어줄 수 있었을 겁니다.

또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이 사례는 《어디에 있든 행복하라》(김원각)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500명 제자가 한 곳에 모여 수행 중이었다. 어느 날 도적 떼가 몰려와 수행승들의 옷과 여러 물품을 빼앗아갔다. 제자들이 이 사실을 스승에게 알리자 스승이 말했다.

“너희는 왜 큰 소리로 외치지 않았느냐?”

“스승님께서 고함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외치지 못했습니다.”

“만일 너희가 대항하여 외치지 않는다면 도적들은 번번이 빼앗아 갈 거다. 지금부터 도적을 만나면 몽둥이나 돌을 들고 대항하되 실제로 해치진 않도록 해라.”

스승은 다시 말했다.

“육신과 목숨과 재물은 아낄 게 못 되지만 가벼이 여겨서도 안 된다.

몸은 썩어 사라질 것인데도 몸을 편안하게 하려고 온갖 죄악을 저지르다가 뒷날 나쁜 곳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아낄 게 못 된다. 그러나 몸이 있기 때문에 성현을 만나 예배를 드릴 수 있고, 그를 찾아가 듣고 배움으로써 선행을 할 수 있으니 몸을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자기 목숨을 위해 남을 죽이기도 하고, 도둑질도 하고, 온갖 탐욕을 부리다가 끝내 지옥에 가기 때문에 목숨을 아낄 게 못 된다. 그러나 목숨이 있기 때문에 성인의 말을 듣고 진리를 깨달아 참다운 삶을 누릴 수 있으므로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재물이란 온갖 죄악을 짓게 하면서도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에 아낄 게 못 된다. 그러나 재물로써 남에게 베풀어 온갖 복을 지을 수 있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할 수 있기 때문에 가벼이 여겨서도 안 된다.”

 

맞습니다. ‘큰 소리 내지 말라’는 계율을 지키는 것보다 왜 그 계율이 있어야 했는지 그 본질을 알아야만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돈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불공정하게 또는 남의 것을 착취함으로써 버는 돈이 나쁩니다.

돈을 어떻게 벌었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돈이 나쁘냐 혹은 좋으냐가 결정됩니다.

돈에 대한 생각을 한 가지 기준으로만 판단하면 틀 속에 갇혀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권력도 같습니다. 명예도 같습니다. 권력이나 명예가 ‘나’란 틀 속에서만 맴돌 때는 그 권력이나 명예가 ‘나쁜’ 것이 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사용될 때는 당연히 ‘좋은’ 것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도 틀 속에서 과감히 벗어나 틀 밖의 세상을 관조하는 여유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더더욱 넓게 보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우리를 틀 속에 가두어 세상을 넓고 깊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마음작용 중에 ‘자기합리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생각하는 정답과 남이 생각하는 정답이 다를 때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기를 합리화시키려는 심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자기합리화가 종종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점은 지나친 자기합리화가 우리 자신의 눈과 귀를 막고 자기중심적이 되어 인간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유머에서 자기합리화가 얼마나 큰 판단 오류를 범하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한 노인 부부가 있었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낚시하러 아침 일찍 나가고 할머니는 한가로이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뉴스 속보가 나왔다.

“지금 77번 국도에서 신원불명의 차량이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77번 국도를 통행하시는 분들은 특히 조심해주시기 바랍니다.”

할머니는 낚시를 간 할아버지가 걱정되어 전화했다.

“영감, 지금 77번 국도에서 차 한 대가 역주행한다는데 조심히 다녀와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했다.

“제길, 한 대가 아니야. 수십 대가 거꾸로 오고 있다고!”

이 얘기는 웃자고 하는 유머이긴 하겠지만 자신이 역주행하고 있는데도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는 남들이 역주행하는 것처럼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자기합리화가 불러오는 비극입니다.

다른 유머 하나도 전해드리겠습니다.

 

서울서 온 신혼부부와 경상도 토박이 신혼부부가 여행 중이었다. 우연히 두 부부는 지갑 파는 곳을 들르게 되었고, 서울 아내가 먼저 망사 지갑을 보고 말했다.

“자기야, 요새 이 지갑이 유행이래. 이거 사줘!”

그러자 서울 남편은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어, 당신이 원한다면 뭐든지 사줄 거야.”

그 모습을 본 경상도 아내가 질투가 나서 남편에게 말했다.

“보이소, 지도 망사 지갑 한 개 사주이소.”

그러자 경상도 남편 왈, “와, 돈이 덥다 카드나?”

 

여기서도 자기합리화하는 속성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망사 지갑을 바라보는 경상도 아내와 남편의 관점은 무척 다릅니다. 특히 남편의 말 속에는 자기가 그렇게밖에 말할 수 없는 이유가 매우 논리정연합니다. 이것이 자기합리화가 빚어낸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기합리화의 덫에서 벗어나기’라는 제목으로 4가지 사례를 살펴보았습니다. 자기합리화는 우리 스스로가 죄의식이나 자책감에서 벗어나 온전한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한 마음작용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심하면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해나가지 못합니다. 자기합리화의 덫에서 벗어나려면 ‘목적’과 ‘수단’을 구분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고, 목적은 변하지 않지만, 수단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유연한 생각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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