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여성 전유물'이란 생각은 '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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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 '여성 전유물'이란 생각은 '구태'
  • 이혜정
  • 승인 2011.06.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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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구성원 모두 해야 … 하루 가사노동 여성 2시간38분, 남성 24분


취재 : 이혜정 기자

"결혼하기 전 가사노동은 각자 나눠서 하자고 했죠. 청소와 설거지는 제가 하고 요리와 빨래는 주로 아내가 합니다. 청소를 했는데 먼지가 있다거나 설거지가 깨끗이 안 됐다고 잔소리를 듣기도 해요. 아내가 다시 할 때가 종종 있어요."

부평구 부개동에 사는 김우진(33. 가명)-김미영(30)씨는 결혼 1년차 맞벌이 부부이다. 연애기분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 아직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는 신혼부부이다. 이 신혼부부 직장은 서울에 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오후 10시를 넘기기 일쑤. 그래서 평소엔 피곤해 집안일은 주로 주말에 몰아서 한다. 이 일은 '네 일', 저 일은 '내 일' 나누지 않고 자연스럽게 서로 도울 수 있는 집안일을 맡다 보니 주로 우진씨는 청소와 설거지, 미영씨는 요리와 빨래를 한다.

"아내가 주로 음식을 하고, 너무 피곤하면 외식을 하기도 해요. 먹고 난 후 제가 설거지와 음식쓰레기를 버리러 가요. 그동안 아내는 한 주간 모아둔 빨래를 하거나 걷어서 개고요. 둘 다 마음이 내키면 대청소를 하기도 해요. 저는 남자일, 여자일 따로 나누는 게 싫어요. 물론 가사노동도 마찬가지에요." 우진씨 얘기다.

그는 "맞벌이라면 집안 일을 함께 하는 게 당연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 '남들 시선'을 의식한다고 한다. 우진씨는 "어릴 때부터 집안일은 엄마 또는 여자가 하는 거라는 교육을 받아 그런 거 같다"면서 "마음으로 함께 집안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남 시선이 신경 쓰이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현대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많아지면서 맞벌이 부부가 늘고 가사노동에 적극 참여하는 남성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이들은 '가사노동은 여성들만의 일이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남구 학익동에 사는 결혼 3년차 맞벌이 부부인 김경숙(27. 가명)-최기현(28. 가명)씨에게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아내는 주로 요리와 빨래를, 남편은 청소와 설거지를 한다. 결혼 전 이들은 "가사는 서로 적성에 맞는 걸 나눠서 하기로 약속했다"라고 한다. "아프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닐 때를 제외하곤 자기 역할 분담은 미루지 않고, 서로 해주지도 않는다"는 게 이 부부의 공통점이다.

하지만 이들 의견에는 다른 점이 있다. 남편 최씨는 집안일을 "도와준다"라고 표현하고, 아내인 김씨는 "시킨다"라고 말한다. 김씨는 "집안일을 서로 분담해서 한다는 건 결국 자기 부분을 책임져야 하는데 아직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있다"면서 "우리 남편을 비롯해 대부분의 남성들은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집안 일은 여성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자신도 모르게 갖고 있기 때문인 거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맞벌이 부부라고 해도 가사노동의 대부분을 여성들이 맡고 있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이 매년 5년마다 실시하는 생활시간조사(2009)를 보면, 맞벌이 부부의 하루 가사노동시간은 여성(2시간38분)이 남성(24분)보다 훨씬 많았다. '홀벌이' 부부의 노동시간(여성 4시간11분, 남성 19분)과 비교해 볼 때 여성들은 취업을 하더라도 가사노동 부담이 여전한 반면 남성은 경제활동을 하든, 하지 않든 가사노동 시간에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이처럼 많은 취업여성들은 남편과 가사분담을 하는 일이 '전쟁'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10월 결혼 한미영(28. 가명)씨는 "남편과 같이 직장생활을 하는데도 집안일은 거의 내가 한다"면서 "자신은 '집안일을 별로 해본 적이 없어서 할 줄 모른다'며 도와주는 척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렇치 않은데, 이런 태도를 바꾸는 게 너무 어렵다"라고 말했다.

아직 자녀가 없는 한씨에게는 그나마 가사노동 부담이 덜하다. 아이가 생기면 가사와 더불어 육아까지 자연스럽게 여성의 몫이기 때문이다.

2살배기 아들을 둔 오지연(28. 가명)씨는 "퇴근 후 오후 9시가 돼야 집에 도착하면 밥하고, 빨래하고, 아기 목욕시키고 재우고, 다림질을 하는 등 가사노동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 남편은 밥을 먹고 나서 밤 늦도록 텔레비젼 앞에 있는다"면서 "육아를 여성의 일로만 여긴다면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하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가사노동이 생산활동의 하나이며, 가족 전체의 몫이라는 점을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미희 연수구건강가정지원센터 센터장은 "예전에 비해 남성과 여성 모두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하는 인식이 많이 변화했지만 아직까지 현실적으로 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렇다 보니 여성들이 직장일에 집안일까지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기 일쑤"라고 말했다.

박 센터장은 "특히 최근들어 주 5일제 근무가 도입되면서 여가시간이 증가했지만 오히려 여성의 집안일 부담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가사노동은 가족의 생존을 위한 노동이기 때문에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구성원들이 책임져야 한다'라는 인식개선 교육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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