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배달노동자들 시급 8천원대… "노동환경 개선 지원 조례 제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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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배달노동자들 시급 8천원대… "노동환경 개선 지원 조례 제정해야"
  • 최태용 기자
  • 승인 2023.09.25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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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수익 줄어
사고율 높은데 사회적 안전망도 부족
"지원조례·쉼터 만들어 배달노동자 지원해야"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배달노동자가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 주유소에서 배달노동자가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례1

인천에서 오토바이배달 플랫폼 '요기요' 소속으로 일하는 A씨는 갑자기 몸이 아파도 쉴 수 없다. 요기요는 자신이 일할 시간을 1주일 전에 미리 정하도록 한다. 이걸 취소하려면 24시간 전까지에 해야 자신의 등급이 떨어지지 않는다. 현재 1등급은 그는 스케줄 선택에 자율권이 있는데, 등급이 떨어지면 스케줄을 정하는 데 제약이 생기고 수입까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그는 "등급이 내려가면 일을 잡기 어렵고, 수입도 줄게 된다"며 "아파도 일할 수밖에 없는 노예적 시스템이다"고 말했다.

#사례2

인천에서 오토바이 배달을 하는 B씨는 비와 눈이 오는 날 더 악착같이 일한다. 악천후에는 플랫폼 업체들이 기상할증이나 프로모션을 걸어 배달료를 추가로 지급하기 때문이다. 그래봐야 프로모션은 '2시간 동안 6건 배달하면 1만 원 추가' 정도고, 기상할증은 한 건에 몇백 원 정도다. B씨는 "악천후에는 배달 노동자들도 일하기 힘들다. 플랫폼도 이를 알고 할증과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이라며 "위험해도 할 수밖에 없다. 사실상 선택권이 없다"고 했다.

인천의 배달플랫폼 종사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조례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단법인 노동희망발전소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인천본부는 25일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상상발전소에서 '인천지역 플랫폼 종사자 근로실태 조사 결과 및 처우 개선방안 발표회'를 진행했다.

□ 평균 시급 8,453원, 거리두기 전 60% 수준

이 조사는 인천에서 활동하는 음식배달 플랫폼 '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3곳 종사자 102명에게 설문조사 방식으로 진행됐다.

성별은 남자 98명, 여자 4명이었다. 연령대는 40대가 45명(44.1%)으로 가장 많았고 30대 28명(77.4%), 50대 27명(26.4%) 순이었다. 20대와 60대는 각 1명씩이었다.

설문 결과 응답자들은 긴 노동시간, 위험에 노출된 노동환경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들은 올해 7월 기준 1주일 평균 5.8일, 하루 평균 10시간 일한다. 1주일 57시간꼴로 일한다. 주업인 경우 주간 62시간, 부업은 하루 평균 6시간으로 주간 26시간 일한다.

평균 소득도 높지 않았다. 이들은 배달수수료 명목으로 월 평균 268만 원을 받는다. 이 가운데 평균 72만 원이 오토바이 할부금, 보험료, 휴대전화 사용료, 주유비 등으로 빠져 순소득은 197만 원이었다.

순수 일하는 시간만 따지면 시급 1만 194원, 평균 대기 시간은 87분을 더해 계산하면 시급이 8,453원까지 떨어졌다. 개인 수입이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전보다 38.2% 줄었다.

배달 수수료는 1건 평균 4,065원이었다.

□ 배달노동자들 1년에 평균 1.6회 사고... 보험 가입률은 62% 그쳐

응답자 절반인 50명(49%)이 지난 1년 교통사고를 경험했고, 사고 경험자들의 평균 교통사고 횟수는 1.6회로 조사됐다. 

그런데 응답자 가운데 64명(62.7%)만 유상운송용 종합보험에 가입했고, 나머지 28명(26.5%)은 책임보험에, 10명(8.8%)은 가정용보험에 가입했다.

특히 배민과 요기요는 유상운송용 종합보험 가입이 의무화인 반면 쿠팡이츠는 그러지 않다.

유상운송용 종합보험은 오토바이 배달이나 대여용 오토바이가 드는 보험으로 보험료가 연간 300만~600만 원에 달한다.

응답자들의 94명(92.1%)은 태풍·폭설·폭우·폭염·한파에도 일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 대다수는 "위험한 줄 알지만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국민연금 가입률은 42.2%(43명)로 자영업자의 79.9%에 비해 현저히 낮다.

다만 지난해 5월 개정된 산재보험법 영향으로 산재보험·고용보험 가입률은 81.4%(83명)에 달했다.

 

25일 오전 인천 남동구에 있는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상상발전소에서 '인천지역 플랫폼 종사자 근로실태 조사 결과 및 처우 개선방안' 발표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인천in
25일 오전 인천 남동구에 있는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상상발전소에서 '인천지역 플랫폼 종사자 근로실태 조사 결과 및 처우 개선방안' 발표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인천in

 

남동구·계양구 지원 조례 있지만 인천시 지원 조례는 없어

현재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와 226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배달·플랫폼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한 조례가 있는 곳은 광역 6곳, 기초 21곳이다.

여기서 배달 노동자는 배달업체에 고용된 경우, 플랫폼 노동자는 배민·요기요·쿠팡이츠 등 플랫폼 사업자에게 일감을 받는 특수고용직을 말한다.

인천은 올해 6월 계양구의회에서 플랫폼 노동자 지원 조례를 만들었다. 노동자 보호와 지원을 위한 기본계획과 대책을 만들고, 관련 예산을 세울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아울러 안전교육, 보호장구 지원, 플랫폼 사업자와의 불공정 거래 개선, 법률 상담 등의 지원도 가능하다.

남동구는 올해 6월 이동노동자 권익보호를 위한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택배·배달·대리운전·퀵서비스·학습지 교사·보험모집인 등 업무 장소가 고정되지 않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쉼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이동노동자들의 쉼터 조성부터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연구, 법률 상담, 권익보호 등을 위해 구가 노력해야 한다는 근거가 명시돼 있다.

이 조례는 전국 17개 광역단체 가운데 8곳, 226개 기초단체 가운데 18곳에 마련돼 있다.

계양구와 남동구 모두 내년 본예산에 관련 사업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이보다 앞서 조례를 만든 경기도는 2021년부터 배달노동자·대리운전기사 등에게 산재보험료의 80%를 1년 동안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도 2021년 12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서울형 안심 상해보험을 통해 보험료 전액을, 경남 창원시는 2021년 7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년 동안 산재보험료의 90%를 지원했다.

하지만 인천시는 지원은 물론 쉼터 조성을 위한 조례도 없다.

현재 시의회에서 쉼터 조성 내용이 담긴 지원 조례를 만들고 있으나, 배달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요구와 동떨어진 내용의 조례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6월 부평구 십정동에 문을 연 인천의 첫 이동노동자 쉼터 엠마오는 대리운전 기사들이 많이 찾는 반면 배달노동자들의 발길은 뜸하다. 엠마오는 천주교 인천교구에서 운영하는 인천의 첫 이동노동자 쉼터다.

이에 대해 김광호 배달플랫폼노조 인천지부장은 "배달노동자들을 위한 쉼터는 휴식과 대기가 모두 가능해야 한다"며 "음식점이 밀집한 번화가에 위치해야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거리두기 종료 후 근무환경 더 악화... 인천시 지원 조례 제정 시급

신석진 국민입법센터 위원은 사회적 거리두기 종료 이후 수입 하락으로 배달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이 더 열악해졌다고 지적한다.

그는 "8,000원대 최저임금은 제조업 노동자 최저임금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악천후에도 사고 위함을 감수하고 일을 나가는 것 역시 수입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교통사고 통계를 봐도 운전 숙련도와 무관한 일상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이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시의회에서 추진하는 이동노동자 지원 조례에 각 노동자들의 특성을 반영해 지원 내용을 세부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강은희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은 "쉼터 위치와 제공되는 서비스에서 택배, 배달, 대리운전 모두 수요가 다르다"며 "쉼터가 실질적인 도움이 되려면 다양한 수요를 조사하고, 실현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회를 주관한 이성재 노동희망발전소 대표는 "후발주자인 인천시는 앞선 조례들의 장단점을 파악해 더 좋은 조례를 만들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인천이 플랫폼노동 존중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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