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섭 사진전 ‘신포동 사람들‘ 12일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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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섭 사진전 ‘신포동 사람들‘ 12일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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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4.04.0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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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까지 한중문화관에서
신포시장 간이 어물 건조장     2000. 1019세기 말경 신포동에 생겨난 생선전(生鮮廛)의 전통을 이어 신포시장은 생선 시장의 중심이었다. 생선과 건어물을 파는 상점이 시장 위아래 골목에 즐비했었다. 당시 생선을 말려 건어물 상품으로 내놓기 위해서는 건조장이 필요했는데 시장 건물 옥상이 바로 좋은 덕장이 되었다.
신포시장 간이 어물 건조장(2000. 10) 19세기 말경 신포동에 생겨난 생선전(生鮮廛)의 전통을 이어 신포시장은 생선 시장의 중심이었다. 생선과 건어물을 파는 상점이 시장 위아래 골목에 즐비했었다. 당시 생선을 말려 건어물 상품으로 내놓기 위해서는 건조장이 필요했는데 시장 건물 옥상이 바로 좋은 덕장이 되었다.

 

김보섭 사진전 ‘신포동 사람들 - 그리운 옛 얼굴과 옛 골목‘이 4월 12일(금)부터 20일(토)까지 한중문화관 1층에서 열린다. 개막행사는 12일 오후 5시며, 월요일은 휴관이다. (☏ 764-9771)

전시 제목과 같은 사진집 ‘신포동 사람들 - 그리운 옛 얼굴과 옛 골목‘은 2020년 발간됐는데, 4년 만에 사진 전시회를 연다. 사진집에는 150장이 실려 있는데, 이번 사진전에는 70여점을 추렸다.

김보섭 작가는 1995년 개인전 <인천 차이나타운>을 가진 이래 차이나타운을 지속적으로 기록해 오는 한편 양키시장, 자유공원 등 인천 옛 도심을 중심으로 연평도 등 섬지역을 대상으로 사진작업을 해오고 있다.

리얼리스트로서 향토애와 인간애를 기반으로 하는 그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해석하고 재현하는 다큐멘터리로서 가치와 함께 감성적이기도 한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1990년도 중반 본격적으로 신포동을 찍기 시작했는데, 러시아 선원이 많이 드나들던 시기였고, 주당(酒黨)을 비롯한 신포동 남자들이 보무당당하게 호령하던 때였다.
 

붙박이 인천에 살면서도 이곳 신포동을 사뭇 잊지 못하니 분명 본향 마을이요, 붙어 지내면서도 사뭇 그리우니 이곳 고향 사람들의 얼굴이리라. 생각해 보면 이 길, 저 골목에 세월 두고 불던 바람, 흐르던 노을이 마음을 저며 그리운 고향의 그것이었고, 그 바람, 그 노을이 빚은 얼굴들이 정겨운 고향 마을 미미집 주인이며 다복집 한 사장이었으니….
신포동 골목. 생각해 보면 이 길, 저 골목에 세월 두고 불던 바람, 흐르던 노을이 그리운 고향의 그것이었다. 

 

작가는 몇 년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고, 이 일대 다복집, 대전집, 신포주점에서 몇차례 전시를 갖기도 했다. 김윤식 시인, 최병국 화가, 배진호 화가, 허백 씨, 김진안 씨, 신언열 씨, 임기성 사진작가 등 문화예술인이 모여 오래된 대포집을 중심으로 연 것이었다.

찍는 동안, 전시하는 동안 작가는 오래된 것에 대한 소중함을 재삼 느끼며 지나간, 시간과 공간들을 회고한다. 백항아리, 경인면옥, 신신옥, 미미집, 푸코 등등의 공간 그리고 그 속에 거닐던 정치인, 기업인, 식당, 가게 주인들, 미야마찌(주점) 신사들, 술집 여주인들... 그리고 작고한 최승렬, 김인홍, 우문국 선생...

작가는 신포동에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분들에게 감사하며 필름에 담아 출간했고, 전시한다.

 

 

신포시장 공사 전의 풍경
다복집 한복수 사장
인천 신포동의 명물 술안주 스지탕을 개발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부지런함으로, 뚝심으로 지나온 40년 신포동 시절들이 그의 뇌리 속에 필름처럼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얼굴에는 전혀 표정이 없다. 
영원한 신포동의 산책자 최승렬 선생(1996. 4)
제물포공등학교 국어 선생이었다. 시인이요 아동문학가였다. 큰 체구와 높은 콧날 때문에 제자들로부터 ‘코보’라는 곱지 않은 별명을 얻으셨던 분이다. 
홈런 바 사장 이상하 씨(2005. 11)
늘 댄디한 복장으로 신포동 골목을 누비던 이상하 씨. 옛 외환은행 뒷골목에서 홈런 바라는 크게 화려하지 않은, 은은한 불빛의 잘 정돈된 가지런한 바를 운영했었다.
영원한 인천의 베가본드 이태모 씨(2016. 12)
중구 해안동 ‘등대’경양식 주인 이태모 씨다. 1937년생으로 젊은 시절의 상당 기간을 이국의 화물선이나 상선의 갑판 위에서, 먼 나라 낯선 항구 도시의 술집들과 뒷골목에서 보낸 방랑자로 유명하다. 
강직, 절개(節槪)의 대명사 우문국 화백 (사진, 우경원 제공)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1946년 5월 서예가 류희강(柳熙綱)과 중국 상해에서 귀국해 인천에 정착한 이래 인천 문화, 예술계에 많은 족적을 남긴 분이다. 인천 미술계는 그에 의해 기초가 다져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직, 절개의 대명사 우문국 화백(왼쪽, 사진 = 우경원 제공)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1946년 5월 서예가 류희강(柳熙綱)과 중국 상해에서 귀국해 인천에 정착한 이래 인천 문화, 예술계에 많은 족적을 남긴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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