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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향기] 김명남 / 시인
집 뒤편 계양산을 본다. 가지에 생기 있게 일던 봄물은 어느새 푸르른 잎새를 키워냈다. 가지에 새순이 돋고 커다란 잎사귀가 될 때까지 수많은 낮과 밤이 있었을 것이고 비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이 눈부신 오월, 다 컸다고 까불고 돌아다니는 잎새를 본다. 푸르름을 앞세워 흔들리는 잎새의 허세를 본다. 그 푸르름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리 없는 잎새는 또 다른 푸르름을 엮느라 오늘도 바람에 흔들릴 뿐이다. 버젓이 직장생활 하는 나는 대체로 쌀과 김치를 고향 부모님께서 보내오는 것으로 생활한다. 가끔씩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면 그저 쌀은 떨어지지 않았느냐, 김치는 아직도 있느냐와 같은 질문에 시달린다. 예, 아직도 많이 남았습니다, 라고 대답해야지만 대화는 다른 주제로 옮겨 간다. 그런데 김치나 쌀이 떨어질 때를 용하게도 아시고는 언제쯤 부쳐줄 거니까 잘 받으라고 한다. 작년 어느 날 중학생 아들이 밥 먹다가 갑자기 걱정이 된 건지 궁금해진 건지 뜬금없이 물었다. “아빠, 난 이 다음에 누구한테 김치 갖다 먹어?” 지금 우리 부부가 시골에서 갖다 먹는 걸 보면서 아마 자기 딴에도 엄마가 해줄 것 같지 않으니 물었던 것이리라. “글쎄, 아무래도 엄마한테는 못 얻어먹을 것 같고, 니 장가 가서 장모님한테 갖다 먹어야겠다. 아님, 할머니 오래오래 사시라고 해서 할머니한테 김치 해달라고 하던지.” 이게 내 대답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어이없는 대답이다. 내가 아이한테 이걸 말이라고 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아이가 장가 갈 나이가 되면 우리 어머니는 아흔에 가까운 연세가 될 텐데.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 게 이것밖에 안 되니 올해 칠순을 맞이한 어머니께서는 여전히 고생이지 싶다. 宗 家 도순태 대문 안 빗장은 늘 걸려 있었다. 늙은 감나무 허리 휘감은 흙담만 바람 서성이는 넓은 바깥 마당을 지키고, 측백나무 손바닥 흔드는 저녁, 안개라도 내리면 고즈넉한 종가宗家 마당까지 내려온 하늘이 시든 감국甘菊 향기에 온몸이 젖었다. 측백나무 한 쌍이 지키는 중문 계단 올라서면 안채 가득 마른 풀잎 같은 세월이 눕는 소리, 뒤 곁 대숲 몸 부비는 아픈 시간 등에 지고 앉은 아홉 씨앗 거느린 종부宗婦는 식은 아궁이 그 안에 재 같은 날들이 풀썩이며 스며드는 훈기 없는 방에서 동백향 나는 빗질을 되풀이했다. 주인 잃은 바깥채, 감국주甘菊酒 익는 소리만 얇은 창호지를 만지다 노을 속으로 꼬리를 감추었다. 젊은 날부터 섬돌에 묶어 잠재운 종부의 사랑가, 오랜 회한의 옷을 갈아입고 연한 어둠이 스러지는 종가 모퉁이 그림자와 마주하는 밤 종일 돌아오지 않을 빈 사랑실 풀다 돌아 눕고, 오랜 세월의 기다림만 빈 방에 누워 저 홀로 부끄러운 치마끈만 풀었다. 『울산작가』 (2005)에서 인용 우리 집 또한 종가집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장남이기에 내가 고등학교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줄곧 제사를 지내왔다. 제삿날이 되면 느끼는 게 있다. 남자들은 그저 도포만 입고 술 잔 따르고 절하는 게 전부다. 한 것이라곤 고작 축문 하나 썼다는 것뿐. 제사상에 올릴 음식 장만 등 거의 모든 준비는 여자들 수고이다. 여자들의 노동을 빌려 남자들이 폼 잡는 날이 집안 제삿날이라는 걸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구조적인 문제이며, 우리 사회가 여자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종가, 라고 불리는 집안은 더더욱 그렇다. 종가에서 종부가 없다면 그 종가는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기 어렵다. 종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종부의 노동, 종부의 피눈물, 종부의 희생이 전적으로 작용한 덕택이다. 어쩌면 우리 대한민국 종가들은 종부에게, 종부의 부모에게, 더 나아가 종부의 집안에게 대대로 감사의 표시를 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제사를 지내는 집안은 굳이 종부가 아니더라도, 맏며느리가 아니더라도 그 집안에서 제사 의식을 위해 애쓰는 모든 며느리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제사 의식에 필요한 인력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이기 때문이다. 위에 소개한 시 ‘宗家’에 나오는 것처럼 그 분들의 인생이 ‘누운 세월이 되거나 아픈 시간이 되거나 식은 아궁이 속 재 같은 나날’이 되어 생의 마지막 꼬리를 소리 없이 감추지 않도록 노을을 펼쳐 드리는 게 남자들이 그 분들에게 갖추어야 할 예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울음 2 -푸른 호랑이 31 이경림 어으으 어으 어으! 동네를 쩌렁쩌렁 울리며 또 노인이 운다 -시상에, 아흔이 넘은 노인이 목소리도 크제 이 할매 또 뭐 누셨능가 보다 환갑이 넘은 며느리가 달려가 기저귀를 만져본다 -괜찮은데 와 우시능교, 뭐 잡숫고 싶어요? 그녀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우짜겠노? 이제 우시는 기 말이 됐으니 -무신 노망이 우는 노망이 다 있노? 며느리가 딱하다는 듯 투덜거린다 -아이라 이 사람아, 평생 참은 울음이 터진기라 실컷 울고 가시게 그냥 두소 칠순을 바라보는 아들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보소, 양반집 종가 며느리로 80년인기라 말 뺏기고 눈물 뺏기고 표정까지 뺏긴 세월이 80년인기라 보소, ‘음전한 종부’가 우리 어무이 별명 아이가 그 별명 값 하니라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 셋씩이나 먼저 보내고도 조상 앞에 죄스럽다고 표정 하나 흩트리지 않던 양반 아이가 육이오 나고 世傳之財物 다 거덜 나서 끼니가 간 곳 없어 삯바느질로 연명하면서도 윗돌 빼서 아랫돌 고이고 아랫돌 빼서 윗돌 놓으며 찍소리 없이 오대봉사하던 어른 아이가 동네 사람들 하기 좋은 말로 울 어무이 밥통은 조갑지만도 못하다고 놀렸제? 평생 밥이라곤 반 그릇도 못 잡숫는 양반이 힘은 황우라고 40년 모신 당신도 울 어무이가 고기 못 잡숫는 사람인 줄 알았제? 그저 시래기나물만 드리면 최곤 줄 아는 양반이라고? 하이고, 요새 사람들은 한술 더 떠서 그런 식성 때문에 저래 오래 사시는 기라고 호강에 겨운 소리들 하더라만, 봐라, 어무이 정신 놓으시고부터 고기반찬 없으면 진지 안 잡숫는 거, 장정 저리 가라 고봉밥 잡숫는 거 그거 다, 일생 참고 사신 거 보여주고 가실라 카능기라 울 어무이 몸띠이가 울음 뭉치 아이가 저 몸 울음으로 다 흘려보낼라 카먼 낙동강 칠백 리도 모지랄끼라 -어으 어으 어,억,억 수십 길 울음 폭포 또 쏟아진다 거기서 갈려 나온 울음 두 줄기 밤새 두런두런 흘러내리며 시집 『내 몸속에는 푸른 호랑이가 있다』에서 인용 이경림 시인의 시를 보니 기름값 아끼느라 추운 겨울에도 보일러 끈 채 지내시는 부모님이 떠오른다. 고향 집에 갔을 때 왜 그리 춥게 사시냐면서 내가 매번 보일러를 세게 틀면 다시 어느 샌가 슬그머니 보일러를 꺼놓으시는 어머니. 푸성귀 나물 반찬만 잡수시다가 아들 내외가 가야만 고기 구경을 하시는 어머니. 들끓음으로 가득하던 세월이 저 멀리 떠나가고 삭정이로 남은 시간만 눈 앞으로 끌어당기는 어머니가 안타깝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일 뿐, 다습게 대접도 해드리지 못한 죄스러운 마음일 뿐. 잡숫고 싶은 거 맘껏 잡숫지 못한 그 숱한 세월, 이제 모든 어머니들께, 며느리로 살아온 모든 어머니들께 뜨듯한 진지 한 그릇 대접하는 5월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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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
- 사회적기업 업종별 마케팅커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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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의 마케팅 노트] 이무열/서..
사회적기업은 제품판매를 위한 마케팅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되어서 각 기업마다 가지고 있는 개별적 상황과 전체를 범주화하여 설명할 수 있는 일반적 상황을 가지고 있다. 전문적인 마케팅커뮤니케이션서비스는 기업이 가지고 있는 개별성과 특수성에 맞추어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1:N(불특정다수)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글에서는 이렇게 개별화된 정보를 전달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이번 회의 글에서는 사회적기업을 업종별로 구분하여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마케팅커뮤니케이션방법을 매트릭스화하여 설명하려고 한다. 이렇게 준비된 ‘사회적기업의 업종별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매트릭스’에는 대중매체(TV, 라디오, 신문, 잡지)가 제외되어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사회적기업은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책정되어 있지 않거나 있다 해도 규모 자체가 최소화되어 있다. 두 번째는 아직까지 작은 단위로 조직되어있고 판매 지역과 대상도 제한적인 사회적기업과 같은 기업형태에서는 대중매체가 효과적이지 않다. 세 번째 제품 생산과 판매에 있어서 시민소비자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새로운 마케팅환경에서 대중매체는 중심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대중매체는 대량생산과 판매, 소비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기업의 마케팅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 표의 세로축은 사회적기업의 업종을 가로축은 사회적기업의 준비와 발전단계를 기준으로 구성하였다. 사회적기업의 업종은 B2B(Business 2 Business:기업간 거래), B2C(Business 2 Consumer:기업과 소비자간의 거래) 이렇게 총 2가지로 구분하였으며 그 구분은 다시 각각의 사업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회적기업은 자사에 해당하는 업종에서 가로축의 준비와 발전단계를 가늠하는 자본이나 매출규모(예상) 그리고 기업성장 1,2,3단계에 따라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기획하여 진행하면 된다. 신규사업의 경우 초기자본이나 매출규모에 따라 Type을 결정(예:1~3억 Type1 / 3~7억 type 2 등)해야 하며 사업을 이미 진행 중인 기업은 사업의 성장단계가 어디쯤에 와있는지를 판단한다. 때에 따라서는 이 두 가지 상황을 모두 고려하여 자사사업의 위치를 최종적으로 확정한다. 첫 번째 업종 B2B는 정부, 자치단체, 교육기관 및 일반기관 그리고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말한다. 구체적인 사업내용으로 서비스부문의 경우에는 문화 및 환경교육, 체험과 캠프, 청소 등을 제조부문에서는 재생제품생산과 소모품납품 등을 대표적인 사업의 예로 들 수 있다. Type 1과 1단계에서는 모두 CI (Corporate Identity : 회사명과 로고 등) 개발과 영업활동을 위한 카다로그, 명함 등의 제작물이 필요하다. Type 2와 2단계에서 서비스부문과 제조부문에서는 사업정보 제공을 위한 홈페이지 개발과 고객관리를 위한 RM(Relationship Management)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그리고 서비스부문은 사업과 관련된 전시회에 참가하여 적극적인 영업활동을 해나간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PR(Public Relation)활동과 서비스부문의 경우에는 최종이용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개설해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한다. (다양한 사회적 기업 CI / BI) 두 번째 업종 B2C는 농,축,어업생산가공부문과 식생활용품의 제조, 판매부문 그리고 일반서비스부문은 영아, 유아 및 노인 케어와 청소 등이 공공서비스부문은 교육 등이 포함된다. Type 1과 1단계에서는 BI (Brand Identity : 제품명과 로고 등)개발과 판매를 위한 기본도구인 카다로그, 리플렛 등이 전 업종부문에 필요하다. Type 2와 2단계에서 농,축,어업생산가공부문과 식생활용품 제조, 판매부문에서는 입소문과 고객관계구축을 위한 SNS활동을 시작하고 적극적으로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유통채널에서 Sales Promotion (예:샘플링, 1+1행사 등)을 진행한다. 또 관련 전시회에 참가하여 유통담당자와 소비자에게 제품을 소개하며 새로운 유통채널 개발과 고객에게 제품 체험기회를 제공한다. 일반과 공공서비스부문의 경우에는 사업 정보제공을 위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고객으로 유입된 이후에 계속해서 고객관계를 이어나가는 업종부문의 성향을 반영하여 CRM(Consumer Relationship Management)이 필요하다. 또 사업정보 확산을 위해 SNS활동을 시작하고 관련 전시회에 참가해 소비자 사이에서 판매를 대행해 줄 수 있는 중간 판매채널을 개발한다. Type 3과 3단계에서는 모두 PR(Public Relation)과 농축어업생산가공부문과 식생활용품 제조,판매부문 모두 고객관리를 위한 CRM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위 표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방법은 일반적인 예라는 것을 참고해서 각 사회적기업의 업종과 제품 그리고 현재 상황에 따른 개별적인 기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고객의 구매리스트에 없는 제품은 판매 될 수 없다.’는 마케팅 법칙에 따라, 사회적기업은 마케팅커뮤니케이션을 제품판매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활동으로 인식해야 하며 성공적인 사업을 계획한다면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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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
- "사진 인프라를 위한 작은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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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이 만난 사람] 이상봉 '사진공..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 지난해 5월 조그만 사진전문공간이 생겼다. 인천해광학교에서 수학과 컴퓨터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사진 작업을 해온 이상봉(58) 관장이 연 ‘사진공간 배다리’다. 10평 남짓한 비좁은 공간이지만 광역시 인천의 유일한 사진전문 전시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확대해가고 있다. 개관 1주넌을 맞고 있는 ‘사진공간 배다리’의 이상봉 관장을 만났다. ◇ 1년전 배다리에 ‘사진공간 배다리’를 열게 된 동기는? 인천에는 사진인들이 많다. 그러나 광역시임에도 불구하고 인천에는 외부의 좋은 작가들을 초대하여 전시하거나 인천의 작가들을 발굴하여 전시할 수 있도록 하는 주체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외부 사진인을 초대하여 전시하는 것 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은 광역시에서는 아마 인천뿐이지 않을까? 더 높은 수준의 사진 교육이나 신진작가들을 발굴해 내는 것이나, 사진인과의 네트웍, 사진을 통한 봉사 등을 규합해낼 수 있을텐데, 그러한 것이 없었다. 인천의 사진 발전을 위한 기초적인 작업임에도 마땅이 그 주체가 없었으니, 누군가가 나서서 해야했다. 광역시임에도 불구하고 인천에는 사진 인프라가 부족하다. 개인이 전시하기에 적당한 크기의 전시장이 없다. 대부분의 전시장이 단체전을 하기에는 적합한 장소로 만들어져 있다.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작은 공간도 40여평 정도의 크기여서 그 공간을 채우자면 작가가 필요한 양의 두배나 작품을 만들어야한다. 그 만큼 많은 비용이 들게 된다. 사실 이것은 전시 과소비라 생각한다. 인천이 광역시임에도 사진전문 갤러리가 없었다는 것에 나름 안타까움이 있었다. 누군가 시도해야 더 큰 일들이 벌어지리라 생각했다. 그러한 차원에서 무작정 시작했다. 어려운 일들이 많다. 해결하지 못할 일들도 많다. 그러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내가 시작하여 작은 불씨가 되고자 했다. 앞으로 재력이 있는 개인이나 기업이 나서서 인천에 버젓한 사진갤러리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나는 그런 불쏘시개 역할이 되기를 바라며 작은 갤러리를 시작했다. ◇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어떻게 배다리로 오게됐나. 이곳은 갤러리를 꾸미기 전에는 배다리 헌책방의 책 창고(2층)였다. 그런데 배다리에서 장소를 구하지 못하고 있자, 감사하게 책 창고로 사용하던 공간을 양보해 주어 11평의 작은 갤러리를 만들 수 있었다. 제 고향이 대전인데, 인천에 온지는 30년 된다. 지금 재직하고 있는 학교에 부임하면서 인천에 왔다. 인천은 아이들의 고향이기도 하고, 결국 이제 인천의 저의 고향이기도 하다. 인천이 문화의 불모지기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마 서울에 근접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갤러리가 인천 최초의 사진전문 갤러리라는 것도 사실은 서울에 근접하여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러나 서울에 근접해 있어 문화를 즐기기 위해서 인천보다 서울로 가는 것이 인천 문화발전을 저해시키어 왔다면 이제는 그 핸디캡을 적극 이용하여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인천에 문화 인프라만 잘 구축만 해 놓는다면 서울 사람들이 인천으로 와서 즐기고 갈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도적 역할은 배다리 지역과 중구청 중심의 차이나타운 일대가 수행해야하지 않을까. ◇ 작은 공간이기는 하지만 사재를 털어 이런 사진전문 문화공간을 운영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텐데, 운영 형편은 어떠신지. 사실 이 점은 아내에게 참 미안하다. 처음부터 이곳이 수익을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시작했고 지금도 역시 수익에 대하여는 신경 쓸 수 있는 상황도 아니기에 자연히 제 봉급에서 이곳 운영비를 충당하게 된다. 그래도 저 나름대로 한달에 운영비로 사용하는 규칙은 가지고 있다. 그것은 봉급의 1/10을 이곳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 운행을 자제하고 전철을 타고 움직인다. 거기서 절약되는 비용으로 운영비를 쓰게 되는 것이다. 개관 후 초반에 몇 백만 원의 비용이 발생하여 참 어려움을 겪었는데 다행이도 그 부족 분 만큼의 기부자와 유료대관이 있어서 그 적자를 메꿀 수 있었다. 그 이후는 제가 매달 이곳에 들어가는 운영비 안에서 한 달 살 수 있는 상황이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운영해 가고 있다. ◇ 지난 1년간 이 곳에서 많은 전시가 이루어졌는데 어떤 작품들이었나.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고 최민식 선생님의 전시다. 갤러리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무작정 부산에 내려가 선생님 집을 방문하여 전시를 부탁드렸는데 그 자리에서 쾌히 승낙을 해 주셨고 또한 인천까지 오셔서 특강까지 해 주어 갤러리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것은 작가 섭외에도 도움이 되었고 최민식 선생님이 하던 곳이라는 것이 사진인에게도 신뢰도가 커졌다. 다음을 이야기 한다면 제가 가르치는 제자들의 전시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사진찍기를 즐겨하는 제자들의 전시는 저 스스로에게도 의미가 깊은 전시였고 학생들에게도 큰 감동을 준 전시였다. ◇ 인문학 강좌와 사진 강좌도 많이 해오셨는데, 어떤 내용들이었나 처음부터 교육은 사진전문 갤러리의 한 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갤러리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눈 여겨 보았던 전 연변대학 사진과 교수이면서 현재 상명대학교 외래교수인 이영욱 교수님을 모셨다. 이 교수님의 인문학 강좌는 많은 분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매번 강좌 공지를 하면 하루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있다. 그 외에 재능대학교 외래교수인 김보룡 교수님의 사진강좌와 그리고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쉬운 사진 강좌가 있어야 한다는 요청에 따라 서울에서 인기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한겨레문화센터의 곽윤섭 기자를 초빙하여 진행했다. 저는 인천에 좋은 강좌를 서울보다 저렴하게 유치하는 것도 역시 사진갤러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현재 이영욱교수는 사진공간의 학예연구실장으로 사진전시에 대하여 작가를 초대하여 전시하는 등 전반적 중요 역할을 해주고 계십니다. 물론 봉사정신으로 해주시는것이다. ◇ ‘사진공간 배다리’의 계획과 전망은 배다리 지역이 인천 사진의 메카가 되기를 바란다. 인천 최초 사진전문갤러리가 이곳 배다리 지역에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이제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배다리 특유의 아나로그적 현상을 잘 살려서 사진인들이 모여들고 이곳에서 서로 교제하며 사진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려한다. 그러나 현재 가장 시급한 것은 재정의 자립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시장 제2관과 수익을 낼 수 있는 카페도 만들어 질 수 있기를 소원해 보고 재정적 뒷받침을 해 줄 수 있는 후원회도 계획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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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산친구들' 양서류 서식지 훼손 파악















8부두 개방 요구 월미산 전망대 점거 시위
월미은하레일 총체적 부실 결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