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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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육아
  • 고창헌
  • 승인 2024.05.2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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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육아
고창헌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시민의 신문 <인천in>이 인천노인종합문화화관과 함께 회원들의 글쓰기 작품(시, 수필, 칼럼)을 연재하는 <소통과 나눔의 글마당>을 신설합니다. 풍부한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고, 글쓰기 훈련을 통해 갈고 닦은 시니어들의 작품들을 통해 세대간 소통하며 삶의 지혜를 나눕니다.

 

 

3월 첫 주가 시작되는 오늘은 아이들 개학 날이기도 하지만 집사람이 다시 외손자들을 돌보기 시작하는 날이기도 하다. 교사인 사위와 딸이 겨울방학이 끝나면서 모두 학교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육아휴직을 끝낸 사위가 학교로 출근하자 집사람은 어린 외손자 둘을 돌보기 위해 아침 일찍 전철을 타고 딸내 집이 있는 송도로 간다.

두 녀석의 나이 차이는 많은 편인데, 큰 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고, 늦둥이 둘째는 19개월이다. 특히 둘째는 최근 들어 말이 꽤 늘어서 기본적인 말을 하기 시작한다. 참새는 “짹짹”, 자동차는 “빠 방”, 바나나는 “빠나”, 아프면 “아야” 라고 한다. 얼마전까지는 말귀는 좀 알아듣는 거 같았지만, 말은 거의 못해서, 녀석의 대답을 들으려면 질문이 쉬워야 했다. “할아버지 좋아?”, “이거 맛있어?” 와 같이 간단한 질문을 하면 “응” 이라고 대답만은 잘 했다. 문장을 약간 길게 물어보면 눈만 깜빡이던 녀석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언어 능력이 많이 좋아진 거 같아서 기특하다.

며칠 지나지 않아 어린이 집에서 할머니에게 급히 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오후 취침 시간에 잠에서 깬 둘째가 큰 소리로 울어서 달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덩달아서 다른 아이들도 잠을 깨게 되어 아이들이 합창으로 울고 있다고 했다. 어린이 집에서는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을 2시간부터 점차 30분씩 줄여 나간다고 하였다. 아이들이 적응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 사이에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딸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울 때는 ‘공갈 젖꼭지인 쭉쭉이’가 있으면 달랠 수 있다고 말해준다.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난 후 “첫날부터 실력을 발휘한 손자”라고 우리 부부는 함께 웃었다.

SBS 뉴스 스페셜 보도에서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최근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를 돌보는 황혼 육아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보육 실태 조사에 따르면 아이를 개인에게 맡기는 경우 83.6%는 조부모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보육시스템으로 엄마 아빠의 긴 근무 시간 동안 생기는 "돌봄 공백"을 메울 수 없다. 결국 믿을 곳은 '친정 엄마'밖에 없다는 것이다. 손자 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노년기에 큰 기쁨이며,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문제는 육아 활동들이 강도 높은 육체적 노동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황혼 육아가 조부모와 부모 모두에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손자들 평일 육아에 대해 집사람은 힘들지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집사람이 언제까지 체력적으로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는 게 사실이다. 아이들과 아빠가 등교하고 귀가하는 시간은 차이가 있다. 그래서 하루 종일 있다가, 저녁 때 돌아오는 상황이 되었다. 건강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형편이다. 특히 집사람이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오고 갈 때는 차를 가져가지 않고 걸어서 전철을 이용한다. 하루 왕복 9천보쯤 걷게 된다 하니 다행이긴 하다. 그나마 주말과 방학 때는 쉴 수 있어서 다행스럽기는 하다.

또한 딸네 집에 가면, 작은 손자가 쪼르르 달려와서 할아버지를 껴안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등을 '토닥토닥' 해주기도 한다. 놀랍고 너무 귀엽다. 얼마전만 해도 자기 아빠 말고는 다가서지 않던 놈이다. 섬 근무하다가 일주일 만에 오는 자기 엄마나, 할머니, 할아버지 누구에게도 울면서 바로 안기려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위가 많이 힘들어 보였다. 육아가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꼈던 시기다. 그런데 언제 그랬냐는 듯 작은 손주가 살갑게 달려든다

큰 손자는 염색을 하지 않은 할아버지의 희끗한 머리를 처음 본 듯 가까이 다가오면서 관심의 눈빛을 보낸다. 자기 집에서 거리가 좀 떨어진 홈플러스에서 먹거리 두종류를 사간다고 하니, 할아버지가 걸어서 들고 오기 힘들다고 간단하게 한 종류만 사오라고 한다. 벌써 어른에 대한 배려를 한다는 게 대견스러웠다.

육아가 힘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서로의 입장만 내세울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온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으려면 부모와 조부모들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처지만을 강조하다 보면 노인은 외로워지고 젊은이는 점점 더 막막해 진다. 힘들다 보면 작은 갈등이 생기겠지만 대화를 통해 상황을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정부는 육아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육아의 어려움이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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