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환 인천경실련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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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환 인천경실련 공동대표
  • 김도연
  • 승인 2010.05.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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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의가 실천되는 세상을 바라지요"

인천경실련 오경환 공동대표.

취재 : 김도연 기자
 
오경환 인천경실련 공동대표는 1992년 창립된 이후 오늘까지 인천경실련과 함께한 '산증인'이다.
 
그가 인천경실련에 바라는 일은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원하는 건 더욱 아니다. 그저 '처음'을 잊지 않고 '한결같이' 제길을 가면 그 뿐이다.
 
"경실련은 말 그대로 경제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단체죠.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거기서 벗어나지 않으면 좋은 겁니다."
 
인천경실련에 대한 오 대표의 신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가 경실련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9년 겨울 서울에서였다.
 
"당시 부동산 시장이 요동치며 경실련에서 토지공개념에 대해 이야기한 걸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됐죠. 관심을 갖던 중 혜화동 로터리에 있던 한 은행에 들렀다가 경실련 가입신청서가 있기에 그냥 적어 보냈죠, 그런데 나중에 당시 사무총장을 하던 서경석 목사한테 들으니, 가입을 신청해 우편으로 보낸 이는 제가 유일했을 거래요."
 
그때 대학에서 사회교리를 가르치던 그가 토지공개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렇게 인연을 맺어 인천으로 내려와서도 고리를 잇게 됐다.

처음에는 인천경실련과의 인연이 수월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1990년 2월에 간석2동 성당에 부임을 받아 왔는데, 그해 6월 초대 집행위원장을 지냈던 박영복(현 경인일보 인천본사 사장)씨가 찾아 왔어요. 인천경실련을 하는데 함께 하자고. 그런데 성당에서 할 일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정중히 돌려보냈죠. 아마도 당시 사무총장을 하던 서경석 목사가 박영복 사장과 친분이 있어 내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아무튼 그때는 성당일이 많아 할 엄두를 내지 못했지요."
 
하지만 인연이란 쉽게 끊어지지 않는 법. 그 후 2년여가 지난 1992년 9월 인천경실련 창립에 앞서 다시 그를 찾은 박영복 집행위원장 일행의 권유로 공동대표직을 수락하게 된다.
 
"그때는 성당일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핑계를 댈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하겠다고 했지요. 그 인연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거예요."
 
그가 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 인천경실련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시민운동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처음에는 회의를 하거나 기자회견을 해도 몇 명 모이지 않았는데, 기자들이 그 내용을 쓰더라고요. 그렇게 기사화하고 나면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아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지금까지 함께해 오는 것 같아요."
 
강산이 두 번 변할 세월동안 인천시의원들의 외유성 관광을 지적해 조례화한 일이나, 선인재단 사태 등 그의 마음은 경실련 가입신청서를 썼던 때와 변한 게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도 있었지요. 그런데 딱 한 번 '안되겠다'고 생각할 만큼 어려웠던 적을 제외하면, 그때마다 난 태평이었던 것 같아요. 모두 상근자나 집행위원들이 애쓴 덕분이지요. 지금은 인천경실련이 그 모든 걸 잘 이겨내고 자리를 잡았다는 느낌이에요.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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