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재', 신포동 배다리 잇는 징검다리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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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재', 신포동 배다리 잇는 징검다리 돼야"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3.08.29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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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재' 주인장이면서 도보여행가이기도 한 박차영씨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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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동에서 배다리로 넘어가는 이 고개에 ‘싸리’가 많아서 ‘싸리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싸리재’라는 이름을 단 가게가 많았어요. 싸리재다방, 싸리재상회, 싸리재약국… 하나둘 문 닫더니 ‘싸리재약국’을 끝으로 다 없어졌어요. 가게 이름을 뭘로 정할까 하다가 ‘싸리재’로 정했습니다.”
8월 30일(금), 4개월에 걸친 공사를 마치고 마침내 까페  ‘싸리재’가 문을 연다. 오후 6시에 개관기념 이야기마당도 열린다. 중구 경동 인천기독병원 입구 배다리 방향이다. 이곳에서 ‘경기의료기’를 34년째 운영하고 있는 박차영씨(64)가 공들여 리모델링한 가게는 오가는 사람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는 다음 블로그에 ‘박차영의 도보여행기’를 기록하는, 우리나라 땅을 걷는 도보여행가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 12월 25일 동구 송현동에서 태어나, 지금은 송악동에서 살고 있다. 유아기와 유년기는 밤나무가 많았던 율목동에서 살았다. 가게는 34년째 경동에서 꾸리고 있으니, 그는 누가 봐도 ‘인천사람’이다.
 
“55세 넘으면 하던 일을 다 덮고 귀농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강화에 집을 짓고, 가게를 왔다갔다 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중생활이 쉽지는 않더군요.” 그러다가 IMF가 왔고, 생산하는 것보다 소비가 커지니까 두 집 살림 하는 일이 버거웠다.
 
 
걷다보니 시골과 도시는 별반 차이 없어
 
“욕심이 사나워서 모아놓은 게 많다”는 박씨. 그는 이것저것 사고 줍고, 때로는 주변에서 가져다 준 것이 많다. 그것들은 실제로 이번 ‘싸리재’를 만들면서 큰 도움이 됐다. “차를 마시며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토론도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어요. 애들이 결혼해서 나가고, 나도 뭔가 하긴 해야겠고… 고민이 많았습니다. 가게가 팔리면 6개월 잡고 집사람과 대한민국을 다 돌아보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뭘 할까 결론을 내리려고 했는데, 가게가 팔리지 않더군요.(웃음) 그래서 토요일과 일요일엔 가게문을 닫고 ‘걷자’고 생각했습니다. 2002년부터 금요일 저녁이면 짐을 챙겨 출발했어요. 친구들과 막걸리 한 잔 먹고 출정식도 했죠.(웃음)”

“근데, 잘 알고 지내는 동생이 블로그를 만들라고 하는 거예요. 여행하면서 생각을 여러 사람과 공유하라는 거죠. 결국 그 동생이 제 컴퓨터 스승이 됐어요. 걷다가 좋은 데가 나타나면 거기에 안착하자는 생각도 사라졌어요. 대한민국이 그렇게 녹록진 않더군요.” 그가 다니면서 보니 시골은 예전의 시골이 아니었다. 자신이 사는 도시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까, 그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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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커피 먹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시절 있었다

그는 자신이 커피를 끓여주면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는 데 착안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70, 80년대만 해도 커피를 먹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남의 나라 건데 이렇게 먹어도 되나, 불편했죠. 그런데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서 일상적인 음료가 됐잖아요. 그렇다면 제대로 먹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싸리재’ 문을 열면 그는 시럽은 쓰지 않고 유기농 설탕으로, 1회용은 쓰지 않아야 하니까 테이크아웃은 하지 않을 작정이다. 다만 텀블러(휴대용 컵)를 가져오면 테이크아웃을 할 수 있다.
“소금커피, 들어보셨죠? 커피에 자죽염을 넣을 겁니다. 자죽염은 비싸면서 아주 고운 소금인데, 이게 들어가야 커피맛이 납니다. 쓰지 않고 맛이 풍부합니다. 당뇨나 고혈압에도 좋죠. 우유 대신 두유를 넣을 생각입니다. 맛이나 건강면에서도 좋은 두유를 쓸 겁니다.”
 
요즘엔 가족이 모이면 가게 운영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되겠냐?”는 의견도 만만찮게 나온다. 하지만 박씨에겐 명쾌한 답이 있다. “늙어서 더 이상 못할 때까지만 하면 되잖아요.” 그러면서도 그는 은근히 걱정이 많다. 장사라는 게 순환이 돼야 하고, 순환이 안 되면 조급해질까봐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그에게는 찾 ‘힐링’이 되는 집으로 만들 생각이 확고하다.
“LP판도 3천장 정도 있다. CD는 틀지 않을 것이다. 아날로그로만 할 거다. 그러다보면 인문학카페로 갈 것 같다. 힘이 닿으면 두 달에 한 번 정도 행사를 열 생각이다. 30일에 일단 문을 열면서 행사를 하는데, 여러 사람이 와서 무료 콘서트를 열기로 했다. ‘함께 즐기자!’는 생각이다. 희망사항일 수도 있지만, 크게 본질만 벗어나지 않으면 괜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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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동과 배다리를 잇는 역할 중요해
 
4개월째 공사하는 게 힘들지 않을까. “7~8kg 빠져서, 허리띠 구멍을 안으로 뚫어야 할 정돕니다. 일이 없어도 나와서 꾸무럭대는데, 신기하게도 병 한 번 나지 않았어요. 사실 따지고보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배다리 쪽은 나름 사람들이 활동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없잖아요. 스페이스빔 대표 민운기씨 말대로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신포동과 배다리를 잇는 역할은 무척 중요합니다. 이 거리에도 공방카페가 많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서 박씨는 문 밖을 가리킨다. “보세요, 8시밖에 안 됐는데 길에 다니는 사람이 없잖아요. 생각이 많은 사람은 돈이 없고, 돈이 있는 사람은 다른 데 투자하고 싶은 거죠. 여기 사는 나이든 분들은 예전에 비쌌던 자신의 집을 생각하면 못 팔죠. 관리자들 생각도 무척 중요합니다. 다리나 나무에 조명을 팍팍 쏘는데, 그런 돈으로 역사와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데 투자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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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공사가 한창 마무리되고 있는 2층을 보여주었다. “1930년에 지어진 건물입니다. 이집은 한국식과 일본식이 결합된 거죠. ‘애자’는 그대로 쓰고 위치만 바꾸었습니다. 보세요, 여기는 다 흙벽입니다. 집을 살리면서 짓는 게 참 힘듭디다. 그래도 다 지어지면 볼 만하겠죠!(웃음)” 그의 말에 따르면 경동에는 아직 옛집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한옥을 고쳐가면서 살겠다는 젊은 예술가들이 몇 있습니다. 그들이 이 거리에서 ‘공방’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면 좋은 일이죠. 이 거리가 다시 살아날 겁니다. ‘싸리재'가 그 역할을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번에는 그에게 ‘걷기’에 대해 물었다. 지난해, 인천에서 서해안을 따라 해남 땅끝마을까지 다녀온 박씨는 기회가 닿는 대로 남해안, 동해안으로 다시 걸을 생각이다. 그런 다음에는 아내와 프랑스 북부에 있는 ‘야고보 루트’를 걸을 계획이다. 걷는 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힘들지만 즐겁다! 내가 즐거워서 한다. 블로그에 오는 사람들이 내가 기록한 걸 보고 도움이 많이 됐다고 할 때도 기분이 좋다. 어떤 분은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도까지 갔다고 이메일을 보냈더라.”
 
 
차 타고 다닐 때는 안 보이던 것들이 '다 보여'

그의 블로그에는 도보여행을 시작하며 만든 원칙이 있었다. ‘걸음은 느리지만 게으르지 않게, 목표는 설정일 뿐 과정과 현재에 충실할 것, 사람 자연 사물에 애정과 관심을 갖자, 소비의 최소화 등등.’ 그의 블로그를 들여다보면 ‘김밥’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4월초였습니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몰랐는데, 오이도를 지나면서 가도가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배는 고프지, 아무것도 없어서 아내가 싸준 건빵을 먹었습니다. 날은 싸늘하고, 뜨끈한 국물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시화방조제 중간에 포구가 하나 있었지만, 토스트랑 커피밖에 안 팔더군요. 출발할 때 집에서 토스트를 먹기도 해서 또 먹고 싶지 않았어요. 한참 더 가보니 할아버지 할머니가 컵라면과 어묵을 팔더군요. 원래 컵라면을 좋아하지 않지만, 그때 먹은 컵라면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컵라면이었습니다.(웃음)” 그는 또 “어느 때는 사람도 못 만날 때가 있습니다. 식당도 없고, 사람도 없고, 집도 없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라면과 버너, 김밥을 꼭 챙깁니다. 김밥은 아침에 한 줄 먹고, 가면서 두 줄 먹어요. 아니면 굶어죽겠더라구요.”

해안가를 가다가 후미진 곳에 들어가 밥 좀 먹자고 하면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배고파서 얻어먹더라도 비위 상하는 일이 많다. 그러면서 그는 젊어서 무전여행을 다닐 때의 기억도 함께 되짚는다. “예전에는 정류장 가까이 ‘점방’이 있었어요. 마을의 대소사를 이야기하던 곳이죠. 국수를 끓여주기도 하고, 물론 안주도 있었죠. 언제부턴가, 그 싹 없어졌어요. 대신 읍내마다 소형마트가 참 많습니다. 전봇대에 메뉴판이 붙어 있어서, 들일하다가 시켜먹는 거죠. ‘들밥’을 만나면 얻어먹고, 오후 일정을 접고 무조건 일해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물을 얻어먹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다. 어쩌다 집을 발견해 물 한 잔 달라고 하면, 마지못해 ‘생수’를 들고 나온다. 그때는 얻어먹는 게 아니라 빼앗아 먹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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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천태만상 속에는 내 모습도 있어
 
그는 여행하면서 ‘인생공부’를 많이 한다. 잠자리도 신경 많이 쓰인다. 그의 계획에는 절, 교회, 성당, 공소, 마을회관, 부녀회관… 어디서든 하룻밤을 묵으면 1만오천원을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보기좋게 첫날부터 어그러졌다. 그때부터 아무데서나 잘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노숙도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여행하면서 평소 좋아하지 않던 찜질방도 가고 모텔도 갔다.
“찜질방은 노래방 같았습니다. 낯설더군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곳이더군요. 사람이 누워 있어도 그 옆으로 비닐베개나 장판매트를 질질 끌고 가서 탁 놓더군요. 그 먼지 바람이 누워있는 사람 입에 들어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죠. 또 피서지 같습니다. 하긴, 잠 자러 간 사람이 멍청한 거죠. 또 별의별 사람이 다 오죠. 시장통에 있는 찜질방에선 하루종일 일하고 힘드니까 가장 싼 데로 오더군요. 재미있기도 하지만, 함께한 동료가 가면 그 사람 욕을 서슴지 않고 합니다. 그들의 천태만상을 보고 있으면 내 모습을 보는 것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다 돈 문제더군요. 자기 생각을 표출할 데가 많지 않으니까요.”
 
“풍랑주의보가 내린 날, 새만금을 걸어가야 했습니다. 새만금은 걷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었어요. 방조제 길은 바람을 막아주지만 자동차들이 다녀서 위험해서, 둑길로 갔습니다. 바람이 거세 몸을 가누기 힘들더군요. 게다가 안전장치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걷는 사람에게 이렇게 폭력적일 수 있나. 지나가던 차가 딱 두 번 서서 타라고 하더군요. 바람이 너무 거세서 라면을 끓여먹을 수 없을 정도였는데, 그 와중에도 배가 고프더군요.(웃음)”

여행을 통해서 그는 ‘인생공부’를 한다. 하루 27km씩 걸으면서 차로 다니면 볼 수 없는 상황들이 ‘보인다.’ 풀 한 포기, 돌 하나도 다 눈에 들어온다. 걸어다니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야속한 사람도 있었지만, 소중한 인연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싸리재’에서 만날 사람들이 더욱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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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에는 인천 1호 항도백화점이 있었습니다. 1929년 생긴 인천최초상가죠. ‘유형묵’이라는 사람이 원래 정통 ㄷ자형인 이 집을 잘라서 상가로 지었어요. 그러니까 이 건물은 이 동네의 흥망쇠퇴를 다 본 거죠. 양반집에서 개화기를 맞아 상인이 되는 과정을 똑똑히 봤겠죠.” 그는 ‘싸리재’가 배다리와 신포동을 잇는 역할을 충실히 해낼 거라고 믿는다. 사람이 꼬이다 보면, 마을은 예전에 날렸던 명성을 되찾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리모델링하면서 되도록 자재를 재활용하고 있다. “집을 지으면서 아쉬운 점도 있지만 행복합니다. 집  짓는 과정에 충실했습니다. 만족합니다.”


그의 말대로 ‘싸리재’가 신포동과 배다리를 잇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서로 배려하고 감싸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나면, 그 마을은 틀림없이 좋은 사람들로 넘쳐날 것이다. ‘싸리재’에 그 희망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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