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수리에 마트가 생기면서 길상장날이 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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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수리에 마트가 생기면서 길상장날이 죽었어."
  • 김영숙 기자
  • 승인 2014.01.06 0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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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5일장 명맥만 잇고 있는 길상장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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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트 생기면서 사람이 줄었어. 전화만 하면 마트 차가 집까지 실어다 주잖아. 옛날에는 장이 서면 사람이 참 많았는데…” 황가라고만 자신을 밝힌 할아버지는 장날이 되면 어김없이 장에 나온다. 황 할아버지(85)는 세상에 변하지 없는 건 없다지만, 점점 사람이 줄어가는 장터를 둘러보면서 자꾸 옛날 장터 생각이 난다. 4일에 찾아간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시내 길상장은 거의 반세기 동안 이어져 온 5일장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4, 9일(4, 9, 14, 19, 24, 29일)마다 서는 길상장날 풍경은 한없이 한가롭다. 찾는 이가 적어 쓸쓸하다.

황 할아버지는 장이 열리는 길상면 온수리에 산다. 할아버지는 50년 전 장이 서면 사람이 북적거렸고, 강화읍에서도 동검에서도 사람들이 장날을 찾았다고 전했다. 또 인천이나 한양에서도 사람들이 장 구경을 와서, 촌 물건을 사갔다며 한가롭기만 한 장터를 보는 게 마음이 안 좋다고 전했다. “옛날에는 장이 서면 사람이 많았지. 마트 생기면서 사람이 줄었어. 집에서 전화만 하면 마트 차 두 개 실어다주잖아. 이 동네에 마트 생긴 지 몇 년 됐지.” 할아버지 말대로 이 동네에는 하나로마트를 비롯해 홈마트, 플러스마트가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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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에 있는 하나로마트. 이 마을에는 대형마트가 세 군데다.
 
 
할아버지는 특별히 살 게 없어도 장에 나온다. 그냥 궁금해서다. 50년 동안 이 마을에서 산 할아버지는 강화에 있던 내가면 장(2, 7장)과 화도면 장(1,6장)이 없어져서 안타깝다고 했다. “장날이 되면 그냥 궁금하지. 뭘 사려고 나온 건 아니구. 내가장이랑 화도장이 없어졌잖아. 그나마 읍내 장은 사람이 많더라구. 근데 여기 장하고 읍내 장하고 값이 천지 차이야. 여기가 무척 비싸.”

길상 장날에 물건을 팔러 오는 사람도 외지 사람이 많다. 예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촌에 있는 물건을 가지고 나와 팔고, 필요한 물건을 사갔다. ‘물물교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던 셈이다. 이야기책에서 흔히 봐온 것처럼, 장작 한 지게 해다 팔고 돌아올 때는 생선이나 생활필수품을 사들고 오는 식이었다. 황 할아버지는 그런 풍경은 없어진 지 오래됐다고 말했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다 다른 데서 온 사람이야. 곡식 조금씩 가져와서 파는 이 양반들만 강화 사람들이고, 차로 온 사람들은 다 다른 데서 왔어.”

할아버지는 또 사는 일이 다 그렇다면서 장날 풍경이 바뀌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물건 사는 사람들은 더 편해졌어. 신발을 신지도 않고 물건을 사잖아. 할 수 없지, 뭐. 옛날 촌장은 촌에서 나는 것 갖다 팔았지. 여기 길상 장이 서면 읍에서도 소 팔러 다니는 사람들도 다 걸어왔어. 사람들은 강화읍에서 하루에 두 번 버스가 다녔지만 돈이 아까워서 다 걸어다니기도 했구. 읍에서 걸어오면 시간 많이 걸리지. 40리 쳐야지. 저기 강냉이 튀기는 사람도 여기 사람이 아니야. 김포 사람이지. 이불 파는 사람도 인천 사람이지. 핫도그 파는 사람은 강화읍내에서 왔어. 조기 쪼그리고 앉아서 파는 양반들은 강화 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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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고지를 팔러나온 할머니와 길상면에 사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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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할머니가 직접 농사를 지어 만들어온 호박고지.
 
호박고지를 팔러나온 호임축 할머니(84)는 기자가 황 할아버지와 이야기하는 동안 호박고지를 사라고 몇 번 말했다. “농사 지어서 만든 거야. 한 개 3천원. 떡 좋아하면 쭉쭉 찢어놓고 떡 만들어 먹어.” 기자가 한 개를 집어들자 두 개를 사라고 재촉한다. “두 개 사. 농사 지어서 만들어왔다니까. 방앗간에 쌀가루랑 가져가서 쪄먹어. 잘 샀구나 그럴 거야.”

이 동네에 산다는 육성기 할아버지(70)도 장 구경을 나왔다. “장날이 되면 심심해서 나와 보는 거지. 그전에는 사람이 꽤 많았는데 이젠 안 와. 장이 이렇게 서다가는 없어질 가망성이 많은 거지. 패자가 되는 거야. 여기 이 동네가 발전이 안 되니까 오가는 사람이 없어. 강화에 구경나온 사람들도 그렇고 마을 사람들도 다 마트에 가지. 없는 거 없잖아”라면서 “내가장도 화도장도 없어졌어. 내가장은 없어졌다가 살려야 한다고 해서 한 번 더 열렸는데, 도로 없어졌어. 장에 나오는 사람이 없는데 장이 열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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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장이 열린 부근 건물에 그려진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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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농작물을 가지고 나와 팔고 있는 강화 사람들.

길상장날보다 이틀 앞서 찾은 강화 읍내장날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새해들어 첫 장날인 데다 날이 포근해서인지 하루종일 오가는 사람이 많았다. 장이 서는 곳마다 찾아다니는 장돌뱅이도 지난번에 장사하던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대개 크게 장사를 하는 편이다. 이들과 달리, 장터 바닥에 자리를 잡은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은 집에 있던 순무, 검은콩, 찹쌀, 노랑속고구마 등 농작물을 풀어놓았다. 이들은 서로의 안부와,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 이의 소식을 궁금해하며 함께 칼국수를 시켜 먹기도 한다. “화도면에서 오는 할머니가 보이지 않네. 지난번에 오늘 꼭 나온다고 했는데. 몸이 안 좋은가?” 강화 읍내장날은 5일마다 만나 안부를 묻고 정보를 교환하는 장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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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읍내장날은 사람들로 하루종일 북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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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읍내장날에는 할머니들이 5일 만에 만나는 날이기도 하다.
 
 
길상장날도 강화 읍내장날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을 날이 있을까. 읍에서도 동검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을 때의 전성기 때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꾸준히 찾는 장날이 될 수 있을까. 내가장과 화도장처럼 사라지지 않고 5일에 한 번만큼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장터가 되면 어떨까. 이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는 그런 마음으로 장터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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