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림 아닌 다름, 나쁜 아닌 아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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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 아닌 다름, 나쁜 아닌 아픈
  • 장재영
  • 승인 2016.10.04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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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장재영 / 공감미술치료센터 기획팀장

약속시간이 5분쯤 지난 시점 복도에서 투닥투닥 말다툼을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아.. 진짜 아니야 모르고 한거라니깐!!!”
“하지 말라고 했는데 일부러 그런거 맞잖아. 자꾸 그짓말 할래? 엉???”

잔뜩 격앙되어있던 어머니의 모습은 센터 입구에서 잠시 누그러지는 듯 했으나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다는 듯 거친 숨소리에 찌푸러진 눈썹을 하고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치료사를 보고 싱긋 웃어 보이는 아동의 표정은 굉장히 평온하고 방금 전까지 혼났던 상황인지 짐작이 안갈 정도로 여유가 넘쳐보였다.

아동은 초등학교 저학년 남아로 평소 장난끼가 많고 주의가 산만하여 담임선생님 특별대우의 대상이 되곤 하는 블랙리스트 1순위의 학생이다. 그 덕에 아동의 어머니는 잡힐듯 잡힐듯 잡히지 않는 아동의 버라이어티한 문제행동으로 늘 근심이 가득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하지 말라고 해도 도무지 말을 들을 생각을 안 해요.”

변기에 화장지를 마구 쑤셔 넣는 장난으로 변기물이 넘쳐흘러 화장실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던 일, 급식시간 식당바닥에 갑자기 드러눕는 행동을 하여 혼이 났던 일, 중앙계단을 내려갈 때 친구를 밀어 넘어뜨렸던 사건 등등 아동의 학교생활은 이해할 수 없는 다양한 일화들로 가득했다.

그날도 교실 문의 말발굽을 세워놓은 상태에서 수차례 문을 닫으며 ‘끼이익’ 소리를 내다가 말발굽이 부러지고 문 아랫바닥에는 까맣게 발굽의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결국 아동은 학생 콜을 받고 달려온 담임선생님에게 특별대우를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치료사와 상담시간에 같이 놀면서 왜 그랬는지 이야기를 해보면 아동의 입장에서는 모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문 말발굽을 가지고 놀았던 이유는 말발굽이 바닥과 마찰을 내는 소리가 너무 신기해서, 화장지로 변기를 막히게 했던 이유는 휴지가 물과 함께 빨려 내려가는 모습이 재밌어서, 식당바닥에 누웠던 이유는 더운 날씨에 식당바닥이 유독 차갑고 시원해서라고 하였다. 게다가 가장 혼이 많이 났던 중앙계단에서 친구를 밀었던 사건은 친구가 차례를 지키지 않고 새치기를 해서였다고 한다.

이해는 어렵지만, 적어도 이유 없는 행동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사회적 규범에 대한 인식부족과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는 행동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이 보여졌을 때 아동이 정말 어떤 이유로 이런 행동을 했을지 관심을 갖는 경우도 드물다. 이 정도는 상식적으로 당연히 알아야한다고 선을 긋기 때문이다.

아동의 행동이 고의적이거나 규칙에 대한 반항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던 나는 전문적인 검사를 권유하였고 아동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로 판명되었다.
ADHD(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ADHD)는 아동기에 많이 보여지는 장애로 주의력의 결핍과 과잉적인 행동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ADHD 아동들은 자극에 매우 민감하고 선택적인 주의집중에 어려움이 있으며 생각을 하기 전에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어 규율을 알면서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단지 호기심으로 했던 행동이 문제행동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이런 행동들로 인해 학교에서 말 안 듣는 아이로 낙인 찍혀 잦은 꾸중과 부정적인 소릴 듣다보면 아이 스스로도 자신을 불신하게 되고 이런 상황이 수년간 지속된다면 정말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런 어려움을 겪고있는 아이들을 위한 치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규범을 잘 따르지 않는 아이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뿐더러 특수아동에 대한 정보도 많이 부족하여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출처 : 영화 The Adventures of Tom Sawyer(1938)]    
 
                      
1876년에 발표된 마크트웨인의 대표작 ‘톰소여의 모험’은 1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을 받으며 전세계 어린이들의 필독서로 손꼽히고 있다. 나 또한 그 책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내며 최고의 장난꾸러기로 묘사된 톰의 자유분방함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그의 괴상망측하고도 창의적인 장난에 무척 감탄하곤 했는데 실은 그것이야말로 그 책을 읽게 만드는 이유였으며 가장 기대감을 주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톰의 장난은 그저 유쾌하고 재미난 것만으로 마무리되지는 않았다. 각각의 챕터마다 말썽을 일으키고 수습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교훈을 배워나가는 톰을 바라보면서 성장에 대한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톰의 행동을 가지고 ADHD 검사를 한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위의 아동과 톰을 비교했을 때 어쩌면 아동 쪽이 더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좀 더 따뜻하고 다양한 시각으로 우리 아이들을 바라볼 필요성이 있다.
문제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본다면 그 문제를 정말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톰이 실수를 통해 교훈을 배웠듯 아동에게도 실수를 수습하는 경험을 통해 충분히 배우고 성장해나갈 수 있는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틀림 아닌 다름, 나쁜 아닌 아픈’ 이라는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처 : 영화 Tom Sawyer(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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