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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진완
  • 승인 2017.06.07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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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마지막회) 여행을 끝내며

<서진완 교수의 가족세계여행 365일> 연재를 이번 '에필로그'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 지난 2016년 5월11일 시작한 이번 연재는 37회에 걸쳐 세계 각국의 풍경과 풍물, 사람 등 4명의 가족이 함께 경험한 모든 것들을 풍성한 글과 사진으로 재미있고 치밀하게 구성해 독자들에 큰 선물을 안겼습니다. '365일에 걸친 세계가족여행'이라는 값진 경험과 소중한 의미를 나누어 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지난 1년여간 함께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에게도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 


새벽에 잠시 잠이 들었다 다시 깼다. 홍콩시간으로 새벽 3시인데 아침을 준다고 기내에 불이 들어왔다.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쉽지 않다. 아이들도 깨어있다. “얘들아… 너희들은 나중에 아빠, 엄마 일등석으로 호주에 보내줄래?” 엄마의 우문에 작은아이는 “이코노미 석으로는 보내드릴게요.”라고 했다. “…” “아들은 왜 대답을 안 해?” 아내는 이번에 큰아이에게 화살을 돌렸다. “전 네라고 대답한 걸요!” 그리고는 웃는다. 4시 20분에 홍콩공항에 도착했다. 주위는 아직 어둡고 공항의 불빛만이 보인다. 6시부터 운행되는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인터넷이 무료인데요!” 인터넷만 있으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도 상관없다.


빅토리아피크에서 본 홍콩의 야경 ⓒ 서진완
 

트램을 타고 빅토리아피크(Victoria Peak)에 올랐다. 홍콩을 보기에 여기보다 좋은 곳은 없다. 저녁을 먹으면서 각자 돌아가며 한 해를 마감하고 내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각자의 소망과 다짐을 영상으로 담았다. 저녁을 먹고 나자 주위는 완전히 어두워졌다.  

정상에서 홍콩 야경을 보면서 지난 1월 3일부터 시작했던 우리들의 세계일주여행을 이제 마무리한다는 의미로 모두 손을 모아 조그마하게 화이팅을 외쳤다. 그리고 내년 한 해 각자의 소망을 담은 엽서를 벽에 달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페리를 타고 침사추이(尖沙咀, Tsim Sha Tsui)로 돌아왔다. 벌써 새해를 알리는 폭죽을 보기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거리에 차량은 통제되었고, 홍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홍콩 거리위로 쏟아져 나온 듯했다. 우리도 이들 속에서 새해를 맞기로 했다. 12시 정각! 홍콩 섬과 구룡반도 사이의 좁은 바다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포옹을 했다. “Happy New Year!” 우리 모두 긴 여행에서 한 명도 낙오하지 않고 잘 견디어 주어서 정말 고맙다. 올 한해도 재미있게 살자! 


Happy New Year! ⓒ 서진완

나만큼이나 아내와 아이들 모두 감회가 남다른 모양이다. 자정에 이곳에서 펼쳐진 불꽃놀이를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환호를 지르며 보고 들어왔다. 한국에서 보신각 타종식을 한 번도 직접 가서 본 적이 없었는데, 숙소가 바로 침사추이의 중심가에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함께 새해를 맞는 새로운 경험을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가족 모두 서로를 안고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을 자축했다. 아이들은 한 살씩 더 먹은 것을 확인하고 좋아했다. 아내와 나는 한 살씩 더 늙어가게 되었지만 말이다. 

홍콩을 떠나는 날 작은아이를 위해 홍콩과학박물관과 홍콩우주박물관을 찾았다. 두 곳 모두 새해 첫날이라 무료로 입장이 가능했다. 큰아이는 동생이 박물관을 둘러보는 동안 나와 얘기를 나누었다. 과학에 대한 학력수준은 높지만 과학을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우리나라 학생들에 대한 기사가 생각났다. 작은아이는 이렇게 좋아하는 과학을 처음 마음 그대로 좋아서 계속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박물관을 나서는 아이의 발걸음이 가볍다. 그리고 행복해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 저렇게 행복해할 수 있는 그 순수한 모습이 좋다. 큰아이도 작은아이의 그런 모습이 좋아 보인다고 했다. 

홍콩만을 바라보면서 이제 우리들의 여행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각자 돌아가면서 여행의 소회를 한마디씩 했다. 큰아이는 이번 여행을 통해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할지 어느 정도 방향성을 잡았다는 것과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여행이 길어지면서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은 죄송하다고 했다. 엄마는 더 많은 것을 보기를 원했지만 큰아이는 그런 부분이 부담스러웠었다고 했다. 관심이 서로 다른 부분에 대해 달랐던 생각들을 털어놓은 것이다. 작은아이는 좋아하는 과학을 앞으로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잘 할 수 있겠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다이어트의 결과로 자신감이 생겼고 계속 유지하고 있는 점은 우리 모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내는 건강하게 우리 가족 모두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하면서 아이들과 나에게 그 모든 고마움을 전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했던 것이 큰 수확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끝으로 내가 마무리를 했다. 나는 이 여행을 계획하면서 기대했던 4인 4색의 의미에 대해 기억을 되살렸다. 네 사람 모두 조금씩 다른 목표를 갖고 여행을 시작했고, 각자의 미션을 365일 이렇게 건강하게 마쳤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아이들의 얼굴은 밝고 즐거운 표정이다. 
 


침사추이로 이동하기 위해 페리를 탔다. ⓒ 서진완

365일 24시간 우리는 함께 했다. 이 기억은 우리 모두에게 평생 남을 것이다. 하나의 프로젝트로서 이번 여행을 의미 있게 마무리를 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얘기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서로 손을 얹어서 화이팅을 했다. 홍콩에서도 해가 지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가 배낭을 찾아서 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해는 완전히 졌고 홍콩의 밤이 다시 찾아왔다.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탑승구 앞에 모두 앉았다. 작년 1월 3일 떠날 때 이곳에서 방글라데시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다시 일 년이 지나 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 큰아이는 잠시 후 비행기 탑승이 시작될 때 자신의 17번째 생일을 맞는다. 아내를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 이 여행을 구상했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고, 결국 다함께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이제 365일이 지난 지금 원래 출발했던 그 일상으로 돌아간다. 

밤 12시가 넘었다. 큰아이의 생일을 축하했다. 사실은 큰아이를 낳은 아내가 인사를 받아야하는 것이 정상이다. 고생해서 낳은 만큼 이렇게 많이 컸다. 여행하는 기간 내내 든든하게 내 곁에서 나를 대신해서 엄마와 작은아이를 챙겨주었다. 무거운 배낭을 들 때도, 어두운 밤에 국경을 넘을 때도 언제나 엄마와 작은아이 곁에 큰아이가 든든하게 있었다. 

12:55am

서울로 가는 CX412편의 탑승이 시작되었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탑승하는 사람들 끝에 섰다. 그리고 기내에 올랐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비행기를 탔던가! 그래도 이제 여행을 마친다는 생각 때문에 아내는 여전히 아쉬워한다. 기내에 앉자마자 아내는 잠을 청했다. 나도 많이 피곤하다. 역시 나이가 들면서 오랜 여행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이전에 여행했을 때와는 육체적으로 많은 차이를 느낀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그렇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 이렇게 마지막 페이지를 작성한다. 눈에는 피곤이 몰려온다. 아마도 서울에 도착하는 순간 그동안 쌓였던 긴장감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며칠 동안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내의 건강 때문에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다치는 일 없이 여기까지 왔다. 이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지난 일 년을 마무리한다. 너무나 걱정했지만 무사히 잘 해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각자 다른 느낌의 일 년이면서 동시에 영원히 함께 기억할 수 있는 공통의 사건들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소득이다.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힘들고 피곤했지만 이제 그 모든 것들을 기억 속으로 남겨둘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긴 여행의 터널을 지나 서울로 돌아가는 순간부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홍콩에서 우리가족의 여행을 마무리 한다. ⓒ 서진완

아내, 아들, 그리고 딸. 모두 고생했다. 덕분에 너무나 행복했다. 우리들이 오랫동안 공유할 수 있는 수많은 비밀코드를 함께 했다. 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도 받고 격려도 받았다. 페이스북을 통해 여행소식을 전할 때마다 그들의 댓글이 없었다면 아마도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모두에게 감사하다. 인천공항에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리고 활주로에 내렸다. 차가운 공기가 뺨에 스쳤다. 춥구나! 그래도 마음만은 아이들과 함께 있어서 따뜻하다. 

“아빠, 한 번 더 세계일주해요!” 작은아이의 말에 큰아이가 급히 한마디 한다. “안 돼!” 

나도 그렇다. 다음에는 엄마와 둘이서 여행을 할 거야! 이번에 너희들은 여행을 했을지 몰라도 나는 여행을 하지 못했단다.

<정리 = 서진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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