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사건, 위계적인 학교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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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사건, 위계적인 학교문화
  • 이혜정
  • 승인 2017.06.2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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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이혜정 / 청소년창의문화공동체 '미루' 대표


‘나도 치가 떨리게 당했다’는 부안여고 학생들의 외침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 땅에서 부모로 살아가기란 몹시 버겁다. 얼마 전 전북 부안여고에서 터져 나온 성추행 사건을 고발한 졸업생은 ‘나도 치가 떨리게 당했다’고 증언하고 있어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부모들을 다시 참담하게 했다. 현재 성추행 교사로 확인된 박 교사에 의한 피해가 접수된 규모만 해도 40여명에 이르고 있다. 재학생에 이어 졸업생들도 적극적으로 사실 알리기에 나서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문제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 적어도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은폐된 사건이고 그 피해의 규모가 상상이상 임을 반증한다.

 

졸업생들에 의해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이 학교에서는 사건의 발단이 된 박 교사뿐만 아니라 김 교사와 2-3명의 교사가 더 거론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이 된 박 교사는 학년별 혹은 학급별로 속칭 애인을 만들어 성추행하고 학생들을 감시하도록 했다고 한다. 심지어 교무실에서 박 교사가 속칭 애인들을 무릎에 앉혀 놓은 모습을 본 학생들의 제보도 있어 학교에서도 묵인 혹은 방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 교사는 성추행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수많은 ‘조공’을 강요했다고 한다. 스승의 날은 물론이고 빼빼로데이 등에도 선물을 강요했다고 한다. 박  교사뿐 아니라 이 학교의 일부 교사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떡돌리기를 학생들에게 요구했다고 한다. 졸업생들에 의하면 무슨 상을 받거나 특별할 것 없는 좋은 일이라도 있으면 매번 떡을 돌리라 했고, 그렇지 않으면 괴롭힘이 이어져 어쩔 수 없이 떡을 돌렸다고 한다.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는 논란이 되고 그 때마다 솜방망이 처벌이 논란의 핵이 되곤 한다. 올해 초 성추행으로 논란이 된 세종시 한 고교 교장이 인근 중학교로 발령을 받아 학모들의 거듭된 항의로 해임된 사례도 있었다. 심지어 2015년 7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로 징역 4년 형을 받은 충남의 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성범죄 전력자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교실이나 학교 관사 등에서 10살짜리 제자 7명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1996년 구속되었으나 당시의 법령에 따라 피해자들과 합의를 하면서 공소 기각 결정을 받고 해임되었다. 하지만 2002년 충남에서 임용시험을 보고 다시 초등교사로 신규 채용되어 또 다시 성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물론 2015년 성범죄 교원에 대한 징계를 대폭 강화한 ‘교육공무원 징계 양정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이 시행되고 있다. 개정안은 국·공립 초·중·고등학교 교사와 대학교수가 성폭력을 하면 비위 정도에 상관없이 해임 또는 파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거에는 성폭력 정도에 따라 견책·감봉·강등·해임·파면 등 징계를 내릴 수 있었지만 ‘해임과 파면으로 한정지은 것이다. 또한 교육공무원법은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 범죄로 파면·해임되거나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는 경우 임용결격 사유로 하고 있다.

 

예전보다 강화된 것은 분명하나 문제는 그 범위가 강간이나 강제 추행으로 한정되는 성폭력에 대한 대응방침으로 오히려 학교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추행이나 성희롱 등에 대한 대응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이전 법령에 의해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성범죄 경력을 가진 교사들이 아직도 학교 현장에 남아 있으나 별다른 대응책이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성희롱, 추행과 같이 경계가 모호한 성범죄를 예방하고 경각심을 가질 수 있는 보다 섬세한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성범죄 전력이 있는 교사들에 대한 전면 조사와 대책이 필요하다.

 

한편 강력한 법적 대응만으로 한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학교문화가 문제의 본질이다. 우리 학교 현장은 사실 가부장제의 축소판이다. 학교장을 정점으로 한 교직원의 위계가 교사를 정점으로 한 학생들의 위계로 이어지고 이는 나아가 교사 학부모의 위계로 확장된다. 물론 교원 침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지만 평범한 부모와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학교는 교사는 감히 넘볼 수 없는 벽이다. 이런 구조 안에서 동료 교사의 범죄에 눈감고 교사의 성범죄를 덮어버리는 학생과 부모들이 생겨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학교문화를 바꾸기 위해 교무회의를 민주적 의결기구로 재편하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학교 서열화, 교사 성과급제로 악용되는 학교, 교원 평가제도를 폐지하고 유럽의 경우처럼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참여하는 민주적 평가 제도마련이 필요하다. 한 사회의 미래는 교육현장이 보여준다.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학교문화의 정착은 성범죄가 빈번히 발생하는 우리 학교 현장의 토양을 바꾸는, 느리지만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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