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바이칼 탐사기] 제3회 하바롭스크
지난 5월29일부터 6월5일까지 동국대학교 부설 유라시아실크로드연구소는 우리 민족의 발원지 러시아 바이칼호와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했던 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탐사했다. 탐사에는 공개모집한 시민 32명이 참여했다. 경기만포럼 연안보전네트워크 김갑곤 사무처장이 그 [연해주, 바이칼 탐사기]를 7월17일부터 격주로 <인천in>에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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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롭스크 역사 ⓒ김갑곤
러시아 극동 중심도시 하바롭스크에 도착. 우스리스크에서 밤새 열차를 타고 들어왔다. 하바롭스크는 바이칼로 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출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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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원 암각화 ⓒ김갑곤
오전에 하바롭스크 외곽 나나이족 민속촌과 강가 바위들로 새겨진 암각화를 둘러보았다. 1만 3천~4천 년 전에 새겨진 바위그림. 알타이 문화권의 암각화는 매우 많이 만들어졌다. 기하학적 무늬와 동심원 등은 울산 반구대 및 천천리 벽화 등과 유사한데, 동심원 등은 태양을 상징한다. 우리 문화의 원형인 하늘숭배 사상, 드디어 '해'와 '새'와 '나무'가 나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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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롭스크 향토박물관
하바롭스크 향토박물관은 러시아 극동 하바롭스크주 역사와 문화 위상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명소다. 그 자원과 생물, 민속 문화 유산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아무르강 일대의 자연환경에 경탄을 자아낸다. 이곳 역사와 문화, 민속에 이르는 심도 있는 아카이브가 돋보인다. 시간에 쫒겨 찬찬히 살펴보지 못한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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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롭스크 레닌광장
레닌광장은 모스크바 붉은광장에 필적할 만한 하바롭스크의 심장이라 한다. 광장 한가운데 거대한 분수대가 있고, 작은 분수대 8개가 변두리를 장식한다. 러시아는 그 지역을 상징하는 도시 광장과 역사에 늘 정성을 쏟아 붓는다. 이곳 하바롭스크에서 활동하면서 한때 ‘극동의 고리끼’라 불렸던 조명희 작가의 고가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 볼셰비키이자 여성 혁명가로서 명성이 높았던 김 스탄케비치 알렉산드라가 일했던 건물 등은 찾아가지 못했다. 조명희는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총살당하고, 김 스탄케비치는 1918년 백위파에 의해 처형당했다. 비운의 위인들. 그것이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 극동의 통한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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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롭스크는 극동 시베리아 심장부로 구소련의 대규모 경제개발계획과 이민정책으로 군수 산업단지 등이 조성된 신도시다. 1858년 당시 동시베리아 총독이던 니콜라이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 백작이 불과 2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청나라로부터 아무르 강 영유권을 빼앗기 위한 전초기지로 세운 도시가 하바롭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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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르강 ⓒ김갑곤
아! 아무르강, 북방민족들은 이를 '검은 물' '흑수'라 했다. 중국에선 '흑룡강'으로 불린다. 동시베리아 와 중국 동북지역의 경계로 4500km에 이르고 다시 북쪽 오츠크해로 흘러간다. 오늘날 러시아, 중국, 몽고 국경 분쟁의 요충지가 되고 있지만, 이곳은 동시베리아와 북만주 벌판을 살아온 북방민족 최고의 문명과 문화의 젓줄. 그 아무르강의 거대한 몸이 틀어앉아 있는 곳이 바로 하바롭스크. 여기서 2박 3일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이르쿠추쿠로 가서 바이칼 호수로 들어간다.
- 경기만포럼 연안보전네트워크 사무처장 김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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