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이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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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이바구
  • 은옥주
  • 승인 2017.10.10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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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은옥주 / 공감미술치료센터 소장


옥상에 올라 둥글고 둥근 보름달을 본다.
달은 마치 우리 할머니 함박웃음처럼 포근하고 따뜻하다.
모처럼 할머니가 보고 싶고 그 넉넉한 마음이 그립고 또 투박한 손으로 만들어주시던 팥 송편이 먹고싶다.

할머니는 해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팥 송편만 만드셨다.
하얀 쌀가루를 찰지게 반죽해서 송편을 만드셨고 할머니는 반달 모양 송편을 만드셨는데 나는 넓적하고 큼직한 뱃속에 팥을 잔뜩넣어 배가 맹꽁이처럼 부푼 송편을 만들었었다. 소반 위에 송편을 나란히 나란히 빚어 놓으면 새하얗고 볼록볼록한 송편이 오종총 모여있는 것이 참 예쁘고 탐스러웠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마솥 안에 채반을 얹고 그 위에 초록 솔을 얹어 쪄낸 송편은 솔 향이 나고 쫀득쫀득해서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를 맛이었던가!

내가 만든 엉성한 송편은 항상 옆구리가 터져 팥이 쏟아져나와 옆의 예쁜 송편가지 붉으레하게 팥물이 들게 만들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번도 나를 나무라시거나 싫은 내색을 않고 호호 불며 맛있게 먹던 나를 함박웃음으로 바라봐 주셨었다.





우리 마을은 다 친척이어서 담 넘어로 푸짐한 음식이 오고가고 추석날 아침은 온 마을 송편이랑 각종 전이나 튀김을 우리집에서 다 맛볼 수 있었다. 특히 명절에겐 먹을 수 있는 제사상에 얹은 예쁜 조각을 한 마른 문어나 약과는 나에게는 별미 중의 별미 였었다. 

윗 마을에는 커다란 고목나무에 짚으로 튼튼하게 꼬아 만든 그네가 걸리고 마을 아낙네들은 그곳에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모여들어 그네타기를 했었다. 이 마을 저마을에서 다 모여서 누가 더 힘있게 그네를 굴리는지 누가 더 높이 올라가는지 내기가 열리고 커다란 보름달 아래 바람을 머금고 부풀어 날리던 한복 치맛자락이 얼마나 신기하고 아름답던지.

저녁 느지막히 마을 뒤쪽 높은 곳에 기찻길이 있어 그위에 올라가면 할머니부터 어린 꼬맹이까지 모두 달을 향하여 늘어서서 손을 싹싹 비비며 소원을 비는데 그 소원이 남에게 알려지면 절대로 안된다고 하며 모두들 입은 오물오물하며 입속으로만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나도 달을 보고 소원을 열심히 빌었던 것 같은데 무엇을 빌었는지는 이제 기억이 나질 않는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 위로 보이는 둥근 달은 예전에 보던 그 크고 웅장한 자태는 아닐지라도 그 달을 보며 나는 지금 무슨 소원을 빌어볼가 생각해본다.

문득 저 달 속에 보이는 인자하고 그리운 할머니 얼굴처럼 내 손주들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살아있는 그런 다정하고 포근한 할머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원이 생겨났다.





그래 내년부터는 우리 돌돌이와 가족들과 같이 송편 만들기를 해봐야겠다.
우리 할매처럼 옆구리가 다 터져 옆 송편이 엉망이 되어도 야단치지 않고 즐겁게 놀이에 끼워주시는 그런, 넉넉한 할머니가 되어주어야겠다. 

이렇게 가족의 정은 대를 이어 반복되고 이어져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가보다.
이야기 심리학에서는 세상 모든 동물 중에 오직 인간만이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동물이며 또 자기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했던가!

나는 어떤 내 생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지금부터 또 만들어 갈 것인지, 
내 삶의 이야기는 어떤 방식으로 마무리하고 싶은지..
저 달에게, 또 내 마음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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