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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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무기
  • 장재영
  • 승인 2017.10.2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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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장재영 / 공감미술치료센터 기획팀장

“으아... 나 진짜 운동 안하면 안되겠다...”
저녁시간에 더욱 빡빡한 상담스케쥴 때문에 끼니를 제대로 못 때우고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집에와서는 야식을 주섬주섬 흡입하곤 했던 그 어느날,
무심코 봤던 거울 앞에는 웬 낯선 남자가 멀뚱멀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없어져버린 턱선, 풍성하게 늘어나버린 인격, 잔뜩 무거워진 몸뚱이를 보고 강한 동기부여가 몰려왔다.
물론, 사회적으로는 푸근하고 안정감 있는 상담자의 모습도 어느정도 메리트가 있겠지만 한때 가볍고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던 근육들은 어디갔는지 궁금하여 집 가까운 헬스장들을 알아보던 참에 길가의 킥복싱 도장의 간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헬스클럽의 운동 스타일도 나쁘지는 않지만 상담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엔 조금 부족한 감도 없지 않아 있었기에 킥복싱을 다녀보는 것에 잠시 고민 했었는데 마침 글러브 증정 이벤트가 있어 좀 더 용기를 내도록 만들어 주었다.
킥복싱 도장에서의 운동은 헬스클럽 운동처럼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라 다 같이 특정 동작을 반복하기도 하는 단체운동의 성격이 있었으며 신체 여러 부분을 자연스럽게 고루 사용하게 되는 운동이었고 무엇보다 샌드백을 치면서 한계치에 도달할 때까지 땀을 쭈욱 빼었을 때 느껴지는 희열감도 있었다.

사실, 상담을 하다보면 인간 한사람으로서의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상담자의 모습만 내보이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내담자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기다려주는 것에 있어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할 때도 많아 스트레스 요인이 되곤한다. 그런데 이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땀도 많이 흘리고 잠시나마 상담자의 가면도 벗어던질 수 있어 온전히 나의 모습을 만나는 것만 같아 마음이 편안해지고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날도 퇴근하고 받은 스트레스를 샌드백에 한창 쏟아내고 있던 참이었다.
“뭔가 쌓인게 많으신가 본데요?..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나봐요?”
마침 옆 라인에서 같이 샌드백을 두둘기던 선수분이 매우 어정쩡한 나의 자세를 보고 교정해주며 장난스레 말을 건냈다. 나는 잠시 운동을 멈추고 선수분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그는 이런 말을 건내었다.





“근데 킥복싱은 자신을 정말 잘 알게 해주는 운동인거 알아요?” 라는 질문에 나는 의아해서
“어째서요?” 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팔길이, 다리길이, 키 이런거 모두 경기에 영향을 주잖아요. 이게 다 나에요. 남이 아니고... 그니깐 신체적인 약점이 있어도 다 인정해야 해요. 결국 링에 들어가면 맨몸이니깐.” 라고 하였다.

그냥 짧은 몇 마디를 나누었던 것뿐인데도 그 몇 마디의 말은 그동안의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해주었다. 결국, 내게 주어진 신체의 조건에 약점이 있다해도 주어진 조건 안에서 경기를 하여 승리하기 위해서는 약점을 무시하고 배제할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은 더욱 올라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이크 타이슨은 헤비급에서 활동하는 복서치고는 178cm의 작은 키로 그를 상대하는 다른 복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를 가졌으나 상상을 초월하는 체력과 맷집, 자신의 신체에 맞는 자세와 체중을 100% 싣는 타격 방법을 완성하여 핵주먹이라는 별명으로 프로복싱 무대를 주름잡았다. 데뷔 후 19경기 연속으로 KO승을 거두며 세계 챔피언 자리에 올랐을 정도로 대단한 선수였다.
하지만, 이런 대단한 선수가 되기까지는 분명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는 과정을 겪었다. 주먹을 뻗어도 상대가 닫지 않는 거리에서 상대방의 품안에 파고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왔을 것이며 계속된 노력이 쌓여감에 따라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자신만의 무기가 탄생했을 것이다.

이것은 유독 복싱만의 예는 아닐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내 안에는 약점이라 분류해놓은 좋아하지 않는 내 모습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나의 특성을 단순히 강점과 약점으로 구분 짓기보다 그냥 이것을 나의 특성이라고 인식해보면 어떨까?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도 상황에 따라서는 나의 동기를 끌어내주는 귀한 자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런 모습들을 부끄러워하고 감추며 무시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을 열고 나의 특성에 대해 섬세하게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가진 특성이 나만의 귀한 무기로 성장해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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