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위기'를 넘어 '성찰의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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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위기'를 넘어 '성찰의 기회'로…
  • 이병기
  • 승인 2010.10.09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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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①] "골방 속 인문학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인하대 학국학연구소와 인천시립박물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인문학 강좌 '동아시아와 한국, 상생을 향하여'.
9월14일부터 12월21일까지 인천시립박물관에서 진행된다.
지난달 28일 열린 제2강 '동아시아담론, 동아시아라는 사유공간' 강좌를 맡은
류준필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교수의 강연 모습.

취재: 이병기 기자

글 순서

1. 골방 속 인문학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2. 인문학, 인천에서 날개짓을 하다

"예전에는 인문학이 학자들만의 골방에 갇힌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효율성 없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했죠. 하지만 요즘 삶이 각박해지고 경쟁사회로 접어들면서 자신과 사회를 되돌아 보고 싶은 시민적 정서 속에서 인문학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 이희환 인하대학교 학국학연구소 HK(Humanity Korea) 교수

골방에 있던 인문학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서유럽에서 노숙자나 빈민, 죄수 등 최하층 빈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으며 '희망의 인문학'으로 불리던 것이 이제 바다를 건너 한국에서도 인기몰이에 나섰다.

몇 년 전부터 우리 곁으로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인문학. 과연 어떤 이유로 관심을 끌고 있을까?

윤승준 인하대학교 인문학부 사학전공 교수는 한국학연구소에서 발간한 '인문학, 소통과 공생의 지혜'에서 인문학 활동의 기본 정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문학의 기본 정신은 첫째 휴머니즘이다. 인문학이 인간에 관한 연구이므로 당연한 말이겠지만, 각별히 강조돼야 할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인류애, 인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둘째는 관용주의다. 인간 집단과 문화는 다양하며 고유의 전통과 개성을 지닌다. 인종이나 민족, 국적 또는 거주 지역, 신분 등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동등한 인격체로서 이해와 배려, 타 문화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인천의 경우 인문학 강의나 관련 활동이 활성화한 다른 지역에 비해 아직은 공감대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인하대 한국학연구소는 지난 2009년부터 인천시립박물관과 함께 '인천시민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상아탑에 갇혀 있던 인문학이 지역사회와 더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소통을 일궈내기 위해 마련한 첫 시도다.

인천의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학자들은 '인문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들어보자.


김영진 교수김영진 교수(불교철학)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스스로 책을 보고, 생각하고, 그 다음 단계까지 나가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진행하는 강좌를 수강하는 정도지요. "재미 있네, 의미 있겠네"라는 거죠. 자신의 삶하고 연관시키면 더 좋겠지만, 단순히 강의를 듣는 게 자기 공부로 간다는 일에는 거리가 있어요. '인문학 공부'라기보다는 인문학 내용을 갖고 풍요로워지는 정도입니다. 강의를 듣는 하루는 풍요로워지는 거죠.

저는 불교를 강의했어요. 사람들이 불교에 대해 대부분 들어는 봤지만 깊게 접근하진 않아요. 그러나 인문학 강의를 통해 조금 더 접근하는 기회는 되는 것 같아요. 강연 쉬는 시간에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평소 스님에게 들을 때는 거리감이 있었는데, 이렇게 들으니 유용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다"라고 말해요. 

신앙이 다른 사람들도 있다 보니 불교를 공부하는 게 부담이 있었다는 거죠. 학문 자체가 가지는 특성이랄까. 기독교에 대한 내용도 목사님이 와서 가르치면 부담이 있는데, 종교와 관련이 없는 사람이 얘기하다 보니 사유나 인문학의 하나로서 받아들이게 되고 재미를 느낍니다.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 같아요. 불교를 다양한 '앎'이나 '사유'의 하나로 여기고 강의에 귀를 귀울입니다.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이 된다고 봐요.

김태년 교수(철학)

인문학에는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인문학뿐만 아니라 학문이란 걸 접할 때는 먹고살기 급급해 자신과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학문하고 만나는 첫 계기가 되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는 유용하다고 생각해요. 연수구의 한 복지관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있는데, 수강생들 말을 들어보면 "관심은 있었지만 나와 멀리 떨어져 있고, 신비롭고 고상해 보였다"라고 해요. 결국 "무슨 말인지 몰라 난 알수 없다고 느꼈는데, 접해보니까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죠. 이런 부분들에서 일조를 했다고 봐요.

문제는 그 생각들이 삶 속에 침투하고, 자신이 느끼는 방향으로 나가기에는 아직 부족한 1차적 단계라는 겁니다. 인문학 강의를 듣는 게 쉽게 얘기하면, '지적 허영심'을 채우는 계기라는 거예요. '지적 허영심'이란 말이 나쁜 의미는 아닙니다. 좋게 말하면 '삶의 여유, 지적 호기심'일 수 있고, 나쁘게 얘기하면 '나도 철학을 들어봤어'라는 '뿌듯함'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계기에서 나아가면 시민의식을 고양하거나 자신의 삶을 학문하고 연결하는 거죠.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입니다. 깊이 있는 소규모 모임들이 활성화해야 해요.

예를 들면 일본사람 중 수만명이 독서회를 하고 있어요. '원전을 같이 읽는 모임'도 있을 수 있구요. 시민들이 만든 작은 모임이에요. 우리나라도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이나 '삼국유사', '논어' 읽는 모임도 있을 수 있죠. 이런 것들이 다양해지면 일종의 시민운동과도 연계를 할 수 있지요.

사실 이렇게 나아가는 게 의미를 갖는데, 지금은 초기 단계라고 봐요. 이런 식의 교양 강좌들이 사람들에게 뿌듯함을 느끼게 하기 위해선 인문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 거죠. 예전 TV에서 보던 도올 김용욕 선생의 강연 같은 경우, 그냥 재밌게 끝나버렸잖아요. 물론 없는 것보단 낫지만요.

기자

인문학이 시민운동으로 나가는 것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김태년 교수김태년

시민들이 인문학 강의를 듣다 보면, 자기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거나 우리를 둘러싼 사회에 대해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수 있잖아요. 각성한 사람들이 모인 게 시민이구요. 일종의 지향성을 지니고 나가는 게 시민운동인데, 처음 단계로 삶을 돌아보고 사회를 둘러보는 게 시작인 거죠.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하다 보면 '우리동네는 왜 이렇게 굴러가는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삶의 질에 대해 고민하다 보면 '여기에 골프장이 들어와야 하는 건가?' 할 수도 있구요. 큰 단체나 명망가에 의해 위에서부터 조직돼 내려오는 운동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시민운동이 가능하려면 아래서부터 공부하는 모임이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김영진

인문학 강의를 수강하는 사람들이 공부를 조금 더 강하게 해 글까지 쓸 수 있는 사람으로 되는 것도 필요합니다. 세미나 수준처럼 더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거죠. 박물관에서 마련한 강좌의 경우 이 정도까지는 되지 않겠지만, 우리의 이 작업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확대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는 좀 더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거죠.

김태년

자발적으로 구성된 소규모 모임이나 스터디 그룹에 도서관이나 박물관에서 공간을 지원하고, 우리도 강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고 봐요. 세미나 등 전문적인 단체에서 하는 인문학 강좌의 경우 대학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더 배우려고 오는 이들이 있어요. 하지만 도서관의 인문학 강좌는 지역과 연계된 진짜 일반 시민들이 모이는 거죠. 

아까 얘기한 시민운동 이야기는 섣부른 감도 있지만, '지역성, 지역과 연계돼 있다. 풀뿌리가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예요. 소규모 모임을 만들기 위해 공기관에서 지원해준다면 더 많은 모임이 생길 수 있으리라고 봐요.

특히 한국사회에서 퇴직자들이 갈 데가 없잖아요. 요즘엔 인문학에 관심을 가진 퇴직자들이 많이 나오는 세대가 됐어요. 주부도 가능하고. 제일 좋은 건 삶의 질이 좋아져서 일반 노동하는 사람들도 퇴근 후 같이 공부하면 좋겠지만, 한국사회에서 거기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인 것 같습니다.

다양한 계층들이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좋은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희환 교수이희환 교수(문화)

배다리에서도 작년 인문학 교실을 시도했어요. 월1회로 8회 정도 예상하고 강의를 준비했는데, 진행하지 못했죠. 성급하게 했던 것 같아요. 강의할 사람들은 구할 수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교실을 열 것인지 기준이 없었어요.

배다리나 도시이야기, 종교 등 인천의 정체성과 어울리는 주제들을 고민했었죠. 홍보도 부족했고, 대상이 분명하지 않다 보니 확산되지 못했어요. 하지만 다시 구상은 하고 있답니다.

기자

배다리에서 진행하는 '역사문화마을만들기'도 인문학과 연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희환

지역 개발과 발전이란 논리로, 지역이 황폐화하고 파괴되는 위기를 보면서 사람들이 모여 배다리의 가치를 공유하게 됐습니다. '배다리'라는 오래된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우리 삶이 달라질 것이다'라는 것을 느끼면서 문화운동을 시작하게 됐죠.

문화운동을 확산해 보자, 우리의 생각들을 정리하자는 의미에서 인문학 교실을 시작한 거예요. 앞으로 인문학 강좌는 더 섬세하게 어떤 강좌를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준비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얼마 전 배다리 역사문화만들기 위원회를 개편하면서, 인문학 교실도 계획을 세워 시도해 보려고 구상 중입니다.

기자

아무리 좋은 인문학 강의라도 사람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데, 어떤 방법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을까?

이희환

현재는 도서관이나 박물관, 대학에서 시민들에게 인문학 강좌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다만 대학은 시민들과 공유하려는 움직임이 많이는 없었던 것 같아요. 자세히 찾아본 건 아니지만요. 인천대에서도 시민대학을 만들어 학점은행제 형태로 평생교육 차원에서 운영했다고는 하는데…. 시민과 대학이 인문학을 주제로 만난 것은 인하대 한국학 연구소가 비로소 첫 걸음을 내딛었다고 할 수 있어요.

우리 연구소도 이전까지는 시도가 없다 보니까 시립박물관이 가진 인프라나 역량을 함께 공유하면서 공동으로 주최하게 된 겁니다. 기관별로 하고는 있지만 조금 더 다양한 기획과 다양한 기관에서, 시민 속에서도 다양한 인문학 주제들이 발굴됐으면 해요. 인문학 강좌가 관객이 많아야 성공하는 건 아니니까 소규모라 하더라도 그들이 묻고, 답하고, 토론하는 게 중요하죠. 풍성한 인문학 주제들이 확산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윤대영 교수윤대영 교수(역사학)

역사는 인문학의 학문 중에서도 토대학문의 성격을 강하게 지녔습니다. 철학이나 문학을 더 진지하게 접근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실들을 제공하죠. 역사의 바탕이 있을 때 철학적 접근이 가능하고, 이것들이 있어야 아방가르드라고 하는 소위 '진취성'이 담보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런 측면에서 인문학의 기로에 역사가 의미 있지 않나 봐요.

동남아시아를 예로 들면, 한국사회와 멀었던 것처럼 인식이 많은데, 실제 한국 자료만 갖고 추적해 봐도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아요. 연관이 많은 거죠. 동남아시아가 근대 이후에는 우리와 연결돼 가는 부분이 많거든요.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잊혀져 있죠.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이런 것들을 다시 찾아내 설명하고, 공유하는 게 바탕이 될 때 동남아시아 문화나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탄탄해 지겠죠.

조원형 교수(언어학)

언어는 인간이 생각하는 도구이자 서로 소통하는 도구입니다. 저는 언어 중에서도 소통을 연구하는 '텍스트 언어학' 분야를 하고 있어요.

'텍스트 언어학'이란 '문학 텍스트', '서사 텍스트' 등 언어학이라는 것이 인간과 인간이 어떻게 소통하고, 인간과 사회가 어떻게 소통하는지 다루는 학문이예요. 소통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어떻게 조직하는지에 대한 여러가지 기술들이 있는 거죠.

문법적인 문제로 시작해 나아가면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문학적 문제도 포용할 수 있는 거시적 소통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기자

'텍스트 언어학'이란 학문이 생소한데. 더 쉽게 설명하면?

조원형 교수조원형

요즘엔 '하이퍼미디어시대'란 말이 있어요. 새롭게 나오는 매체들. 인터넷 매체나 방송, 영상 등 여러가지가 융합된 텍스트들이죠. 그런 것들의 체계와 구조를 밝히는 거예요. 첨단매체뿐만 아니라 역사속 문헌이나 문학 텍스트 등 여러 종류가 있고, 그 나름대로 독특한 문체가 있습니다. 

텍스트 종류마다 문체가 있고, 인간에게 각자의 효용을 갖고 있는 거예요. 각각이 문법적으로 구조화하되고 어떻게 생산되는가죠.

기자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조원형

텍스트의 구조를 밝히면 글을 쓴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글을 썼는지 알 수 있죠. '저런 식으로 글을 쓰니까 사람들을 호도할 수 있구나'라는 것도 밝힐 수 있어요.

대통령의 발언을 예로 들면 언론에서 보도할 때 거두절미하고 말을 내보내면 완전히 다른 의미로 왜곡될 수 있죠. 하지만 텍스트 구조를 보면 저기서 이런 얘기가 나왔는데도 그 말의 특정한 부분만 부각시키거나 어떤 부분은 무시하고,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말을 조작할 수 있죠. 텍스트 언어학으로 조작의 이면에 담긴 의도도 간파할 수 있는 실용적 목적도 가질 수 있죠.

그러나 내가 연구하는 것은 위의 사례보다는 사람이 말을 어떻게 생산하고, 생산된 말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소통되면서 인간의 문화를 형성하는지에 방점을 찍었으면 좋겠어요.

인간과 인간의 소통이 문화를 형성하고, 그게 나아가면 역사가 되는 거예요. 특히 역사를 전공할 때 '역사 속에서 어떤 텍스트들이 소통되고 생산됐는가'를 연구하는 것은 역사를 이해하는 데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텍스트의 수사학적 구조, 문체적 구조가 어떻게 나타내는가를 통해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언어학은 문법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깊이 있게 들어가는 미시적인 학문이면서, 인간의 생각 전반을 다 아울러야 하기에 포괄적이면서도 거시적이기도 해요. 요즘 유행하는 '학제적'이란 말도 어울릴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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