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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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때문에
  • 장현정
  • 승인 2018.01.23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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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내겐 너무 여려운 네 살의 너... / 장현정(공감미술치료센터 상담팀장)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바나나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바나나 케이스에 넣어둔 바나나를 좋아한다. 우연히 집에 굴러다니던 바나나 케이스를 발견하고 나서부터 케이스에 바나나를 넣어두었다가 먹는 것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아침마다 자신의 케이스에 있는 바나나를 꺼내서 직접 까서 먹는 그 맛이 다른가보다.
 
어느 날 아침, 부엌에 남아있는 바나나를 보고 아이에게 먹을 것인지 물었다. 먹겠다고 하길 래 아무 생각 없이 바나나를 한줄 까서 주었더니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자기가 깔 수 있는데 왜 까서 주냐는 것이었다. 달래고 달래도 한참동안 서럽게, 엄청나게 서럽게 울다가 겨우 울음을 멈추더니
 
“바나나는 내가 까는 거야. 엄마가 까는 거 아니야.”
 
그리고 또다시 한참 울며불며 푸닥거리를 했다.
 
“알겠어. 내일부터는 엄마가 안 깔게. 너 그대로 줄게.”
 
우는 애를 달래면서 아침부터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한테 무얼 그리 잘못했니...
 
나갈 시간이 다가오는데...
시간도 없고 바쁜데 받아주어야 할지 멈추도록 해야 할지
달래야 할지, 혼을 내야 할지
울게 둬야 할지, 울지 말라고 해야 할지
내가 미안해해야 할 일인지, 아이를 가르쳐야 할 일인지
 
엄마는 아이가 이럴 때마다 참 어렵다.
아이와 마주하는 순간순간마다 혼자서 심한 내적갈등을 하게 된다.
아이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아직 어리고 작기 때문에 더욱 고민은 깊어만 간다.
 
결국 아이를 달래느라 아침운동을 포기했다.
시간을 주자 아이가 실컷 울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바나나를 먹는다.
몇 번이나 또 같은 말을 한다.
 
“바나나는 내가 까는 거야. 바나나는 내가 깔 거야”
 
나 또한 다시 생각해보았다.
이 아이가 때때로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을 이해하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나이인가?
세상일이 자신이 예측할 수 없는 일임을 아이에게 이해시켜야 하는가?
생각해보아도 답은 없지만 이런 일들을 경험하다보면 아이 스스로 터득할 것이다.
한풀 울음이 꺾인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는 바나나를 먹기 쉽게 해주고 싶었어. 니가 하고 싶어하는지 몰랐었어”
“엄마에게 이야기하면 기억할게”
 
태어난지 4년, 아이에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나에게서의 4년과 아이에게서의 4년은 참 다르다. 그 사이 모든 것을 다 해 줘야하는 아기에서 유치원 입학을 앞둔 형님이 되었다. 때때로는 아기 같고 때때로는 어른스러운 큰 아이 같다.
 
내가 해 주던 것들 중 일부는 거둬들이고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두어야 할 나이가 되었다. 지금부터는 자기 생각이 분명해지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는 너와 이야기하며 서로를 이해하며 풀어가야겠다. 따박따박 말대답하며 자기주장 하는 네 살의 너와 잘 소통하고 싶다.


 

(사진출처: https://blog.naver.com/himisong/2210553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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