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침묵’에게 질문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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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침묵’에게 질문하는 영화
  • 한인경
  • 승인 2018.03.14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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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다시 주목하는 영화 『엘리펀트 Elephant』

<한인경의 시네 공간>은 2016년부터 독립영화에 대한 연재에 이어, 2017년 8월부터는 ‘다시 주목하는 영화’라는 주제로 영화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일상의 피로를 풀어 주는 청량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인문학적으로 인간의 존재 이유와 그 밖의 다양한 존재의 진실에 대하여 사유하게 해준다. 영화 속 다양한 삶의 양상을 공감할 수 있으며 감독과 배우들의 천착(穿鑿)한 철학적 외침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영원한 테마가 되기도 한다. 제한된 물리적 크기의 스크린이지만 우리는 무한대의 자유로운 공간을 만난다. 그 속에서 독특한 재미를 느끼고 힐링하고 비상한다.


다시 주목하는 영화 『엘리펀트 Elephant』

“코끼리 품어보기”

개  봉 : 2004. 08. 27. 개봉 (81분/미국)
감  독 : 구스 반 산트
출  연 : 알렉스 프로스트, 에릭 듀런, 존 로빈슨, 일라이어스 매코넬
등  급 : 청소년 관람불가 

 

출처:영화『엘리펀트』


세계 곳곳에서 총기 테러가 발생한다.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의 폭탄테러 및 총기 난사로 무려 150여 명이 사망하는 사건을 비롯해서 최근 지난 2월, 미국 플로리다주 고등학교에서 17명이 사망하는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맥도널드, 스타벅스 매장 등 대표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점들을 모두 합친 수보다 총기 판매점의 수가 더 많은 나라로 불리기도 한다. 호신용으로 구매한다지만 상대적으로 그만큼 위험 노출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더 심각한 것은 어른들이 아니라 학교에서 학생들에 의한 총기 난사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는 점이다. 2007년 버지니아 공대생이면서 재미 한국인인 조승희 사건은 아직도 생생하다. 무려 33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민병대와 관련된 미국의 역사, 이미 총기류가 거대 산업으로 성장한 미국의 구조를 생각해보면 총기 규제는 참으로 멀어만 보인다.

 

출처:영화『엘리펀트』
 

시각을 달리하여 제작된 영화를 소개한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다. 이 영화는 ‘이러이러하므로 총기 규제를 해야 한다, 개인 이기주의의 산물이다, 학생들과 교사와의 지속적인 상담이 필수다.’……라든지 결과를 놓고 원인 분석을 하여 책임을 말하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의 눈, 카메라는 학생들의 동선을 따라다닐 뿐이며 주변 사람들에게 조심하라는 사인을 주지 않는다. 카메라는 현상을 관객들에게 보여줄 뿐, 등장인물 누구도 학생 총기 사건에 대한 비판이나 책임을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감독은 한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 순간, 그 시간에 있었던 일, 사람들의 모습을. 예를 들면 사진을 찍어주는 일라이가 초점이 되었다면 다음 장면에서는 피사체인 존을 중심으로, 또 급히 뛰어가는 미셸을 중심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모두 순간 현상에 대한 재조명이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엘리펀트』는 1994년 4월 미국 컬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만든 영화로 2명의 학생이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사살하고 자살한 사건이었다. 비교적 짧은 81분의 러닝 타임 중 후반 16분가량이 급우들에게 따돌림을 받아온 알렉스와 친구 에릭의 무차별 난사 장면이다.

 

출처:영화『엘리펀트』
 

화면 가로의 비율이 기존 스크린보다 훨씬 짧은 형식을 취한다. 총을 든 알렉스와 에릭 외에 스크린에 보이는 학생들은 특별한 관련 스토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 평범하였고 평화롭기까지 한 고등학교의 하루 어느 시간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에 따라서 지루한 영화로 느껴질 수도 있는 포인트다.

존(존 로빈슨):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대신해 운전하고 학교엔 지각하여 교장 선생님께 걸린
일라이(일라이어스 매코넬): 사진찍기가 취미인
네이선&캐리: 럭비선수와 그의 여자 친구인
미셸: 제일 먼저 알렉스에게 희생되는
아카디아: 동성애, 이성애 토론클럽에 참석한
브리타니와 조던, 니콜: 치어리더로서 다이어트를 위해 식후 화장실에서 토해버리곤 하는
알렉스(알렉스 프로스트)&에릭(에릭 듀렌):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곤 했던 사건의 주인공들

등장하는 학생들 간의 연관성은 학교 건물 내에서 보이는 것이 전부다. 그들은 여느 학생들처럼 공차기하고, 지나가는 사람을 사진 찍어준다.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고, 다이어트를 위해 화장실에서 먹을 것을 토해내고 하는 등 학교 현장에서 상상 가능한 장면들이다. 마치 폭풍전야를 암시하듯 이러한 장면들을 베토벤의 피아노곡 월광을 배경으로 하여 담담하게 카메라가 따라다닌다. 건물 배치 조사를 비롯한 사전 준비를 마친 알렉스는 인터넷으로 무기를 구매하였고 에릭과 함께 중무장을 하고 학교로 들어간다. 그리고 하는 말이 ‘신나게 놀아보자’이다. 마치 게임을 하듯이 난사를 즐기는 그들의 뒷모습을 역시 카메라가 쫓아다닌다.


알렉스와 에릭의 총질을 피해 좁은 냉동실에 숨은 네이선과 캐리를 향해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이 총부리를 겨눈 알렉스. 코앞의 친구들을 향해 누구부터 쏠까를 노래 부르듯이 흥얼거리는 알렉스의 총을 겨눈 모습이 섬찟하다. 감독은 죽은 사람들의 사정이나 모습, 가족들의 울부짖음 등에 있어서 냉정하다. 알렉스의 모습도 흥분돼있거나 광적인 모습이 아니다. 아무 말 없이 같이 행동했던 에릭까지 발사하여 죽인다. 화면은 그 순간조차도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잠깐 에릭이 뒤로 넘어지는 장면만을 보여준다. 총소리가 산발적으로 들리며 총 맞은 사람들은 죽은 모습, 엎드려 있다. 마치 모니터 속의 게임 장면 같다. 게임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구형 TV 화면 사이즈와 비슷한 스크린의 가로세로 비율이 새롭게 보인다. 처참하고 잔인한 실제 장면보다는 게임 장면으로 혼동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출처:영화『엘리펀트』
 

다소 실험적이기까지 한 이 영화는 2003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감독상을 수상한다.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열반경에 나온다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표현에서 코끼리라는 단어가 나온다. 부분에 대한 이해가 전체에 대한 이해로 비약하게 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부분 학생들의 일상을 보여 줄뿐 그 외는 친절한 스토리텔링이 없다. 또 다른 코끼리에 대한 비유로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라는 표현이 있다. 이때의 코끼리는 흔히 하는 표현으로 ‘불편한 진실’로 해석하고 싶다. 이미 너무 커진 코끼리는 방에서 나올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작품으로 『엘리펀트』외에 실존 인물이었던 동성애 정치인, 인권운동가 ‘하비 밀크’의 살해 전 8년간을 그린 영화 ‘밀크(2008)’와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던 ‘굿 윌 헌팅(1998, 2016 재개봉)’을 소개한다. 영화 ‘밀크’에서는 게이들의 인권을 치열하게 다뤘으며, ‘굿 윌 헌팅’에서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상처로 간직한 천재 ‘윌 헌팅’과 멘토와의 특별한 우정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인디 영화로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딘 감독의 작품에서는 두 영화에서도 다뤄졌듯이 소외된 젊은 층에 대한 재조명이 주를 이룬다. 또 하나 자신이 동성애자이기도 하지만 동성애 관련 영화도 만날 수 있다.
영화 『엘리펀트』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라기보다는 관객들에게 질문하는 영화다. 신선하지 못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해묵었으며 정답이 이미 내재된 질문이기도 하다. 즉, 이타심이 결여된 사회에 대한 고발로 나의 문제도, 타인의 문제도 그저 바라볼 뿐. 해결보다는 지루한 ‘침묵’이라는 수단으로 관객에게 묻고 있다.

세상의 ‘침묵’에게 묻는다.
비뚤어진 알렉스의 인성?, 학교와 사회의 무관심?, 총기 구매가 자유로운 미국?, 개인주의 만연?, 무관심?, 소통 부재? 진전이 없는 침묵뿐이다. 원인과 책임, 가치판단은 오롯이 관객에게 되돌아와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스토리 어디에서도 감독은 판단하지 않는다.

한인경/시인·인천in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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