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자체에 의미를 두면
상태바
시도 자체에 의미를 두면
  • 장재영
  • 승인 2018.03.28 0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8) 버킷리스트 실현기 - 장재연 / 공감미술치료센터 기획팀장


2017년 6월경, ‘비긴어게인’이라는 제목의 예능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였다. 대한민국의 이름난 뮤지션들이 해외에서 버스킹을 한다는 참신한 컨셉의 이 예능 프로는 금새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고 해외에서 길거리 공연을 한다는 것은 악기연주를 하는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로 떠올랐다.

마침 7월말 공연을 앞두고 있던 우리는 연습을 마치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 닭다리를 한입 배어물던 찰나, 
친구 한명이 운을 띄웠다.
“하.. 해외에서 버스킹 한번 하면 쥑일텐데... 이번에 비긴어게인 안봤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감상하는거.. 우리도 한번 하까?? 하하..”
그리고, 그저 지나가는 말로 흘렸던 그 희망과 바램들은 갑자기 현실로 다가왔다.

평소 각자의 직장생활로 시간대와 스케쥴 맞추는게 쉽지 않았던 세명의 멤버가 우연히 일정이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이런 기회는 정말 흔치않겠다 싶었던 한사람이 먼저 비행기표를 끊었고 눈치만 보던 나머지 두 사람은 얼떨결에 함께하게 되었다.

막상, 비행기표를 끊게되니 말로만 나누던 것들이 순식간에 현실이 되어 또 다른 준비거리들을 떠올리게했다. 하지만,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니 그런 세부적인 것들은 큰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하루라도 더 시간을 내기위해 출발 당일에도 근무를 해야만 했던 우리는 퇴근하자마자 설레는 마음을 이끌고 태국행 밤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음날 새벽같이 도착한 우리는 일단 시원하게 발마사지를 받고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정말 우려했던 문제는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방콕 현지는 한국과는 다르게 장비를 렌탈해주는 악기상이 매우 드물었고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갔던 가격보다 너무 고가의 렌탈비를 제시하여 애초에 계획과는 너무 다른 예산으로 장비를 빌려야하는 상황이 닥쳤던 것이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보고 호텔 로비의 전화를 빌려 여기저기 문의를 해봐도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지않자 더 이상 방법이 없겠다 싶었던 우리는 악기상가가 많이 있다는 왓프라깨우(왕궁) 근처의 골목골목을 뒤지며 직접 '쇼부'를 치기 시작하였다.

왕궁 인근의 골목에는 제법 많은 악기상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렌탈이 가능하다고 하는 곳은 한두 군데뿐이었고 그나마 있는 곳들도 거의 장비를 구입하는 정도의 비용을 감당해야만 했다. 차라리 렌탈보다 저렴하게 장비를 구입하는게 좋겠다고 전략을 바꾼 우리는 결국, 저렴한 장비를 아름아름 사모아 어느정도 생각했던 비용으로 맞출 수 있었다. 그렇게 반나절 이상의 시간이 지나갔고, 하루를 거의 다 써버렸지만 뭔가 해냈다는 느낌으로 뿌듯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다음날은 함께 방을 쓰던 친구의 기타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친구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기타연습을 하며 샤워를 하면서도 노래를 연습하고 옷을 갈아입을 때도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어느새 그 노래 소리를 따라부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다 우리는 슬슬 긴장이 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전까지 준비는 해왔을지언정 현실이라 느껴지지 않던 일들이 코앞에 다가왔고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버스킹 여행의 시작이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장비를 들고 나온 우리는 뜨거운 햇살이 조금 내려앉기 시작한 오후 4시 경 숙소 옆의 작은 공원에서 첫 공연을 시도하였다. 그곳은 전날 장비를 맞추고 적절한 장소를 찾아보다가 연습하는 느낌으로 시도해보기 괜찮겠다고 낙점되었던 곳이었으며 장비를 풀어 세팅을 하는 우리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긴장된 순간, 첫 곡을 시작하며 후렴구에서 분위기가 한창 고조되어 가는 찰나, 공원 관리인이 달려와서 공연을 중지시켰다. 이유인 즉슨, 미리 신고하지 않은 공공장소에서의 공연은 허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계획했던 장소에서 공연을 못 하게된 것이 무척 당황스러웠고 아쉬웠지만 어찌됐건 시작을 하는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에 공연에 지장을 주지 않는 공원 울타리 바깥의 후미진 길가로 옮겨 다시 공연을 시작하였다.

사실, 그곳은 차가 많이 다니지만 사람은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쫒겨난 것에 대한 실망감이 올라왔었지만 그냥 우리끼리 신나게 연주하기로 마음을 먹고 주구장창 연주를 했다. 그래도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고 혼자 여행 왔다는 한국인 관광객분이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응원해주는 바람에 뭔가 큰 힘을 얻고 두 번째 장소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장소문제는 매번 따라다녔다. 어딜가도 공연장소를 찾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었고 생각보다 사람들이 우리의 음악에 호응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으며 우려했던 문제들은 번번히 터져나왔다.
하지만, 그저 해외에서 버스킹을 한다는 것 자체 의미를 두었던 우리는 그 모든 과정들이 즐거웠고 세 번째, 네 번째의 공연을 할 때쯤에는 우리는 마치 현지인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곳의 사람들이, 길거리가, 분위기가 편안해지고 우리의 모습도 길거리에서 사 입은 태국 스타일의 옷들로 매우 현지인스러운 풍모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으로의 귀환을 앞둔 마지막 밤, 우리는 나름 대박을 터뜨렸다. 방콕 현지에 거주하던 한인의 소개로 야시장 입구 앞에서 공연을 하게된 것이었다.
그곳에는 정말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으며 입구에서 이동하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수는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조금은 젊은 태국인 연령대일수록 더욱 환호하고 심지어는 다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우리가 준비했던 노래들은 한창 세계음원차트 순위에 올라있는 K팝 음악들이었다. 공연 곡 리스트를 뽑을 당시 해외에서 버스킹을 하는데 우리나라의 노래를 꼭 해야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준비한 곡들이었고 우리나라의 K팝이 얼마나 사랑받는 음악인지 그날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어느 곳에서도 받지 못했던 환호를 한꺼번에 받으면서 준비했던 음악을 마음껏 연주하고 앵콜 공연까지 마칠 수 있었다.

 


 

공연을 마치고 좋은 장소를 알려주신 한인 분의 응원에 힘입어 신나게 공연했던 것에 감사드리자, 그분은 되려 우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겼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나름 도전을 쫒아 이곳에 왔지만 일이 생각보다 잘 안 풀릴 때가 많고 타국으로 건너와 생활을 하는 것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어 고민 중이었는데, 약간은 무모해보이기도 했고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신나게 연주하면서 즐기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감동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마지막 공연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버스킹을 준비하는 거의 모든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악기를 준비하는 과정부터 공연 도중 쫒겨나고 후미진 길가에서 연주하면서 사람들의 반응마저 기대했던 반응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음악을 들어주는 것에, 혹은 모든 일정이 완벽하게 진행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많은 어려움 속에서 실망하고 좌절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의미를 두었던 포인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닌 시도 자체에 의미를 두었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겪는 모든 과정 자체가 더욱 생생하고 값지게 다가왔던 것 같다.

이렇게, 일년을 꿈꿔왔던 버킷리스트는 빨간 동그라미가 쳐지면서 일단락되었지만 우여곡절을 통해 경험한 많은 배움들은 내 속에 깊이 남아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다짐하기로 했다.

'지금 조급해하고 있다면, 어느 곳에 포인트를 두었는지 꼭 생각해보기'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