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에 간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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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에 간 아이
  • 장현정
  • 승인 2018.04.25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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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다섯살의 돌돌이 이야기 - 장현정 / 공감미술치료센터장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다. 그동안 다니던 가정 어린이집을 더 이상 다닐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작년 하반기 유치원 전쟁을 치렀다. 국공립 유치원 접수를 하고 민간 유치원들 설명회를 가고 개별 상담을 가고 번호표를 뽑았다. 유치원들을 다니면서 원마다 이렇게 분위기가 다를 수 있구나, 이렇게 많은 유아 프로그램들이 있었구나 하는 사실에 놀라웠다.
 
작년 유치원 전쟁을 치르고 난 친구에게 수고했다는 한마디를 했었는데, 이 친구가 “니가 알아주는구나. 정말 고생 엄청 했어!!”라고 대답했던 모습이 생각났다. 정말 많이 고민하고 소소한 것 하나하나가 마음이 쓰이기도 하고 주변 엄마들, 남편과 몇 날 저녁마다 토론을 하기도 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다니느라 조금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발품을 판 덕분에 유치원 생활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감을 잡게 되었다.
 
유치원을 선택할 때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첫째, 유치원의 경영 철학과 프로그램 구성에 아이들의 ‘놀이’에 대한 고려가 있는지, 둘째, 매월 납부해야 하는 원비가 우리 가정의 경제적 상황에 적절한지, 셋째, 우리 부부의 퇴근시간과 등하원시간이 맞는지 였다. 나는 유치원 생활 3년 동안 아이가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며 마음껏 뛰어놀기를 바랬기 때문에 거리가 조금 있는 소규모의 유치원을 선택했다. 결정적으로, 원내 놀이터와 텃밭이 있고 매주 견학과 숲놀이를 다닌다는 설명에 마음을 빼앗겼다. 설명회 때 아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아들도 꽤 마음에 들어 했다.
 
그렇게 3월이 되었다. 첫날, 아이는 차에 오르면서도 마지막까지 내 손을 놓지 않으려고 꼭 잡은 채 울며불며 등원 차량에 올라탔다. 힘을 주어 꽉 잡고 있는 아들의 손을 떼어 내어 차에 태우고 하루 종일 마음이 엉망이었다. 그날 첫 하원차량을 기다리며 초조해진 마음에 20분이나 일찍 내려가 기다리며 별별 생각을 다 했다. 아침부터 서럽게 울던 아이가 생각나 눈물이 핑 돌았다. 차량에서 내리는 아이를 웃으며 반기려고 했는데 울컥해버려 눈을 깜빡이며 울음을 삼켰다. 3월 한달 내내 아이도 나도 그렇게 적응 기간을 가졌다.
 
바쁜 엄마아빠를 둔 탓에 아이는 아침 8시 40분에 차를 타고 저녁 6시 10분에 차를 내리는 일과를 보내게 되었다. 저녁에 집에 올 때 파김치가 되어 도착하는 날들이 꽤 많았다. 하원 차량에서 깊게 잠들어 두 시간을 내리 자기도 했다. 식사준비를 하는 동안 짜증을 부리거나 놀자고 떼를 쓰기도 했다. 평일 저녁마다 만나 놀던 단짝 친구들을 만나지 않겠다고 엄마랑 둘이 집에 있고 싶다고 했다. 나름 원 생활이 고단한 모양이었다.
 
유치원 첫 상담을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법 잘 적응하고 있었다. 또래보다 체격도 작고 마음도 여려 잘 우는 편이라 걱정했는데 유치원에서는 어른스러운 모습도 보인다고 했다. 정리정돈도 잘하고 밥도 잘 먹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린다고 했다. 오히려 자그마한 체구 덕분에 선생님도 형님반 아이들도 귀여워한다고 했다. 가장 걱정했던 낯가림도 오히려 별로 없었다고 했다. 내가 잘 모르고 있던 아이의 모습에 대견스러웠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3월 중순이 되자 하루에 두 번씩 바지에 쉬야를 해서 담임 선생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 아이가 발달하며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가 ‘배변’이었다. 소변은 세 돌을 넘겨 천천히 가린 편이었고 방광이 작은지 화장실도 자주 가는 편이었다. 무척 속상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배변은 아이가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이미 배변에 대한 인식이 명확하게 있었고 부끄러움이나 창피함 같은 감정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쉬야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하던 아이를 몰아붙이는 것이 되었다.
 
아이에게 말 없이 열심히 빨래를 해서 여벌옷을 보냈다. 세탁기가 매일매일 돌아갔다. 혹여나 선생님들이 불편하고 번거롭게 생각하실까봐, 열 댓명의 아이들 중 우리 아이 바지 갈아입히느라 고생스러우실까봐 맛있는 커피도 한 아름씩 사갔다. 그렇게 몇 주가 흐르고 아이는 다시 소변을 잘 가리기 시작했다. 기다림은 진정 미덕이었다.
 
어느 날은 다녀와서 말했다.
“선생님은 참 예쁘신데 가끔 화를 내더라. 근데 나한테는 화를 안내고 칭찬해주셨어”
 
이야기를 듣고 가만 생각해보니 아이가 늘 칭찬만 들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칭찬을 들을 때도 있지만 야단을 치실 때도 있을 거야. 그러면서 배우는 거야. 돌돌이를 사랑하니까 그러시는 거야”
 
그러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어른들이 아이를 혼내고 야단치는 것이 늘 사랑해서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또한 때론 부당하고 과도하게 혼을 낼 때가 있지 않은가. 아이가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돌이가 혼이 나거나 야단을 맞거나 속상하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엄마에게 이야기 해줘. 엄마랑 같이 생각해보자, 알았지? 엄마에게 서운한 일이 있을 때도 이야기 해줘”
 
잘 이야기 했는지 모르겠지만 계속 고민하고 있다. 함께 있는 시간이 적은 만큼 아이와 더 충분히 이야기하고, 저녁시간과 주말에는 아이에게 더 집중하려고 한다. 가능한 아침에 아이를 닦달하지 않고 보내려고 고군분투 하고 있다. 남들 다 가는 유치원 하나를 보내는데 이렇게 긴 두 달을 보냈다. 크면 큰대로, 어리면 어린대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랑하며 생각하며 반성하며 그저 하루하루 노력할 뿐이다.


 
사진 출처 :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974783&memberNo=1035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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