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과 대립 속에 간신히 유지되는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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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과 대립 속에 간신히 유지되는 질서
  • 최일화
  • 승인 2018.05.04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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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단] 모순 / 박경리


                 모순
 
                                         박경리
 
 
물은 어떠한 불도 다 꺼 버리고
불은 어떠한 물도 다 말려 버린다
절대적 이 상극의 틈새에서
절대적인 이 상극으로 말미암아
생명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절묘한 질서인가
 
초나라 무기상이 말하기를
나의 창은 어떠한 방패도 뚫는다
다시 말하기를
나의 방패는 어떠한 창도 막는다
 
한 사람이 묻기를
당신의 창이 당신의 방패를 찌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무기상의 대답은 없었다고 했다
 
세상에는 결론 없다
우주 그 어디에서도 결론은 없다
결론은 삼라만상의 끝을 의미하고
만물은 상극의 긴장 속에서 존재한다
 
어리석은 지식인들이
곧잘 논쟁에 끌고 나오는 모순
방어와 공격을 겸한 용어이지만
그 자신이 모순적 존재인 것을
알지 못한다

 
<감상>
 
토지의 작가 박경리는 위대한 문학 작품을 남긴 소설가다. 선생은 129편의 시도 써서 두 권의 시집에 남겼다. 나는 선생의 시집 두 권을 애지중지 간직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 책장을 정리하며 모든 서적을 없앨 때도 선생의 시집 두 권 『못 떠나는 배』 와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오래 내 서재에 남아 있을 것이다. 선생의 시에는 현란한 수사나 기교가 없다. 삶의 본질, 삶의 오랜 연륜 속에서 체험으로 깨달은 절실한 것을 소박한 언어 속에 담아냈다. 세상엔 시인도 많고 소설가도 많다. 그러나 취향 나름이지만 나는 잔잔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인생의 본질 그 속성을 들려주는 시에 마음이 끌린다. 박경리 선생도 그런 분 중의 하나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는 점점 더 모순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세상이 모순덩어리 같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인 일에서부터 가정과 일터, 사회가 모순 속에 얽혀 있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배척을 당하기도 하고 올바르다고 믿는 것이 거부당하는 예도 무수히 많다. 모순에 긴장하고 분노하며 살다가 나이 들어 한 결론에 도달했다. 부딪치는 모순에 분노하고 괴로워하기보다 부드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다는 것이다.

“모순이 없어진다는 것은 삼라만상의 끝”이라고 시인은 단언하고 있다. 모순은 분명한 진리이며 인간사회의 모습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랑과 정의를 추구하되 모순 앞에서 겸허하고 너그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우리는 세상은 명료하고 정의와 진리가 세상을 움직인다는 확신을 가졌었다. 그러나 수없이 좌절하고 분노하고 갈등을 겪고 인생 후반기에 들어서서 비로소 세상이 모순으로 가득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정의와 진리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모순과 대립 속에 세상의 질서가 간신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필귀정이란 말도 있지만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시간이 흐른 뒤에 겨우 증명되는 게 보통이다. 모순 속에 감춰져 있는 삶의 진실된 모습을 찾아내고 지혜를 모아 평화와 질서를 유지해 가야한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참으로 길고 긴 대립과 갈등과 시행착오 끝에 가장 가능성 높은 화해가 시도되고 있다. 남북의 백성들이 수없이 외쳐도 화해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수없이 많은 모순들이 서로 충돌하여 방향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모순의 집합체가 이제 흘러가야 할 방향을 찾을 때가 된 것 같다.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대단히 복잡한 요인에 의해서 화해의 물꼬를 틀 수 밖에 없는 시점이 도래하였다. 우리는 이날을 기점으로 남북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 능동적으로 세계정세에 대처하여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의 신기원이 열릴 수 있도록 응원하며 지켜볼 것이다.

시인 최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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