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개인적인 여정 personal jour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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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개인적인 여정 personal journey”
  • 한인경
  • 승인 2018.05.17 08:5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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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시 주목하는 영화 『일급 살인 Murder In The First』

<한인경의 시네공간>은 2016년 상영된 독립영화들을, 2017년부터는 ‘다시 주목하는 영화’라는 테마로 평론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이미지 너머로 발견하는 한 권의 철학서와 같다. 우리는 그 속에서 힐링하고 비상하며 철학적 사유로 삶의 의미를 읽는다.


『일급 살인 Murder In The First』

개  봉 : 1995. 03. 18. 개봉(122분/미국)
감  독 : 마크 로코
출  연 : 케빈 베이컨, 크리스찬 슬레이터, 게리 올드만
장  르 : 드라마, 범죄
등  급 : 15세 관람가 



출처:영화『일급 살인』


법정 드라마의 결말은 대개 ‘정의는 살아있다, 진실은 승리한다’로 억울한 피의자 측은 치밀한 증거 수집과 변론으로 조각났던 퍼즐을 맞춰간다. 어쩌면 법정 드라마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법정 드라마가 실화에 근거를 두고 제작된다. 실화가 주는 공감에 감독의 해석을 거친 영화적 재미까지 부가되어 특별한 소통을 불러일으킨다. 실화를 소재로 만들어진 법정 드라마로는 한국 영화로는 <부러진 화살>, <재심>, 외화로는 <필라델피아>, <어 퓨 굿 맨>, <나는 부정한다> 등 볼만한 작품들을 뽑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실화에 기초한 영화 『일급 살인』, 오늘은 28세 청년 피의자에게 좀 더 기울어져 보려 한다.

배고파하는 여동생을 위해 우체국에서 5달러를 훔친 대가로 전 인생이 송두리째 뽑힌 청년이 있다. 어이없는 죄목 ‘세금 횡령죄’로 세계적인 갱단 두목 정도의 중범죄자들이 수감된다는 알카트레즈 교도소에서, 그것도 ‘지하동굴’이라 불릴 정도로 깊고, 겨우 한 평 반 남짓한 어두운 독방에서 갖은 폭력, 고문, 무려 3년이란 기간 등을 버텨낸 헨리 영(케빈 베이컨)이란 청년이 주인공이다.

알카트레즈 Alcatraz
‘알카트레즈 감옥은 1934년 연방교도소로 문을 열었다. 갱들이 날뛰던 그 시절 선전용으로 문을 연 것이다. 알카트레즈는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비싼 감옥이었다. 알 카포네, 일명 머쉰 건machine gun 켈리 같은 흉악범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 교도소에는 빈 방이 많았다. 운영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딴 감옥의 죄수들도 수감시켰다. 아주 사소한 경범 죄수인 헨리 영 같은 자들도……’ 영화 『일급 살인』오프닝에서

영화 <더 록>(2016 재개봉)의 배경이기도 했던, 샌프란시스코 연안의 작은 바위섬.
1930년대 미국은 대공황으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부정부패의 만연과 피폐해진 사회 정의,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알카트레즈가 인권의 사각지대였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악명 높던 이 교도소는 1963년 완전히 폐쇄되어 지금은 유람선이 드나드는 관광명소로 탈바꿈하였다.



출처:영화『일급 살인』


정부 지침으론 독방 감금은 19일 이상은 못 하게 돼 있다. 글렌 부소장(게리 올드만)의 손아귀에 있는 알카트레즈에서 헨리 영은 3년간 끔찍한 독방생활을 발가벗긴 채로 겪게 된다. 폭행, 고문, 어둠, 변기, 하수구도 없는 차가운 돌벽, 자신의 배설물까지 맨몸으로 겪어야 했던 생활. 인간으로 견딜 수 없는 곳이었다. 신체는 기형이 되어 일그러졌고 심지어 정신적 환각 상태까지 오게 된다. 3년을 견뎌 1941년 독방을 나왔지만 깊어진 정신 이상 증세로 순식간에 자신의 탈출 계획을 밀고한 맥케인에게 달려가 숟가락으로 살해하며 일급살인 혐의로 기소된다. 원숭이가 변호를 맡아도 유죄일 것이고 가스실로 보내질 거라는 이 사건은 24세 국선 변호사에게 맡겨진다.

첫 재판, 국선변호사 제임스 스탬필(크리스찬 슬레이터), 당연히 사형으로 생각, 모든 것을 내려놓은 헨리 영, 이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우정과 신뢰에 법의 정의가 내려지기에 앞서 이미 관객은 몰입하게 된다.

케빈 베이컨(1958)
그의 연기력을 말할 때 영화『일급 살인』의 ‘헨리 영’을 빼놓을 수 없다. 전라(全羅)의 연기 투혼과 내밀한 심리 변화까지 30대 케빈 베이컨은 이미 스타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 영화로 입지를 확고히 다졌고 이제는 중견 연기파 배우로 우뚝 서 있다. 영화 『일급 살인』발표 다음 해인 1996년 <슬리퍼스>에서는 네 명의 소년을 정신적 황무지 상태로 만든 교도관 ‘녹스’로, <미스틱 리버>(2003)에서는 친구 딸의 살해 범인을 쫓는 형사로 변신한다. 두 작품 모두 영화로서도 성공하였으며 케빈의 개성 있는 연기도 한 몫한 영화다. 오래 전 영화지만 전혀 퇴색되지 않았고 못 보신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출처:영화『일급 살인』


악인의 이중적 도덕

알카트레즈 섬에는 죄수 외에도 글렌 부소장을 포함한 110명의 간수와 그들의 가족이 살고 있다. 교도소 건물 밖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아이들은 마냥 즐겁다. 글렌은 퇴근 후엔 보통의 자상한 아빠고 남편이었다. 좁디좁고 캄캄한 독방에서 흰 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온몸을 이용해서 벌거벗은 남자에게 주먹질을 해대고 있다. 차마 듣지 못할 정도의 신체에 가해지는 소리와 외마디 비명만 들린다. 철문 밖에는 간수가 무표정으로 서 있다. 한참을 흠씬 맞은 헨리의 모습은 어디가 눈이고 입인지 피범벅이 되어 처참하기 그지없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밖으로 나가는 글렌. 그는 ‘행동과 반응’이라는 자신만의 논리를 펼친다. 모든 행동엔 뚜렷한 반응이 있는데 네(헨리 영)가 탈옥한 것은 ‘행동’이고 내가 실직하는 것은 그 ‘반응’이라는 것이다. 즉, 헨리의 탈출이 성공했다면 자신이 직장을 잃었을 것이고 그 결과 가족을 돌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는 것. 매달려 있는 헨리의 발목을 면도칼로 그어 다시는 탈출을 못 하게 만들어 버린다. 사람의 탈을 쓴 악마가 따로 없다. 글렌의 가족 사랑과 헨리 영에 가하는 무자비함. 이 둘의 공통분모는 이중적 도덕이 받쳐주었고 교만한 잣대는 악을 활개 치게 했다. 글렌 역은 올해 2018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게리 올드만이 열연했다.



출처:영화『일급 살인』


“악은 선이라는 명분을 숙주 삼아서만 활동 가능하다는 점에서 ‘비-독립적 활동체’인 것이다. 인간의 악행은 그리하여 늘 악한 인간이 찾아낸 선의 명분 없이는 절대 세계에 나타날 수 없다. 악인의 이중적 도덕 없이는 악은 절대로 세계에 현실화될 수 없다. 엄밀히 말해 악인은 도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도덕이 이중적이기에 악을 행할 수 있다.” (‘낱말의 우주’, 우석영)

 
승리 : 경기나 싸움에서 성공하는 것

알카트레즈 안에서의 헨리는 불안하고 두려웠고 미래가 없었다. 비틀린 3년 만에 눈앞에 보통의 인간이 나타났다. 비슷한 연령대인 변호사 제임스 스탬필(크리스찬 슬레이터). 사형을 각오한 헨리는 유한의 시간이지만 변호사와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친구처럼 만나고 싶어 한다. 최악의 수감생활은 헨리를 정신적인 혼수상태로 만들었고 독방을 나오자마자 살인을 저질렀으며, 그는 살인 무기였고 그 무기를 쥐고 살인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는 변론을 펼친다. 즉, 평범한 청년이 알카트레즈에 와서 반미치광이 살인자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알카트레즈, 소장, 부소장을 공범 살인자로 고발한다.
헨리는 당연히 유죄로 판결 날 것으로 생각했으나 재판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흘러가자 두려움을 갖게 된다. ‘피의자의 의지에 반反한 살인일 경우는 최하 3년의 형기를 알카트레즈에서 마쳐야 하며, 유죄일 경우는 종신형’이라는 낭독이 법정에 울려 퍼진다. 헨리는 다시 감옥으로 가느니 가스실을 택하겠다고 절규하지만, 상처 깊게 팬 얼굴에서 아픈 눈물을 흘리며 최후의 선택을 한다.

인생, 삶을 여정으로 생각하는 시각은 낯설지 않다. 승리를 개인적인 여정으로 정의한 잭 웰치의 글을 인용해 본다.
“승리를 ‘개인적인 여정personal journey’이라 정의하고 싶다. 이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는 개인으로서의 자신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진보’와 ‘성취’ 그리고 ‘자신에게 의미하는바’이다.” (‘승자의 조건’ 中)



출처:영화『일급 살인』


등산할 때 정상 정복만이 목표인 사람도 있고, 산세의 변화에 오감을 열고 등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의 여정인 인생길, 효율이란 잣대로 측정하기엔 무리가 있다. 효율적인 삶이란 존재하는가. 가스실이든 글렌이 있는 알카트레즈로 가게 되든 어차피 죽을 목숨 빨리 죽어버리자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는 마지막 결정의 순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온전히 믿고 스스로에게 승리의 공간을 부여한다. 이 공간은 그 어떤 두려움도 자신을 파괴하지 못할 것이라는,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결연한 모습은 ‘승리’의 선택에 대한 상징성을 보여준다. 감독은 과거 사건의 재현을 통해 사회를 고발하고 정의를 회복한다는 스토리보다는 두려움 벗은 한 사람의 내면의 승리에 줌-인 하였다. 그보다 더 오래 산 사람보다 더 오래 산 그가 남긴 승리의 의미이다.

숨 막혔던 일련의 시퀀스 Sequence

 “두렵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헨리의 위 발언 씬scene부터 자신은 살인 무기였다는 발언까지 최고의 긴장이 스크린을 휘몰아친다. 이 영화의 절정이었고 배우 케빈 베이컨은 자신의 연기에 화룡점정을 하고 있다.

배심원들은 일급 살인이 아닌 살의 없는 살인이었음을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린다.

알카트레즈에서 글렌과 마주하였을 때 헨리 영은 어떤 두려움도 없었다. 자신을 때리든지 독방에 가두든지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오히려 똑바로 응시하면서 글렌의 ‘행동과 반응’에서 자신이 승리했다고 당당히 말한다. 헨리는 결국 감옥에서 주검으로 발견됐고 바닥에는 ‘Victory'라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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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이 2019-04-16 19:25:16
한 사람의 인권을 되찾기 위한 여정을 아주 잘 그렸던 영화였던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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