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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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
  • 김성미경
  • 승인 2018.06.19 0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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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김성미경/ 인천여성의전화 대표

“말도 안돼! 그런 사람이 어디있어?”
여자 화장실에 설치되었을 지도 모르는 몰래 카메라(불법영상촬영) 공포에 덧 발라진 퍼티(빠데) 사진을 보고 남자 파트너가 보인 반응이었다. 내가 보여준 사진 한 장 때문이었다.
지난 6월 15일, 굴포천역 여자 화장실에서 뜻하지 않은 작은 소동과 마주하게 되었다. 청소하시는 분들이 화장실 안쪽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당황해 하셔서 확인해 보니 문 안쪽 나사마다 하얀색 퍼티가 발라져 있었다. 이게 뭔지, 왜 붙어 있는지 알 수 없었던 그 분들은 누가 장난 해 놓은 것인 줄 알고 열심히 떼고 계셨다.



 [6월15일 굴포천역사 내 여자화장실 안쪽 나사구멍에 발라진 퍼티]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몰래카메라’라는 재미있는 게임같은 이름이 붙여진 '불법영상촬영' 때문에 여자 화장실에서는 떼고 붙이고, 뚫고 막고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조용한 싸움이 진행 중이다. 그 저항의 현장을 직접 만나보니 일상에서 늘 공포와 마주해야 하는 여성들의 현실에 분노가 일어나면서도 동시에 이제 더 이상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여성들의 실천에 통쾌하기도 했다.

퍼티가 발려진 현장 사진을 보고도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그런 사람(여자화장실을 도촬하는 변태)가 어디에 있냐고 반문하는 사람은 무수히 뚫린 구멍들을 본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생물학적 남성이다. 한편으로 적어도 한 남자는 여자화장실의 불법 도촬된 영상들을 접해 보지 않았다고 생각이 드니 위로를 삼고 싶다(믿을 수는 없으나). 상식적으로 몰래카메라는 이미 찍히는 대상이 알 수 없도록 불법으로 진행 되는 것인데 이러한 범죄의 도구가 진화를 거듭하며 누구에게 왜 버젓이 팔려나가는지도 궁금하다.  

사실 화장실에서 근무하시는 아주머니들도 몰랐던 사실이니까 모두가 다 아는 사건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모른다고, 본적이 없다고 존재하는 진실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도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을 만나게 되면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이미 일상의 공포였으며 이번 홍대 몰카사건으로 인해 경찰의 수사 또한 불평등하게 진행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6월 9일 혜화역에서 4만명이 모였던 불법촬영 편파수사 항의 시위에도 참여했었다. 최근에야 문득 내가 사용하던 공중화장실에 뚫린 그 무수한 구멍들이 생각났다. 유독 여자화장실만 그렇다는... 시설관리공단의 설명은 생리대 분리수거함, 비상벨 등 여성전용화장실에만 설치하는 기구들 때문에 옮겨 다느라 생긴 것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왜 말끔하게 뒷정리를 하지 않았으며 포르노사이트에서 돌아다니는 무수한 여자화장실 장면들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불법영상촬영 사건들에 대해서 여성들은 공포와 분노에 매우 공감했으나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성들의 근거없는 두려움으로, 예민함으로 치부하고 별것 아닌 것으로 무시하거나 심드렁한 반응을 보인다. 공감능력의 차이이기도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여성과 남성 간 삶의 경험 차이이다. 남성들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 자신의 몸이 포르노사이트에 돌아다닐 거라는 상상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그것이 공포일 경우까지는 더더군다나 없다. 마치 밤길을 무서워 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하긴 남성들에게 몰카란 권력이나 돈을 획득하기 위해 협박용으로 사용되는 도구였다. 예를 들자면 삼성의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내부자들에 나오는 남성들의 나체 술자리 동영상 등이 그것이다. 이렇게 남성들의 몰카 경험치란 부패한 권력층에게 일어나는 특별한 정치적인 사건인 반면 여성들의 경험치는 일상에 기반한다. 여성의 몸은 쾌락을 제공하는 자연재(自然材)이며 그것을 통해서 공짜로 돈벌이가 되는 수단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범죄가 바로 몰카인 것이다. 그런데 그 일상은 여성에게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기반해 있으니 개인적인 것이 바로 정치적인 것임에도 일탈적 일부 변태에 의한 행위라고 의미축소를 당한다. 
 
지난 6.13지방선거 결과 우리는 끔찍한 사진 한 장과 마주 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17개 광역시도 자치단체장에 선출된 여성은 0% 였다. 심지어 인천은 기초단체장에도 0%, 시의회에도 선출된 여성이 없었다. 시의회에 비례대표로 단 3명만이 진출했을 뿐이다. 선거결과가 보여주는 현재가 걱정인 이유는 96.5-100%의 남성으로 구성된 기초의회에서 과연 여자 화장실의 십자나사에 숨겨져 있는 불법영상 촬영도구에 대해, 일상에서 자신의 몸이 익명의 남성들에게 딸감으로 제공되는 현실에 대해, 그 불평등에 대해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들이 알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 더 두렵다.





여성의 과소 대표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성의원들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공감의 능력’이 의정활동 평가에 가장 상위에 위치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 공중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고 집까지 참고 가야 하는, 밤길을 두려워해야 하는, 몰카에 찍혀 돌아다닐지 모르는 내 몸을 걱정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성차별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기억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인천시민들은 성불평등한 정책이나 공약이 없는지 성평등 의식 향상을 위한 노력을 하는지 그들의 4년 의정활동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부디 지방자치단체의 당선자들 모두가 “성평등한 인천”을 위한 의정활동을 펼쳐 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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