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의사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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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의사소통
  • 은옥주
  • 승인 2018.06.20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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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강력한 의사소통


우리 건물 지하에는 큰 술집이 있었다.
처음 이 건물을 보러왔을 때 대낮임에도 문이 굳게 닫혀있기에 여기가 무슨 가게냐고 물었다.
부동산 아저씨는 근엄한 어조로 ‘점잖은 분들이 모여 대화하는 곳’이라고 정의를 내려 주었다.
이 건물 위층으로 이사를 온 후 하루는 중 1학년이던 아들이 헐떡거리며 뛰어나오더니 보고하듯 말했다.

“엄마, 지하에 엄청 예쁜 누나들이 있어.”

대체 어떤 가게일까 궁금하여 내려가 봤더니 밤 9시쯤 문을 여는 술집이었던 것이다.
사춘기 아들한테 좋지 않은 주거환경인 듯하여 마음이 철렁했지만, 돌이킬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집 뚱뚱하고 목소리 걸걸한 마담은 몇 달간 집세를 안내는 것이었다.
술집 분위기 망가질까봐 조심하면서 나는 몇 차례 조용히 말했다.

“가게세가 밀렸어요. 깜빡 잊으신 것 같아 말씀드려요.”

그러자 마담은 시원하게 대답했다.

"네, 이번 주 내로 드릴께요"

하지만 깜깜 무소식이었다. 나는 재차 독촉했다.

“내일 당장 드릴게요.”

그래놓고선 여전히 무반응이었다. 놀리는 것도 같고, 얕보는 것도 같아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치루었을 법한 그 사람을 강력하게 대처할 수 있는 묘책이 없을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며칠 후 저녁 10시쯤, 나는 화장 끼 없는 얼굴로 청바지와 점퍼를 입고 지하로 내려갔다.
유리문 건너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예쁜 여자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고, 양복을 쭉쭉 빼 입은 정말 점잖게 생긴 신사들이 술을 마시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홀을 둘러보니 중앙에 있는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는 그 곳을 점찍었다.
큰 숨을 한 번 들이 킨뒤 나는 발로 문짝을 세게 찼다. 문이 ‘와장창’소리를 내며 열리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나는 뚜벅뚜벅 걸어 점찍어 둔 가운데 자리에 가서 거만한 자세로 앉았다. 그러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마담, 이리 와 봐요. 당신, 날 가지고 노는 거요? 자, 어디 가지고 놀아봐.”
“집세는 안 내고 장사는 하고. 이거봐 마담! 가게세 떼먹겠다는거야??”

나는 최대한 노기띤 음성을 내며 마담을 압박했다. 마담은 사색이 된 얼굴로 내게 싹싹 빌며 사정을 했다.

“사모님, 미안해요. 내일 갚을게요.”

“당신은 거짓말쟁이야. 벌써 몇 번째야 당장 가게 문을 닫든지, 집세를 내든지 해요.”

“사모님, 이번 한 번만 믿어주세요.”

싹싹 비는 마담에게 나는 다시 한번 어깃장을 놓았다.

“마지막으로 내일까지만 지켜볼께요.”

나의 비장한 으름장에 점잖은 분들이 술맛이 뚝 떨어졌는지 일순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나는 또 한 번 문짝을 ‘와장창’ 뒷발로 차고 나왔다. 몇 년 묵은 체증이 사라진듯 속이 다 시원했다.
그 이튿날 마담은 5개월이나 밀린 집세를 한 보따리 가져와서 연신 미안하다 했다. 상대방에게 맞는
눈높이 대화를 해야한다는 것을, 내 방식대로만 하면 상대방은 못 알아듣는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우리 건물에서 장사를 했던 그 마담은 내게 강력한 의사소통 방법을 알게해준 고마운 사람인 셈이다.
나는 요즘 아주 가끔이지만 강력한 의사소통 방법으로 내 마음을 전해야 할 때,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제법 유능한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강력한 소통법을 사용하는 일이 좀처럼 없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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