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니까 반대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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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니까 반대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 김성미경
  • 승인 2018.09.11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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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칼럼] 김성미경 / 인천여성의전화 대표
 

지난 9월 8일, 날이 무척 좋았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정말 가을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주말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기 좋은 날씨였다. 동인천역 북 광장, 그곳은 노인들과 가끔 보이는 노숙자들 외에 비둘기들만이 한가로운 풍경이 만들어내던, 가끔 동네 주민들과 복지 단체들이 모여 행사를 하지만, 시간이 멈추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동인천역을 끼고 있는 동구는 노인인구가 많고 주민들도 거의 잠만 자고 출퇴근하는 작은 시골같은 도시이다. 개항지이면서 관광도시가 된 중구와 달리 노동자들의 고된 삶이 짙게 배어 있기도 하다.

 

그 작은 도시에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바로 인천퀴어문화축제 때문이었다. 축제를 보고 즐기고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연히 분노한 모습으로, 비장한 각오로 모여들었고 경찰병력도 깔렸다. 동인천 북광장의 인천퀴어축제는 집회신고 이후 광장 사용을 두고도 동구청과 마찰을 빚어 행사의 성사여부와 관계없이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안전요원 300명과 주차공간 100개의 확보 요구는 행사를 열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이었고 이어 동구 곳곳에는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나붙었다.

 

그 날 퀴어문화 축제 반대 의사표현 구호는 충격적이게도 “사랑하니깐 반대한다”였다.

축제를 반대하러 나온 사람들은 그 구호가 소위 “사랑의 매”라는 표현으로 아버지에 의한, 남편에 의한, 교사에 의한 끔찍한 폭력들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부모도 없냐, 어디서 반말이냐, 몇 살이냐’ 하는 고성과 때려서라도, 물어뜯어서라도, 머리카락을 강제로 박박 밀어서라도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겠다는 폭력적인 분위기에서 민주주의의 다양한 목소리는 위축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photo_2018-09-01_12-46-38.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280pixel, 세로 960pix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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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집회 참가자에게 물린 상처>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가족을 자처하고 그 가족 사랑의 프레임으로, 가부장적 폭력으로 권리를 말하고자 하는 입을 막았다. 그날, 그들이 주장하듯 사랑하니까 반대한다는 이상하고 무지한 사랑에 감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그 구호는 잘못되었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심각한 것은 우리가 한동안 비웃었던 “사랑합니다 고갱님~”으로 주머니를 털어가는 허망한 사랑과 다르게 폭력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희는 모르지? 오빠가 가르쳐 줄게!”라는 맨스플레인(mansplain)으로 권력자들의 전형적인 권력행사의 한 방식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권력을 갖지 못한 자들은 가만히 있어야 하고 가만히 있지 않으면 폭력적으로 억압을 당해야 했다. 사랑은 여성들의 전유물이고 일은 남성들의 것이었던 것처럼 사랑이라는 이름은 돌봄의 윤리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은 한편 ‘무기력’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권력, 위계가 바로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 하는 기재인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민주주의의 근간이라고 알고 있던 다양성의 존중은 이 시대 이전까지 정치와 자본권력을 가진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또한 소수자들 안에서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성’과 타인을 억압하고 지배하는 가부장적 폭력이 존재한다.

 

우리가 가치로서 모든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다양성 원리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개인들 간의 평등한 관계, 즉 존중과 상호호혜적인 관계는 필수적인 것이다. 그 윤활유와 같은, 지고지순하게 믿고 있던 “사랑”이 가부장적 모습으로 나타날 때 동등하지 않은 다양한 타인에게 “지배와 억압”의 얼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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