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토끼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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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토끼인형
  • 장현정
  • 승인 2018.12.06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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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애착에 대하여 - 장현정 / 공감미술치료센터 상담팀장

 
 
아들은 토끼인형 세 개를 갖고 있다.
 
아들이 6개월 경 되었을 무렵 지인이 토끼인형을 선물했다. 마침 수면시간을 일정히 하고 수면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애쓰는 중이었기 때문에 아들에게는 수면인형이 필요했다. 아들은 이 토끼인형과 함께 잠이 들고 일어나자마자 토끼인형을 꼭 끌어안으며 위안을 삼기 시작했다. 빨기 좋아하는 어린 아들의 침으로 귀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기 때문에 빨래를 위해 한 개의 토끼인형을 더 데려왔다. 아들과 두 개의 토끼인형은 늘 함께였다.
 
명절날 지방의 시댁에 가서 몇일 자고 오게 되면 항상 토끼인형을 챙겨갔다. 어느 날, 한번은 깜빡 인형을 놓고 온 적이 있었는데, 아이가 울며불며 찾는 통해 시아버님이 특급택배로 인형을 보내주시기도 했다. 그 뒤로는 아버님이 먼저 ‘토끼 챙겼냐’라고 물어보시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러한 애착인형들은 대상관계심리학에서 말하는 ‘중간대상’에 해당한다. 중간대상이란 외부대상과 내부대상의 중간영역에 위치하면서 유아와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대상을 말하는데, 쉽게 말하면 ‘실제 엄마’와 ‘마음속 엄마’의 사이에 위치하는 엄마의 대용품이다. 엄마가 옆에 없을 때 위로해주고 달래주며 엄마의 대신이 되어 주고, 아동들이 갖고 다닐 수 있으므로 원할 때 언제든지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아이들은 중간대상을 통해 위안을 받으며 과도기를 거쳐 부모와 분리되는 과정을 겪는다.
 
돌이 될 무렵 아들은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그동안은 잠깐씩만 엄마와 떨어졌었는데 이제 일정하게 제법 긴 시간을 낯선 곳에서 보내며 밥도 먹고 낮잠도 자야 한다. 어떻게 하면 아들이 조금이라도 잘 적응할 수 있게 할까 고민하다가 어린이집에서 아들과 함께 할 한 개의 토끼인형을 더 구입했다. 그리고 이 토끼인형(중간대상)의 존재가 참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이 토끼인형의 존재로 조금이라도 아이의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렇게 토끼인형은 아들과 함께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들과 함게 등원을 하던 토끼인형은 아이가 만 3세가 되던 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들이 더 이상 애착인형을 찾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아이는 친구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했었다.
 
곧 다섯 번째 생일을 앞둔 아들은 아직도 토끼인형을 갖고 다닌다. 그런데 요즘 토끼인형을 대하는 아들의 태도는 참으로 다양해졌다. 때로는 자신의 밥 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토끼에게 한바탕 교육을 한다. 편식하지 말아야 한다며. 동생을 대하듯 토끼를 가르치고 때때로 혼내기도 한다.
 
엄마에게 토끼가 나쁜 행동을 했다고 이르고 혼내달라고 한다. 밥 먹기 전에 초콜렛을 먹고, 같이 먹어야 할 간식을 혼자 먹으며 욕심을 부렸다는 것이다. 사실, 토끼가 하는 이 행동은 아들이 하고 싶은 행동이기도 하다. 금지된 일을 하고 싶은 욕구를, 금기에 저항하고 싶은 욕구를 토끼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토끼의 목소리를 내며 엄마에게 말을 걸고 대화를 시도하며 또 다른 자신의 마음을 토끼를 통해 전하기도 한다.
 
어느 날은 토끼가 우주악당 타노스의 부하가 되어 자신이 처단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토끼에게 레이지빔을 쏘고 없애버린다고 한다. 그랬다가도 좋아하는 보드게임을 하게 되면 토끼는 아들의 옆자리에 앉아 함께 게임을 하는 친구가 된다. 토끼는 아들이 밥을 먹을 동안 뒤에서 당근을 먹고 아들이 양치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가면 문 앞 에서 기다리며 자신의 차례에 양치를 한다. 아들이 어린이집을 갈 때 문앞에서 배웅하고 때로는 외출을 할 때 따라나가기도 한다.
 
토끼는 때론 엄마나 아빠였다가, 친구나 동생이 되기도 하고, 아들 자신이 되기도 했다. 악당이 되거나 나쁜 행동을 하는 아이가 된다. 공처럼 던져지는 물건이 되었다가 숨 쉬듯 살아있는 생명력 있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아들에게 토끼가 매우 복합적인 존재가 된 것을 깨닫게 되었던 어느 날, 아들이 참 많이 컸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아들이 세상과 관계하는 방식이 토끼와의 관계에 묻어 나왔다. 아들의 세계가 넓어지고 있다. 그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참으로 기쁘다.
 

 
<사진출처 = https://blog.naver.com/1khhan/22090656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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