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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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자전거
  • 이춘자
  • 승인 2019.09.1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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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이춘자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반 회원



 

 
화창한 봄날이었다. 남편과 같이 한마음 신협 총회에 참석했다. 1, 2층에 빼곡이 회원들이 모여 있었다. 1부 기념식을 마치고, 경품 행사가 이어졌다. 앞에는 7등부터 1등까지 라면, 세제, 간장, 화장지, 식기건조대, 선풍기, 전기 압력밥솥, 자전거의 상품이 있었다.
“24번, 7등!”
“와아!”
“111번 3등, 선풍기 당첨!”
“와아!”
번호를 부르자, 당첨된 분들은 환호를 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슬아슬하게 앞뒤 번호를 갖은 어른들은 아쉬워하는 표정들이 참 재미가 있었다. 호명될 때마다 나는 허탕이라 ‘에이, 안 되나 보다.’ 포기하고 있는데 마지막에
“329번”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세상에나”
1등 자전거란다.
“축하드려요!”
“좋으시겠어요”
주위에서 박수를 치며 축하해 준다.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진다. 신협 총무님이 집까지 끌어다 주셔서 2층에 자전거를 올려놓았다. 그런데…… 자전거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넌방에서 쿨쿨 잠만 자고 있다.
 
남편은 자전거를 잘 탔다. 뒤에 짐을 싣고도 바람을 가르며 쌩쌩 잘 달렸다. 3,40년 전 서울 보문동 동산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하던 시절, 남편은 늘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끌고 동대문을 지나, 방산시장까지 가서 문구를 사서 싣고 돌아왔다. 가깝지도 않은 거리였건만 잘도 타고 다녔다. 자전거를 타던 남편 모습은 보면 볼수록 멋졌다. 그런데 지금 그는 자전거가 있어도 탈 수 없다.
 
어느덧 78세 노년기에 접어든 남편, 6년 전 여름, 고교 동창생들과 강원도 정선으로 1박 2일 여행을 갔다. 일을 보고 저녁에 들어가니 남편이 근심어린 얼굴로 얘기를 했다. 어제 저녁에 소변을 보는데 피가 섞여 나왔다고. 치과전문의 친구가 집에 가면 곧바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라고 했다고. 그래서 오늘 동네 비뇨기과 의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CT를 찍었는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고. 너무 놀라 가슴이 다 멎는 것 같았다. 남편 손을 잡고 아무 일 없을 거라고 얘기를 하면서도, 자꾸 눈물이 나왔다.
 
아침 일찍 인공 신장실이 있는 간석 4거리 최 내과에 먼저 들러 CT 찍은 것을 다시 판독해 주십사 여쭙고 상담을 했다. 의사 선생님은 CT 찍은 것을 스크린에 비춰보시더니 암 덩어리를 가리키며 어느 병원으로 갈 것인지 여쭤 보셨다. 인하대병원도 있지만, 가까운 길병원으로 가겠다고 하니까 후배 의사에게 친절히 전화까지 해 주셨다.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1층에 접수를 하고, 2층 담당교수님이 진료하시는 방을 찾아 올라갔다. 예약도 하지 않고 왔는데 다행히 바로 진료를 해 주셨다.
 
그렇게 9시 첫 진료를 받았다. 일사천리로 여러 검사를 하고 바로 수술 날짜를 잡아 비뇨기 전립선 옆에 생긴 ‘갈데기’ 암수술을 받게 되었다.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1기 직전 암이었다고 한다. 방사선 치료도 받지 않았다.
 
5년이 지난 지금, 콩팥 하나를 떼어냈는데도 남편은 노인 치고는 건강한 편이다. 좀 마르기 했지만, 아직은 봐줄만한 핸섬한 우리 남편! 요즘도 아침, 저녁으로 40분에서 1시간씩 걷는다. 잠자고 있는 자전거를 보면, 슬그머니 욕심이 생긴다. 남편이 자전거를 깨우면 안 될까? 비록 옛날처럼 쌩쌩 속도를 낼 수는 없겠지만, 남편이 다시 달렸으면 좋겠다. 따사로운 햇볕도 쬐고, 살랑거리는 나뭇잎도 구경하면서 바람을 벗삼아 여유만만 달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99살까지 팔팔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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