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명소 - 수봉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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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명소 - 수봉공원
  • 김주희
  • 승인 2011.03.1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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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 김주희 기자


수봉공원 산책로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시절 소풍은 기다리는 재미를 키웠다.

지금이야 초등학생도 대형 버스에 나눠 타고 목적지까지 편안히 가지만, 30대 이상 세대는 2시간 걷는 건 기본이었다.

한 학급에 대략 60명씩 12개 반 아이들이 길게 늘어선 소풍 행렬은 마치 훈련 나온 군인들의 행군 행렬과 같고, 명절 때 고속도로 풍경과도 같다.

6년 내내 매번 같은 장소로 소풍을 갔다. 소풍지에서도 인원 점검 후 점심을 먹고 잠시 쉬다가 보물찾기를 끝으로 다시 걸어서 학교로 되돌아 왔다.

지겨울만도 하나 늘 소풍 전날이면 비가 오지 않을까 걱정을 태산처럼 했다. 김밥을 마는 엄마 옆에서 터진 걸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했던 기억이 더 크다.

수봉산도 예전 초등학생들의 단골 소풍지 중 하나였다.

송림초등학교를 나온 김식만씨는 자신의 블로그 '인천의 어제와 오늘'에서 6년 내내 소풍을 갔던 '수봉산'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적었다.

"송림학교 정문을 나와서 배다리철교를 지나 황굴고개를 넘어, 숭의사거리로 나가서 제물포역을 지나 익생당 입구에서 수봉산을 올랐습니다. 요즈음 초등학교 1학년짜리를 이렇게 걷게 하면 교장선생님이 문책을 당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지만 이 당시는 이 정도 걷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제가 다닌 송림학교는 소풍날에 비 오는 적이 거의 없었지만, 이웃 창영학교는 소풍날만 되면 비가 왔습니다. 우물을 팔 때 용을 죽여서, 그 용이 원한에 사무쳐 저주를 내려 창영학교가 소풍을 갈 때마다 비가 오게 되었다는 괴담이 있었지요."

 


수봉공원 정상부에 있는 현충탑

그런 수봉산이 1972년 자유공원에 있던 현충탑을 수봉산 정상부로 옮긴 뒤 수봉공원으로 불리기 전까지 주변은 헐벗은 민둥산이었다.

산자락 아래 1960년대 미국 원조로 지은 아파트(현재 헐리고 수봉도서관과 공원이 들어섰다)가 있었고, 정상에는 군사 시설도 있었다.

부용사 등 주변에 사찰이 서너 개 있고, 공동묘지도 조성돼 있었다. 이 산을 넘어 인천기계공고 학생들이 등교했고, 그 길을 따라 맑은 내가 있었다.

수봉산(壽鳳山, 해발 104m)은 야트막한 산이다. 어떤 이유로 한자가 바뀌었는지 잘 알지 못해도 본디 水峯山이라 했다.

옛 한자표기대로 수봉산은 물과 인연이 깊어, 계양산과 같이 서해에서 떠내려 왔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이야 그 흔적을 찾을 길 없지만 수봉산 주위는 바다였다고 한다. 삼면이 바다여서 마치 물속에 수봉산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고 전해온다.

물과 인연은 또 있는데, 연수구 승기천의 발원지가 수봉산 남서쪽 60고지쯤이었다. 독쟁이 고개 쪽에서 흐른 내가 승기천으로 흘렀다고 하는데, 도시화에 따라 흔적을 찾을 길 없는 지금은 믿기 힘든 이야기다.

지금의 중·동구와 주안 등지가 인천부 다소면이라 했다. 다소면은 수봉산 동쪽 다소골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다소골은 물웅덩이가 많아 농사에 도움을 많이 줬다는 뜻을 품고 있다.

현 제물포 북부역, 옛 선인체육관 일대가 논이었고 수봉산 자락 아래 숭의4동 지역에도 논과 밭이 많았다.

다랭이 마을이란 지명도 수봉산과 얽혀 있다. 다랭이란 뜻은 다남(多男)에서 온 것으로 남자가 많다는 의미다.

정기가 좋고 물이 많아 영산(靈山)이라 했기에 수봉산을 '水'(물 수)자와 '峯'( 봉우리 봉)자에서, '壽'(목숨 수)자와 '鳳'(봉새 봉)로 바꾼 게 아닌가 해석도 한다.


1958년 무투표 당선이란 진기록을 가진 김정렬 전 인천시장의 송덕비 앞에서
공원을 찾은 이들이 장기를 두고 있다. 

정기가 남다른 이 수봉산과 또 다른 인연은 '호국'(護國)이다.

6·25 한국전쟁때 인천 출신 전몰장병을 기리는 현충탑이 수봉공원 정상에 있다.

이 현충탑은 1972년 8월15일 자유공원에 있던 걸 옮겨왔다. 자유공원에 있을 때는 충혼탑이라 했다. 1953년 건립됐다.

1968년 인근 도화동에 모셨던 인천 출신 전몰장병 379위는 서울 국립묘지로 이장되기도 했다.

현충탑에서는 매년 6월6일 현충일을 맞아 추모행사가 벌어진다.

현충탑 인근에 자유총연맹이 운영하는 '통일관'이 있다. 30대 중반까지는 이곳에서 반공(反共)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을 터이다. 그 주변에 남파 간첩이 타고 왔던 잠수정이 전시돼 있기도 했다.

현충탑과 통일관 이외에도 서쪽 봉우리에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해 1980년 9월15일 세운 '인천지구전적비'가 높이 서 있고, 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북한 출신 실향민들이 제사를 올리는 '망배단'이 있다.

현충탑에서 AID아파트까지, 수봉산은 전쟁의 아픔과 고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수봉산에는 호국·전쟁 관련 시설만 있는 게 아니다.


인천시 궁도협회 회원들이 수봉공원 무덕정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무덕정 아래에는 인천시 소속 양궁 선수들의 훈련장이 있다.

국궁으로 호연지기를 키우는 '무덕정'이 있고, 인천 예술의 요람인 인천문화회관과 국악회관, 그리고 은율탈춤전수관이 있다.

국악회관에서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가야금과 해금, 대금 등을 교육하는 국악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은유탈춤전수관은 중요무형문화제 61호인 은율탈춤전수회에서 운영한다. 봄이 되면 전수관 앞 마당에서 은율탈춤 상설공연이 벌어진다.

인천문화회관은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인천연합회가 위탁 운영한다. 인천예총은 국악, 무용, 문인, 미술, 사진작가, 연예예술인, 연극, 영화인, 음악 등 9개 협회로 구성된다. 이들 협회가 문화회관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1982년 9월22일 문을 연 인천문화회관은 본디 접대부가 있는 술집 용도로 선 건물이었다고 한다. 건물주가 재정 여건이 어려워 문도 열지 못한 채 내놓은 것을 인천시가 매입해 한때 인천시 전산·통계 관련 부서가 쓰다가 인천예총의 보금자리가 됐다.


수봉공원은 지역 주민들의 운동 장소이자, 산책로로 사랑을 받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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