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 지옥 경험, 보이스피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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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지옥 경험, 보이스피싱
  • 강태경
  • 승인 2019.12.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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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경 / 인천노인종합문화회관 소통의 글쓰기 반

 

 

11시에 막 식사를 하려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000이 아버지신가요?” 전화 속에서 퉁명스러운 말소리가 들린다.

그런데요

“000이가 사고가 났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전화도 못하고 딴사람이 걸어 줄 정도라면 보통 사고가 아니다. 나는 옆에서 어디래? 어디래?” 말하면서 제발! 제발! 많이 다치지 않았기를 간절히 빈다. 빨리 사고 장소를 가야 한다. “나 좀 바꿔 줘봐! 나 좀하지만 남편은 혼자만 전화를 받고 있다.

 

나는 안절부절 못 하며 큰 사고가 아니기를 바라며 장소만 알면 곧 뛰어나갈 판이다. 전화를 받던 남편은 딸래미 바꿔 봐!” “딸래미 우는 소리가 들린다 울지 말고 말을 알아듣게 해봐!” 하며 남편은 소리를 지른다 목소리는 또 왜 그래? 울어서 그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리는데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들린다. 내용은 알 수가 없다 이상하다 놀라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 할텐데도대체 얼마나 놀랐으면 말이 저렇게 빨라진 거야, 가여워라 내가 옆에서 있어야 하는데괜찮다고 안고 위로해야 하는 건데생각하며 안절부절 서성인다. “? 눈을 가려서 어딘 줄 모른다고? 전화 바꿔남편은 꽥 소리를 지른다.

 

이건 뭔 소리야 눈은 왜 가려?’ 한참을 전화 받던 남편은 난데 없이 엄마도 있고 아버지도 있는데 그 돈 못 갚을까 봐 그래?” 큰 소리를 한다. ‘아이고 사고를 크게 냈나 보네. 그렇지! 사위한테 전화를 해 보면 되겠다. 사고 장소에 같이 있는 건지 혼자 나가 사고를 낸 건지 두 시간 전에 복지관 강좌까지 신청해 줬는데 그새 어디를 나가 사고를 낸 거야.’ 나는 급히 사위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 받는 사위는 , 어머니!” 지극히 편안한 목소리다

 

“00 아직 어떻게 된 줄 모르나 보네. 00이 어디 있는 줄 알아?”

제 옆에 있는데요

집에 있다구!?”

! 우리가 보이스피싱에 걸렸구나.’ 그제서야 나는 사태가 파악되기 시작했다.

알았어. 다시 전화할게

아직도 식탁에 앉아 전화를 받는 남편에게 반대편 귀에 대고 딸래미 지들집에 있대요.” 속삭인다. 하지만 남편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지 통화에만 열중이다. 크게 글을 써서 내 밀어도 남편은 혼이 나가 볼 생각을 않는다. 식탁 위에 종이를 내밀고 탁탁 두드리니까 그제야 쳐다본다. 그제서야 벌떡 일어나더니

요 못된 놈, 패 죽일 놈,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 어디서 사기를 쳐!” 속은 게 분한지 전화를 끊지 못하고 욕을 해댄다. 전화기 안에서도 끝없이 말대꾸를 해 댄다.

기가 찰 노릇이다. 사기 치다 들킨 주제에 뭘 잘 했다고! “끊어요! 끊어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옆에서 들리는 억양이 조선족 목소리 같다. 전화 끊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그놈들이 뭐래요?” 급히 물었다.

 

아니 이놈의 자식들이 00이가 친구 빚보증을 잘못 서서 끌고 갔다는 거야.”

아이고! 나는 이때껏 교통사고인줄 알았지!”

나는 혼자서 제발 많이 다치지 않았기를 빌고 또 빌고 있었다.

사채업자 행세를 했어. 자식을 생각지 않느냐 자식이 죽어봐야 정신 차리겠냐 하면서 얼굴을 뒤집어 씌워 가지고 끌고 갔다며 애 살리려면 돈 오천만 원을 준비하라고 하더군

? 애를 죽여 봐야 정신 차리겠냐고 하던데?”

고분고분 안 하고 뻣뻣하다고 그러지 뭐

그들은 남편이 벌벌 떨지 않는 게 얄미웠던 모양이다. 오천만 원은 지금 준비가 되느냐 집에는 누가 또 같이 있느냐며 탐색전을 할 때 나는 사위한테 전화하느라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신고 해야 겠어요. 이런 전화 몇 번만 돌리면 한두 사람은 걸려들지 않겠어요? 중국으로 오천만 원 날아가는 건 못 참아! 우리를 능멸하고 사기를 쳐!” 괘씸하기 짝이 없는 놈들! 나 원! 살아도 저렇게 밖에는 살 수가 없는 것인가? 속은 게 민망하고 창피하다.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사위에게 뜬금없는 전화를 하고 끊어 버린 게 생각나 다시 걸었다. 딸이 받는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말하는 도중에 거봐 거봐 엄마도 속았네! 완전 속았어흥분하며 딸이 말한다. 사위도 전화를 바꾸더니

“00이한테 문제가 있으면 남편인 저한테 먼저 전화가 왔겠지요

그런가 아니 나는, 같이 있는지 아닌지 그것을 확인하려고 전화를 했던 거지

말꼬리를 흐렸지만 어찌 되었건 속은 것은 바보 짓 같다. 꼴이 우습게 됐다.

 

엄마 전화번호 보내봐

남편 폰에 떠 있는 번호 070-4121-7766을 그대로 딸에게 보냈다.

아빠는 안 할 것 같으니까 네가 경찰서에 고발해.”

알았어 엄마

우리는 가까스로 사기를 면했지만 경찰에 신고하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경찰이 좀 더 신경 써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진정하고 생각해보면 허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070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며 딸의 목소리, 딸의 빚보증에 대한 신뢰……

자식이 뭔지, 자식의 안전에 문제가 생기자 우리는 냉정한 판단을 못하고 허둥거렸다. “이런 것을 노리는 것이겠지.”남편은 물에 밥 말아 먹고 후딱 나가 버렸다. 한바탕 휘몰아친 태풍 같은 소동이 끝나고 혼자서 다 말라버린 밥상과 마주 앉았다. 놀란 가슴은 아직도 뛴다. 밥맛은 천리만리 달아나 수저를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는데 딸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그 번호로 전화해봤는데 모시모시하더라고 그래서 끊어 버렸어

경찰서에는 뭐래?”

아빠가 직접 고발을 해야 한데. 그리고 직접적으로 손해를 본 것이 있어야 고발이 된다고 하더라고.”

에그그

조금만 더 멍청했으면 돈 오천만 원이 중국으로 날아갈 뻔했는데도 대책은 없는가 보다. ‘각자 보이스피싱 조심들 하는 수밖에 없다. 이거네.’

이런 전화 열 번 걸면 도대체 몇 명이나 걸려들까? 우리도 마침 둘이 같이 있었으니까 놀라기는 했지만 금전적인 피해는 없었다. 딸이 무사하여 안심은 됐지만 자식이 큰일을 당한 것만큼이나 몸은 힘들고 지쳐있다.

 

이놈들은 지금 이 시간에 또 어디다 대고 이런 전화질을 해댈까? 진정으로 막을 길은 없는 것인가? 보이스피싱 사이트에서는 사기 과정과 유형, 피해 예방, 또 체험관 탭에서는 범죄자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범죄자 제보에 기여하면 천만 원 포상금도 있다. 현금지급기 ATM으로 유인하기, 세금이나 보험료 환급, 자녀 협박 등 경찰청에서 제공하는 여러 사례들과 제보를 보면 진화하는 보이스피싱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는 없을 듯하다. 가짜가 더 진짜 같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사람들이 모두가 바보는 아니었을 것이다. 벌써 조 단위의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한다. 어떡하면 저 사기꾼들을 잡을 수 있을까?

 

자식 일은 어느 부모고 벌벌 떨 수밖에 없기에 남편과 나는 그 오래된 유형, 그 흔하디흔한 자녀 납치사건의 유형에 걸려 지옥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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