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개의 면을 통해 바라보고 성찰하다
상태바
108개의 면을 통해 바라보고 성찰하다
  • 채은영
  • 승인 2020.01.10 09: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 임선이 작가의 '108개의 면과 36개의 시선, 또 다른 한 개의 눈'
- 채은영 / 독립기획자, 임시공간 대표

 

2020년 인천in의 새 문화기획으로 채은영 독립기획가의 <동시대 미술 속 인천>을 시작합니다. <동시대 미술 속 인천>은 지금 그리고 여기, 현대미술 속 인천의 장소, 사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다양한 미술의 언어로 인천을 새롭게 바라보고, 우리 동네 이야기로 낯선 현대미술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108개의 면과 36개의 시선, 또 다른 한 개의 눈, 2019, 용담리 해변, 영흥도, 트리포컬 액션 설치 장면 (사진 조신형)
108개의 면과 36개의 시선, 또 다른 한 개의 눈, 2019, 용담리 해변, 영흥도, 트리포컬 액션 설치 장면 (사진 조신형)

 

겨울이 성큼 다가온 해변 공기는 메마르고 차갑다. 간척 사업의 영향으로 모래가 사라져가는 해변에 돌멩이들과 쓰레기가 뒹굴고 잘려진 플라스틱 케이블 타이들이 널브러져있다. 바다로 눈을 펼치면 바다와 맞닿은 하늘이 펼쳐지기도 전에, 엄청난 크기의 송전탑이 도미노처럼 켜켜이 서있고 연결된 전선들이 바다와 하늘 위 오선지처럼 드리워져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해변 풍경과 다른 묘하고 기이하다. 임선이 작가의 <108개의 면과 36개의 시선, 또 다른 한 개의 눈>은 3개면으로 삼각형 모양의 만화경을 한 단위 모듈로 37개를 결합해 6꼭지 모양의 별 모양이다. 36개 모듈은 108개 면을 가지고 있고 이는 불교의 철학적 숫자이면서 몸을 이루는 감정적 숫자다. 여기에 1개 모듈을 더해 또 하나의 다른 시선 혹은 변화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 작업은 서해평화예술 프로젝트 <트리포컬 액션 Trifocal Action>에서 들여다 보기 행위로 땅과 바다, 하늘을 연결하는 풍경과 스스로를 비추는 성찰을 담았다.

 


108개의 면과 36개의 시선, 또 다른 한 개의 눈, 2019, 용담리 해변, 영흥도, 트리포컬 액션 설치 장면 (사진 조신형)

 

임선이 작가는 변화하는 도시 풍경에 대해 ‘본다’라는 시감각에 의문을 갖고 불확실하고 가변적인 시각적 모호함을 주제로 새로운 이미지 풍경을 만드는 조각적 설치와 사진 작업을 한다. 대표 연작인 <Trifocal Sight>는 수치 지형도의 등고선을 손으로 잘라낸 것들을 다시 쌓은 입체를 사진으로 근접 촬영한 작업이다. 현대 풍경을 근·중·원경으로 동시에 담아내는 시선의 다중 포착으로 현대인의 불안한 시선과 은유적 혼돈을 보여준다. 최근 개인전 < 양자의 느린 시간, Slow time in Quantum >은 물리적 시간 안에서 느린 형태로 연결된 기억의 함축과 신체에 새겨진 흔적을 이야기했는데, 흐릿해지는 눈의 생각을 만화경과 숨 쉬는 빛으로 만든 작업을 어두운 전시장 한 가운데에 깜빡이는 별처럼 걸려 있었다. 이 작업이 영흥도 해변이라는 장소적 특성과 1박 2일이라는 짧은 기간에 영흥도 해변을 이동하는 전시 방법에 따라 좌대를 제작해 땅에 세우는 방법으로 새롭게 변형되었다.

 

이미지03 108개의 면과 36개의 시선, 또 다른 한 개의 눈, 2019, 십리포 해변, 영흥도, 트리포컬 액션 설치 장면 (사진 조신형)
108개의 면과 36개의 시선, 또 다른 한 개의 눈, 2019, 십리포 해변, 영흥도, 트리포컬 액션 설치 장면 (사진 조신형)

 

대중교통이 복잡하여 자동차로 영흥도를 가기 위해선, 시화방조제를 건너야 한다. 오른쪽으론 송도국제도시가 보이지만 그 앞에 LNG기지의 거대한 탱크들이 블록처럼 서있다. 왼쪽으론 거대한 송전탑들과 전선들이 수평 풍경을 가득 채우고 하얀 연기 기둥들이 하늘로 솟아오르며 수직 풍경을 채운다. 매우 초현실적인 살풍경이다. 대부도에서 선재도를 지나 영흥도에 다다르는 길은 펜션, 까페, 음식점, 편의점, 지역 농산물 노점들이 즐비해서 대부도인지, 선재도인지 영흥도인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서해와 경기만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중요하게 여겨진 섬이었고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 작전의 전초기지였다. 영흥도 화력발전소 착공으로 영흥대교가 생겼고, 교통이 편리해지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섬 전체가 도시인을 위한 거대한 전력 생산 공장 그리고 생태체험과 휴식을 위한 휴양지로만 대상화되어가는 섬의 장소상실을 마주한다.

 

108개의 면과 36개의 시선, 또 다른 한 개의 눈, 2019, 십리포 해변, 영흥도, 트리포컬 액션 설치 장면 (사진 조신형)
108개의 면과 36개의 시선, 또 다른 한 개의 눈, 2019, 십리포 해변, 영흥도, 트리포컬 액션 설치 장면 (사진 조신형)

 

관습적인 해변 풍경이라기 보단 송전탑과 전선만 보이는 용담리 해변에서 인천 공항 비행기와 송도 신도시가 보이는 십리포 해변으로 이동해 다시 설치하던 중, 십리포 동네 고양이가 작가가 작업 설치 과정을 유심히 꽤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마치 익숙한 공간에 새롭고 다른 무언가가 들어온 순간을 섬세하게 인식한 것처럼. 주말에 들린 겨울 해변을 익숙한 방식으로 소비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는 다른 동네 고양이를 보며, 인간과 자본 중심의 세계에서 섬이 도시를 위한 공간으로 ‘무시간적 장소’ ‘ 역사없는 장소’가 되어가는 걸 방관하고 있지 않나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소중한 타자성을 드러내고 인간과 자본 중심의 세계를 재구성하는 삶과 일상의 시작이 필요하다. 그러한 존재론적 전환의 조우에 예술이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지금 여기에서 예술에 바라는 작은 희망일 것이다.

채은영(독립기획자, 임시공간 대표)

 

<글쓴이 채은영은>

통계학, 예술경영,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도시 공간에서 자본과 제도와 건강한 긴장관계를 갖는 시각예술의 상상과 실천과 관심이 많은 인터로컬 큐레이터로 2016년부터 시각예술과 로컬리티, 생태 정치 관련 리서치 베이스 큐레이팅을 하는 임시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시민과 함께하는 인터넷 뉴스 월 5,000원으로 소통하는 자발적 후원독자 모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