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몽의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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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몽의 부탁
  • 김선
  • 승인 2020.02.1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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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방인 - ⑩뫼르소의 편지대필

인천in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서유당과 함께 어렵게만 느껴지던 동·서양의 고전 읽기에 도전합니다. ‘서유당의 고전읽기모임인 하이델베르크모임Jacob 김선(춤추는 철학자), 김현(사회복지사), 최윤지(도서편집자), 서정혜(의류디자이너), 소순길(목사), 이광남(명상활동가)’ 등이 원서와 함께 번역본을 읽어 내려가며 삶의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전읽기- 알베르 카뮈(김화영 역), 이방인 L’Etranger, 민음사.

: Jacob 김 선

 

“J’ai fait la lettre. Je l’ai écrite un peu au hasard, mais je me suis appliqué à contenter Raymond parce que je n’avais pas de raison de ne pas le contenter.”

나는 편지를 썼다. 그냥 되는대로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레몽의 마음에 들도록 힘썼다. 왜냐하면 내게는 레몽의 마음에 들지 않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레몽은 이야기를 계속한다. 뫼르소는 그의 이야기를 줄곧 들으며 포도주를 일 리터나 마시고 레몽의 담배까지 피운다. 뫼르소의 마음은 이미 이곳에 있는 것 같다. 레몽이 무엇을 요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 말이다. 마지막 전차들은 지나가며 변두리의 소리를 실어 간다. 뫼르소의 마음만 남겨 둔 채 지나간다.

   레몽은 자신의 여자와의 정교(情交)에 약간 미련을 품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난처하다고 한다. 그래도 그녀를 혼내 주어야겠다고 말한다. 몸과 마음이 따로 작용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머리 속에는 다 계획이 있었다. 먼저 그 계집을 호텔로 데려다 놓고 풍기 단속반을 불러다가 추문을 일으켜 계집을 기록 대장에 오르게 할 것이라 한다. 본인이 기록 대장에 오를 수도 있음을 간과하고 있는 레몽. 다음으로는 뒷골목 친구들에게 충고를 듣고자 말하니 여자에게 낙인을 찍어 버리라는 소리를 듣는다. 낙인은 참으로 잔인하고 지속적인 형벌이다.

 

출처: KBS1. 2020.1.9. 보도자료.
출처: KBS1. 2020.1.9. 보도자료.

   

요즘 전 세계가 바이러스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그 진원지와 사람에 대한 편견이 무섭게 전파되어 지역과 인종에 대한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전 세계는 보이는 질병보다 더 무서운 보이지 않는 차별의 질병을 앓고 있다. 기대도 하지 않은 뒷골목 쓰레기들의 무서운 충고다. 그들과 달리 레몽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고 중얼거린다. 레몽의 마음 한켠에 그녀는 또 다르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레몽은 뫼르소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한다. 슬슬 계획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자신이 말한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다고 물어 본다. 담담하게 뫼르소는 재미있는 일이라고 답한다. 또 레몽은 자신이 속고 있는지 물어 본다. 뫼르소는 그런 것 같다고 답한다. 레몽은 여자를 혼내 주어야 하는지 물어 본다. 뫼르소는 그 여자를 혼내 주겠다는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다고 대답한다. 뫼르소와 레몽은 대화를 통해 동지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뫼르소는 포도주를 약간 마신다. 레몽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서 자기의 생각을 털어 놓는다. 본심이 나온다. 레몽은 여자에게 발길로 차 버리는 뜻의, 그러나 동시에 여자가 후회하도록 할 만한 사연을 섞어서 쓴 편지를 보내겠다고 한다. 참으로 어려운 편지 내용이 될 것 같다. 페터 한트케의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처럼 편지를 통해 여자가 후회하도록 하려면 대단한 글발이 필요할 것인데 뫼르소는 가능할 것 같은 기대감이 있다.

 

출처: YES24. 새로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페터 한트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출처: YES24. 새로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페터 한트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그리고 여자가 돌아오게 되면 여자와 함께 잠자리에 들고 끝나갈 무렵에 여자의 낯짝에다 침을 뱉어 주고는 밖으로 내쫓아 버린다고 한다. 레몽은 여자를 아는 사람인 것 같다. 당기고 밀어 버림이 능수능란하다. 머릿속에서 말이다. 뫼르소는 그렇게 하면 여자에게 징계가 될 것이라고 호응한다. 레몽의 계획에 뫼르소는 은연중에 동참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레몽은 자기가 적절한 편지를 쓸 수 없으니 뫼르소에게 부탁할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레몽은 편지 대필자를 찾아 노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뫼르소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있으니 다급한 레몽은 지금 당장 그 편지를 쓰는 것이 귀찮겠냐고 물었고 레몽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이 뫼르소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레몽은 포도주를 한 잔 마시고 일어서서 접시들과 먹다 남은 소시지를 한옆으로 밀어 놓고 탁자를 정성스레 닦는다. 목적달성을 위한 행동이 빠르다. 모눈종이 한 장과 노란 봉투와 작은 펜대와 잉크병을 꺼낸다.

  레몽이 말한 여자는 무어 여자다. 뫼르소는 편지를 쓴다. 그냥 되는대로 쓰기는 했지만 레몽의 마음에 들도록 힘썼다. 왜냐하면 레몽의 마음에 들지 않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뫼르소는 레몽의 마음에 들고 싶었던 것이다. 뫼르소는 큰 소리로 읽는다. 자신이 쓴 편지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나 보인다. 레몽은 담배를 피우며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듣고 있더니 다시 한 번 더 읽어 달라고 청한다. 레몽은 매우 마음에 들어 한다. 레몽은 뫼르소가 세상물정에 밝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럴 때면 레몽은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같다. 그러면서 레몽은 뫼르소에게 자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진짜 친구라고 말한다. 뫼르소도 그렇다고 대답한다. 뫼르소는 레몽과 친구가 된다 해도 상관없는 일이고 레몽이 자신과 정말로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레몽이 뫼르소의 친구일 수 있을까?

  레몽은 편지를 봉하고 둘은 남은 포도주를 마저 마신다. 이미 계약 성사자들의 모습이다. 그리고 서로 말없이 담배만 피운다. 밖은 고요하고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만 들린다. 뫼르소가 늦었다고 하자 레몽은 시간이 빨리 간다고 말한다. 뫼르소는 졸음이 왔지만 일어서기가 힘들었다. 뫼르소가 피곤해 보였던지 레몽은 뫼르소에게 자포자기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뫼르소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어차피 한 번은 당해야 할 일이라고 설명한다. 자포자기할 뫼르소가 아님을 레몽은 모르고 있다.

  뫼르소는 일어났다. 레몽은 사나이끼리는 언제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사나이인지 암묵적으로 규정된 두 사람은 사나이의 길을 함께 가고 있다. 그의 방을 나온 뫼르소는 어둠 속 층계참에 잠시 서 있다. 집안은 고요하고 습한 바람이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뫼르소는 그냥 우두커니 서 있다. 우리의 뫼르소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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