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치명타 작가와 인천인권영화제
<동시대 미술 속 인천>은 지금 그리고 여기, 현대미술 속 인천의 장소, 사람,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다양한 미술의 언어로 인천을 새롭게 바라보고, 우리 동네 이야기로 낯선 현대미술을 가깝게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화 피터 래빗의 동글이 버전같은 동물 인형들이 싱그러운 숲속이나 단란한 중산층 인테리어를 한 가정집을 배경으로 등장한다. 무민이나 스머프가 같이 등장해도 어색할거 같지 않은 익숙한 세팅이다.
그런데 조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스톱모션이나 애니매이션같지 않게 꼭두각시 인형극처럼 누군가의 손이 쉴 새 없이 인형들을 움직이면서 조금은 딱딱하고 어색한 말투로 대사를 한다. 마치 잔혹 동화처럼, 트렌스젠더 줄무늬 고양이가 좀비 참사의 생존자로서 이야기를 하고, 재난을 피해 대피소로 입소하려는 커플은 정상 가족이 아니라 계속 거절을 당한다.
장애인 토끼와 친구들은 시설을 나가기 위해 애를 쓰고, 생리대 수거함에서 월경혈들이 HIV감염 핏방울을 만난다. 진실과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아기 수달이 난민 이슈를 가지고 정치토크쇼를 진행한다. 지금 우리 일상의 차별과 편견에 관한 알레고리다.
치명타 작가는 회화를 공부했지만, 다양한 삶을 제거하는 시스템의 부조리에 질문을 갖고, 드로잉, 회화, 영상으로 풀어 가고 사회적 사건의 현장에도 적극 참여한다. 2013년경 콜트콜텍 시위 현장에 해고노동자들의 투쟁 일상을 기록한 <여의도-로잉>과 농성장 천막과 현수막 등 작업을 했다.
2017년 <메이크업 대쉬>은 뷰티 크리에이터의 유튜브 영상 제작 방식을 차용해 화장을 요구하는 사회와 관습을 전복하는 드래그퀸 메이크업, 문래동 메이크업, 서른살이 된 작가가 일흔살까지 변화 과정의 메이크업 영상을 비롯해 사후세계, 최저시급, 스모킹 메이크업 등 작업을 실제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소개했다.
2019년 <실바니안 패밀리즘>은 인형완구 세트를 차용해 가족 이데올로기를 풍자하면서 동성애자, 장애인, 난민, HIV 등 소수자에 관한 혐오와 편견 그리고 생명과 안전에 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에 관해 질문한다.
<실바니안 패밀리즘>은 전시장에서 비디오 작업처럼 보여지지 않고, 영화공간 주안에서 상영했고 왜 여기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작가는 콜트콜텍 시위 현장에서 만난 활동가들과의 인연으로 2015-2016년경 인천인권영화제에 접속해, 영화제 포스터를 그리기도 하고, 영화제 관람객들이 참여하는 워크숍 공간을 디자인했다.
디아스포라영화제가 개항장 문화지구안에서 인천아트플랫폼이란 공간성으로 많이 알려진 반면, 노동의 도시 인천에서 주안공단이 가까운 주안역과 옛 시민회관 사이에서 ‘표현의 자유, 인권 감수성 확산, 공존을 위한 대안영상 발굴'을 지향하는 인천인권영화제가 올해 25년째 자리잡고 있다.
무료 상영의 원칙으로 개인들의 소셜펀딩으로 꾸려가고 과정에서 여러 활동가들의 노력과 연대를 생각하니 김수영 시인의 <풀>이 떠올랐다.
작가는 이전 콜트콜텍 농성이나 최근 톨게이트 노동자 시위현장에서 드로잉이나 현수막 작업처럼 참여와 연대의 적극적인 표현과 달리 아직까지 인천인권영화제에서는 포스터를 만들고 공간을 구성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예술가로서 사회적 참여를 지향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함께하는 사람들 관계와 마음에서 다시 힘을 얻는다는 작가의 눈빛은 맑게 빛났다.
인천에서 거주한지 이제 2년이 된 작가가 인천의 지역성을 경험하는 장소가 작은 영화제를 중심으로 하는 연대라는 것은 기존 지역 예술가가 인천을 연고적 정주성과 역사성으로 강조하는 ‘고향’으로, 부재와 결핍을 형식과 위치짓기하는 ‘마계’로 전유하는 것과 다른 로컬리티의 감수성과 재전유를 기대하는 점이다.
작가에게 인천은 인권의 도시이자 반인권의 도시다. 그가 말하는 인권은 정상인이 아닌 다양한 타자 그리고 비인간과 연결되며 더 넓은 공통성과 더 깊은 섬세함을 요구한다. 또한 사회 정의와 실천을 위한 용기와 행동의 수행을 필요로 한다.
예술가가의 실천을 화이트큐브의 제도와 거리의 현장으로 구분하기 보단, 끊임없이 일상적이고 관습적 세계와 불화하며 질문하고 상상하는 예술가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의 여러 장소와 상황에서 스스로의 꾸준함과 연대의 희망으로 돌파하려는 작가의 느린 돌진(slow rush)이 시각예술과 지역성의 관습적 관계를 전복할 예기치 못한 무언가를 툭 던져주길 기다린다.
채은영(큐레이터, 임시공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