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만한 갯벌이 불러일으킬 국내외 파장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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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만한 갯벌이 불러일으킬 국내외 파장을 기억하라
  • 지영일
  • 승인 2020.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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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칼럼] 지영일 / 가톨릭환경연대 대외협력위원장

 

세계 곳곳을 뜨겁게 달구는 대규모 산불. 우리의 일상을 얼어붙게 만든 코로나19. 당장의 생존과 닥칠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지금이다. 파괴되어가는 생태계의 경고다, 기후위기의 파국이다, 지금과 같은 인간의 삶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 환경과 경제를 아우르려는 그린뉴딜, 정의로운 전환과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가치판단을 부르짖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다.

인간사회와 매한가지로 자연생태계도 선순환 체계, 항상성을 위한 복잡한 연결고리들이 존재한다. 그 섬세한 망에 의해서 전체의 구조가 유지되고 각각의 존재들이 공존과 조화 속에 풍요를 구가한다. 한 부분이 기능을 멈추거나 파괴된다면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켜 전체의 존립에 치명적인 결과가 미치게 된다. 마치 도미노현상처럼.

누구나 할 법한 이야기들로 말머리를 여는 이유는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된 국토부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안산-인천 구간’ 노선안 때문이다. 검토 중이기는 하나 내륙을 거쳐 바닷가 갯벌을 휘돌아가는 지상 교각으로 놓일 모양새다. 그들이 내놓은 최적 노선안에 따르면 유·무형 건설비용 대비 교통량 분산효과와 인천공항으로의 이동시간 단축이 가장 중요한 명분이다. 문제는 그러기 위해 세계적 보호지역인 송도갯벌이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OBS 캡처
OBS 캡처

2000년 초부터 매립이 시작된 송도갯벌은 끄트머리 자투리땅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습지보호구역 지정(2009년. 인천시)과 람사르습지(2014년. 인천시)로 인증을 받았다. 인증 당시 람사르사무국은 추가적인 갯벌 매립을 우려하며 보호지역 확대, 보전계획수립 등을 전제로 했다. 송도갯벌은 아울러 철새이동경로 사이트(Flyway Network Site, FNS)로도 등록된 지역이다. 따라서 논란 중인 도로계획은 국내법인 습지보전법과 국제적 약속인 람사르협약, EAAFP-FNS를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송도갯벌의 처지가 참으로 애틋하다.

국토부의 명분 달성을 위해 그렇게 갯벌이 뭉개져야 한다. 도로는 국토부의 구상에 대해 입장을 달리했던 해양수산부, 환경부 등 정부부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국립생태원, 국립환경과학원 등 정부산하 전문기관을 딛고 서야한다. 국토부와 인천시 모두, 보호지역을 훼손했다는 국제적 망신과 정책불신을 감내해야 한다. 보호지역 확대, 보전계획수립 등의 약속을 저버려야 한다.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해온 역사, 무지와 개발로 끊겼던 생태계의 연결고리를 이은 사례들은 철저히 외면해야 한다. 그래도, 정녕 교통량 분산과 인천공항으로 가는 몇 분을 줄이기 위해 제2순환선 안산-인천 고속도로가 필요하다면 말이다.

환경운동가들과 전문가들은 이 계획이 그대로 추진될 경우 보호지역에 대한 개발과 이용에 있어 법과 규제, 국제적 약속이 헌신짝 신세를 면키 어려울 것이라 걱정한다. 필요하면 어떻게든 변경하거나 무시해도 좋다는 신호로 작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 여파로 보호지역, 보호생물종의 안전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일 것이 뻔하다.

최근 진행된 공청회 자리에서 도로공사 관계자의 언급에 따르면 도로건설로 송도갯벌의 교각면적 0.014%만이 훼손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업무로는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우물 속에서 올려다본 동그란 하늘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그 훼손과 영향의 범위는 앞서 살펴보았듯 전국적이며 국제적이다. 보호종 생물의 서식과 번식, 먹이활동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국제적 신뢰와 위상까지에 생각이 이른다면 절대 가볍거나 무시해도 좋을 가치가 아닌데 말이다.

이 대목에서 “한반도를 찾는 철새의 60% 이상이 중간 기착지로 인천에 머무는 만큼 생태환경보호와 갯벌복원으로 서식지 보호사업에 적극 나서겠다.”는 인천시장의 공언이, “철새들의 대표적인 터전인 습지에 대한 보전 노력을 강화하고 보호지역 지정과 보호지역 내 훼손지 복원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습지보전 관련 국제적 교류‧협력도 확대할 것”이라는 환경부 장관의 포부가 안쓰러울 정도다. 국가(정부) 단위 대규모 개발계획, 공공성을 표방한 정책에서 여전한 파괴와 단절을 부르는 손길, 숫자로 이뤄진 경제성 논리의 꼼수에 공분하게 된다.

생태환경 요소의 대척점에 선 개발론자들이 빠지곤 하는 흔한 기만과 착각이 있는 듯하다. 아니 오히려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 자주 쓰일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다른 기회가 있을 것이며 충분히 대체할 요소를 갖고 있다.’는 안일한 사고다. 또 ‘아직 완충 가능하고 설사 계획이 추진되더라도 그 영향력은 미미할 것이다.’는 근거 없는 방심이다. 정말 그래 보이는가? 순간순간 우리의 판단이, 선택이 지금 인류가 겪는 기후위기, 생태계 붕괴의 현실과 무관한가?

하여 제2순환고속도로 안산-인천 구간을 흔하고 쉽게 생각할 인공구조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여전히 파괴, 무모한 팽창이라는 전철을 반복하며 대립하는 시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해당 구간 19.8㎞ 도로를 놓으면서 우리가 포기하고 희생시킨 것에 대한 후회, 외면한 진실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기를 바란다. 오히려 과감한 결단, 전례 없이 고귀한 선택, 세계가 주목할 사례가 만들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직선이 곡선으로 바뀌고 느린 길이 빠른 길을 대체한다. 위로 가로지르던 길이 아래로 감춰지고 예정됐던 계획이 백지화될 수 있다.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안산-인천 구간’ 노선을 둘러싼 국토교통부, 그리고 인천시의 판단과 대처가 드러날 최종 시한이 코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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