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월초교 아이들의 헌책방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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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월초교 아이들의 헌책방 나들이
  • 곽현숙
  • 승인 2020.12.23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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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아벨서점의 책방일지 - 곽현숙 / 아벨서점 대표

 

배다리 아벨서점
배다리 아벨서점에 온 송현초교 아이들이 어머니와 책을 고르고 있다.

 

요즈음은 도서관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책방에 와서 책을 구매하는 일이 아주 드물다. 더욱이 학원과 컴퓨터, 핸드폰에 시간을 많이 쓰다 보니, 자가 학습이 적은 환경이 되어 스스로 책방을 찾아다니는 일은 보기 힘든 일상이 되었다. 10년 전 까지만 해도 친구들끼리 책방을 찾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는데, 이젠 주말에나 서너 가족이 들어설 뿐이다.

그런데 최근 동구 송월초등학교에서 만 원짜리 도서 구매권을 만들어 전 학년이 한 달 동안 책방에 가서 책을 구매해 보게 하는 행사를 기획했다며 연락이 왔다. 너무 놀랍고 반가운 소식이었다. 우리는 어린이 책 칸을 정리 하면서 아이들이 책방에 와서 책을 고른다는 생각을 하니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혹여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라니까 마지못해 한번 방문하는 마음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물론 학교에서도 책은 왜 봐야 하는지 선생님 말씀들도 들어왔겠지만... 그래도 책방에서 아이들에게 책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며 위안 삼았다.

첫날부터 한 가족, 두 가족 들어서는데 책방에 들어서는 순간 일렁이는 눈빛으로 “오랜만에 와보네요!” 한다. 친근한 이웃처럼 “아빠가 어렸을 때 오던 책방이야!” 우리도 웃음으로 답하니 아이는 저절로 마음에서 우러나 책방 안으로 들어선다. 저학년 아이들이 책방에서 책을 고르는 일이 낯설어 삐죽거리는 모습도 예뻐보인다. 부모님들도 책과 멀었던 시간들을, 혹은 최근 전혀 책을 보지 않았던 소회들을 편안하게 열어낸다. 그러면서도 책 앞에 다가서는 모습에서는 겸허한 모습이 보인다. 반면 전혀 말 붙일 곁도 안주는 아이와 부모도 있고, 학부모가 책을 다 골라주어 아이가 고를 생각도 안하는 가족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헌책방이라는 곳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하는 부모와 아이들도 있다. 너무 반가와 하며 눈빛이 반짝 빛난다. 좋은 책이 많다면서 싼 값에 구 할 수 있어 좋다고 부모님과 중학생 언니까지 함께 와서 책을 고르는 모습에서, 평상시 책을 좋아 하는 가족임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이 덥석 책 앞에 다가서지 못하는 듯해서 “책을 뭐라고 생각해?” 하고 물으니, 머뭇거리다가 “음- 배우는 거요,” “그래, 배우는 것인데 무엇을 알게 하지?” 답이 없다.

“있잖아 학생이 움직이는 반경은 집과 학교 그리고 주변 친구들 이 정도의 세계잖아?” “네” “그런데 책 속에는 보이는 주변의 작은 것보다는 넓은 세계가 담겨 있어서, 마음에 들어오는 책을 꺼내어 책장을 넘겨보기 시작하면, 백 년 전 속으로도 갈 수 있고, 아주 먼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도 볼 수 있어. 세계 명작을 보면서 프랑스 ,미국, 터키 등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살아간 모습을 볼 수 있어. 여행갈 일이 있을 때 덜 낯설지 않을까?” 어머니가 동조하시며 학생과 같이 세계명작을 고른다.

학부모 한 분과 여학생 한 명, 남학생 두 명이 각자 책방 구석구석을 돌아본다. 남학생이 두툼한 장편소설을 골라 계산대에 놓는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이다. “어, 이 책을 어떻게 골랐어?” “그냥 마음이 끌려서요.” “아! 그래? 몇 학년이야?” “5학년이요.” ......

그 말에 나는 열심히 생각해본다. ‘자기 앞의 생’을 읽기에는 어린 나이이기는 하지만, 14살짜리 주인공과 책을 고른 학생의 눈에 ‘자기’라 던지 ‘생’이라는 언어에 마음이 갔다면 다분히 철학적인 싹이 아이라는 밭에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내어준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철학’ 이라는 책도 권하면서.

(‘그냥 마음이 끌려서요.’ 라는 아이의 말이 나의 마음을 울렸다. 어린 날 아무도 나에게 책에 대하여 말해 줄 사람이 없던 시절, 헌책방에 들어서서 무심히 책꽂이에 책 제목들을 읽어가노라면 마음이 끌리는 책을 꺼내어 펼쳐 보며 고르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 책들은 학교 교육을 받을 환경이 못 되었던 나에겐 스승들이자 일생의 귀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학생들 끼리 들어선 고학년생들은 벌써 초등생 티를 벗어난 의젓한 모습들이다. 어린이 칸 외에 청소년 장르와 그 외 각 장르들을 돌아본다.

“학생은 책을 좋아하는군”.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한다. “왜 좋아 졌을까?” “그냥요” “그렇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볼 수 있어서. 책은 사방으로 열린 문이거든, 알고 싶은 마음으로 들어서면 어느 장소이던, 어떤 생각이던, 보면서 감동으로 들어오거나 알아지는 것들을 우리 마음 밭 하드웨어에 담아 놓는 거거든, 그렇게 무심히 담아 나가다보면, 필요한때 좋은 생각으로 꺼내 쓰게 되더라고.” “네 그래요.”라고 답하며 생글생글 웃는 모습에서 나는 내심 놀란다. 초등 6년생의 말이 ‘그래요?’ 가 아니라 ‘그래요!’ 라고 답을 한다는 사실에 나는 흥이 나서 “그래서 자신이 바르게 알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펼쳐 보게 되면, 그 알고 싶은 마음을 돕는, 알게 하는 힘이 같이 한다는 거지”. 또 생글 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야기 도중 꽂혀있는 책 중에 철학이라는 단어가 보인다.

“철학이라는 말이 어렵게 생각 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끔 자신에 대한 궁금증을 마음으로 물어 볼 때가 있거든, 그런 생각이 철학의 시작이고 간단한 입문서를 보면서 자신이 궁금해 하는 답을 얻어 가는 게 책을 보는 일이지.” “그럼 무슨 책을 보면 좋을까요?” “사실은 명작 동화에도 많이 깃들어 있어, 하지만 가장 가깝게 해주는 책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제목의 책이 있어.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 작품인데, 우리나라와 세계의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해.” 책을 찾아 주면서 내심 놀라는 것은 70대와 초등생이 느끼는 이해의 폭이 다를 수는 있으나, 책을 놓고,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 속에서 열려가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있는 오늘의 아이들을 새롭게 읽는다. 책을 보고 안보는 차이와 기질에 문제들은 있겠지만, 아이들 속에 꿈틀대는 기의 흐름을 본다.

자신이 무엇을 골라야할지를 모르면서도 부모가 골라 주는 책을 못 마땅해 하는 표정에서, 무언가 목적은 있는데 부모와 소통이 다 안 되는 학생의 모습도 그저 좋아 보인다.

제일 우려했던 일은, 일례적인 책방 나들이가 될까봐 걱정 했었는데 아이들이 책방에서 책을 골라서 자기 것으로 취해가는 일을 즐거워 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한 셈이다.

약속한 날자가 하루 지나서, 남녀 두 아이와 엄마가 방문했는데, 날자가 지난줄 몰랐다면서 이야기 한다. 아직 서류가 끝나지 않았으니 고르셔도 된다고 하니, 좋아하면서 한참을 어린이 책에서 보다가 ‘와이’ 학습 만화 책 두 권을 들고 나온다. “이 책 두 권만 보겠대요.” “아 그래요, 아이들이 어떤 쪽을 좋아하지요?” “한 애는 옛날 얘기를 잘 읽어요, 남자애는 컴퓨터를 알고 싶대요.” “아! 그래요!” 나는 두툼한 만화로 된 ‘서동요’를 꺼내 준다. 아이가 좋아라 한다.

어머니에겐 역사 쪽에서 흔하지 않은 책을 골라서 “그래도 애들이 좋아하는 쪽으로 더 흥미를 느끼게 하려면 집에 이런 책을 비치해두시면 사진자료도 좋고, 글씨는 작지만 짧게 설명해놔서 고학년이 되도 도움이 되고 어머님이 보셔도 새로운 것이 많을 거예요.” 하며 어린이용 민속자료 모음과 민화와 만화로 된 맹꽁이 서당 인물 편을 권한다. “그렇겠네요!”

“아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가벼운 만화만 보게 되면 이제 4학년이 되는데, 학습언어가 조금씩 어려워지거든요! 알아듣지 못하게 되면 싫어지고요,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한 두 권씩이라도 집 책꽂이에 비치해 두면 학습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이제 4학년이니까 두꺼운 책을 두 권 씩만 방학 동안에 힘들더라도 읽어 내게 하면, 내심에 지구력이 있어져서 어렵게 생각되던 책도 고를 줄 알게 되지요.”

“그래도 애들이 하루에 무슨 책이라도 봐요.” “네 아주 좋은 일이에요. 그래도 지금은 고학년 올라갈 때니까 조금은 부모님이 도와 주셔야 될 거에요.” “그러네요.”

그렇게 마지막 가족이 인사를 하며 나가는 모습에 책방지기들은 이번 행사를 계획한 학교와 학생과 부모들께 박수를 보내는 마음으로 흐뭇해한다.

생각한 것보다 책방에서 지루해 하지 않는 아이들과 부모님들, 그리고 행복해하는 독서가를 만났다는 기쁨이 새로웠다. 끝없이 넓은 책 세계 속에서 작가들의 혼이 무엇이며, 삶이 무엇인지, 그 메시지들이 맑게 밀려드는 책방 풍경 속에 송월초교 가족들이 소풍 왔다가 희망을 뿌리며 돌아갔다.

‘책을 보니? 그러면 방학동안 장편 두 권쯤 읽어 내봐! 그 씨름을 마음에서 이기고 나면 머리도 많이 커있는 자신을 보고 흐믓해 할 거야,’ ‘그것은 어떤 사실을 듣고 또 보며 제대로 알아내기 위해 꼼꼼하게 읽어내는 자신의 힘을 키우는 작업이라 아무도 도와 줄 수 없고 자신 스스로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라고 아이들에 속삭여 준다.

아벨서점에는 한 달에 한두 번 들르는 학생이 있다. 두어 시간을 구석구석 뒤지며 책 여행을 한다. 한 명이나,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오는 그 학생의 다양한 독서 수준은,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높은 것을, 계산대에 올려놓는 책을 보며 가늠 한다.

송월초등학교의 이번 계획은 코로나19와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이번 코로나19는 세계를 흔들어 대면서 어쩌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나무를 번잡해진 세상에 심느라 땅에 삽질을 하는 진동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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