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오염, '정주의식'으로 정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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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오염, '정주의식'으로 정화하자
  • 박병상
  • 승인 2011.06.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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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in 칼럼] 박병상 /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지난 3일 오전 부평미군기지 주변지역 환경오염 기초조사를 위한 토양 시료채취에 앞서
인천시 관계자들이 홍미영 부평구청장 등에게 브리핑을 하고 있다.

최근 미군기지 오염이 새삼스레 부각되고 있다. 부평 미군기지 ‘캠프 마켓’ 안에서 경북 칠곡군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 묻었던 고엽제 성분이 옮겨져 처리되었다는 의혹이 일었고, 칠곡에 이어 부평까지, 한 치의 의혹이 없는 조사를 시민단체들이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부평 미군기지는 ‘군수품 재활용 유통 처리소’를 운영 중인데, 1987년 미군 공병단은 독성물질인 폴리염화비페닐 수백 드럼을 그곳에서 처리한 적 있다는 보고서를 밝힌 바 있다. 당시 잠자코 있던 환경부가 2008년과 2009년에 조사하니 토양은 기준치의 32배, 지하수는 2배 가까운 발암물질이 검출되었다고 했다. 발암물질 검출에 이어 고엽제 의혹까지 이는 그 부평 미군기지는 2016년 반환 예정이다.

베트남에 퍼붓다 남은 고엽제를 매립했던 미 퇴역군인이 양심선언을 하지 않았다면 캠프 캐럴의 인근 마을은 여전히 별 문제의식 없이 지나갔을지 모르고, 인천도 별 이의제기 없이 미군기지를 인수했을 가능성이 높다. 양심선언한 미국의 그 퇴역군인은 어쩌면 젊은 시절을 보낸 낙동강 변 칠곡군의 경치를 기억했을지 모른다. 얼렁뚱땅 파묻는 과정에서 고엽제가 몸에 묻어 평생 고생했을 테지만, 그 숨 막히게 아름다운 고장에서 이제껏 아무 것도 모르는 체 암으로 하나 둘 희생되는 주민의 아픔도 생각했겠지. 그이가 젊음을 한 때 바친 낙동강에 애정이 없었다면 뒤늦은 양심선언으로 국제 분란을 자초할 리 없었을 테지.

칠곡군과 부평의 미군기지만의 사정이 아니다. 부천도 그렇지만 이제까지 드러난 정황을 미루어볼 때, 전국 수백 군데의 미군기지가 다 비슷한 사정을 가졌을 게 틀림없다. 이제 겨우 부각되었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전국의 미군기지 주변은 늘 오염으로 몸살을 앓아오지 않았나. 미군은 우리 땅의 뜨내기다. 본국으로 떠나면 그만인 미군에게 한국의 기지는 정붙일 터전일 리 없다. 나중에 어떻게 되든, 일단 귀찮은 물질은 은근슬쩍 파묻어 유야무야 처리하면 그뿐이다. 기름으로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되든 말든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이 무책임한 사용을 보장하는데 걱정할 게 무엇이란 말인가. 미군의 허락이 없다면 어떤 한국인도 영내에 들어와 조사활동을 할 수 없다. 부평의 캠프 마켓 앞에서 현장조사를 요구하던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였다.

천만다행인 건, 2016년 캠프 마켓이 반환된다는 점보다 인천시민들이 그 땅이 오염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어쩌면 반환여부와 관계없이 분노했을지 모른다. 미군이 주둔하던 하지 않던, 거기는 분명히 인천의 땅이고, 인천에 가족과 함께 살아갈 후손의 터전이 아닌가. 미군이 영원히 그 자리를 점유하지 않으리란 건, 미국도 우리도 동의할 테고, 결국 되찾아야 할 내 땅이다. 잠시 빌려주었건만, 뜨내기의 분별없는 사용으로 발암물질에 오염되었다니! 땅 주인은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자. 빌린 땅을 오염시킨 자에게 주인이 잘못을 물을 수 없도록 협의된 SOFA는 부당하다. 따라서 공정하게 개정하라는 요구는 두말 필요 없이 합리적인데, 그런 SOFA 개정을 시민사회가 이제야 진지하게 바라보게 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예년에 없었던 정주의식이 표출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캠프 마켓이 어느 화학물질로 얼마나 오염되었는지 아직 모르지만 시민의 관심이 식지 않는 한, 반드시 정화될 것이다. 이제까지 겪은 경험상, 미국이 선뜻 우리의 뜻을 전폭 수용해 SOFA 규정을 변경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미군이 예산과 성의를 다해 정화하지 않는다 해도, 그 땅을 수용해 터전 삼을 우리가 어떻게든 정화시킬 것이다. 설사 미군이 정화한다 해도 자식을 그 자리에서 키울 우리가 마무리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과 미군에 SOFA 규정 개정과 기지의 정화 요구에서 그치면 안 된다. 이 참에 시민의 정주의식을 높일 터전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므로 5년 뒤 반환된 인천시민은 그 땅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마음을 다시 모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반환 후 어떤 모습으로 활용할지 윤곽이 어느 정도 잡혀 있을 테지만, 관심을 가진 시민들이 의견을 사전에 충분하게 제시했고, 납득할 정도로 논의에 참여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부평 미군가지로 이어진 이번 고엽제 파동은 시민들의 정주의식 고취의 기회로 승화될 필요가 있다. 부평은 물론이고 부천과 칠곡, 그리고 전국에 흩어진 미군기지, 그리고 방치된 공장지대, 파괴된 갯벌과 4대강이 정주의식을 가진 시민에 의해 정화되고 복구되며 복원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나은 터전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게 틀림없다. 자식들에게 모처럼 면이 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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