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 관음의 성지 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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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 관음의 성지 보문사
  • 박상희
  • 승인 2021.08.23 10:4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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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읽는 도시, 인천]
(20) 낙가산에서 바라본 서해 낙조
박상희_소원이 이루어지는 계단_23x31cm_종이 위에 수채_2021
박상희_소원이 이루어지는 계단_23x31cm_종이 위에 수채_2021

 

보문사는 강화 석모도의 낙가산 중턱에 있는 오래된 사찰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635년)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라 일컫는 보덕각시와 47일을 살고도 알아보지 못하여 참회하였다는 전설 속의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강화도로 내려와 창건한 고찰이다. 

보문사는 한국에서 빼어난 바닷가 풍경을 배경으로 절을 지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해수 관음 성지 중 하나로 남해의 보리암, 양양의 낙산사, 여수 향일암과 더불어 손꼽히는 관음 도량이다. 강화도에는 국가 보물 178호로 지정될 만큼 화려하고 정교한 조각 장식으로 지어진 전등사가 유명하지만, 보문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전등사가 나라의 환란마다 국가를 지키고 왕권을 보호하는데 치중하였다면 보문사는 세속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의 기도를 들어주고 깨달음을 주면서 대중을 위해 존재하는 곳인 것 같다.

절 입구부터 수능시험을 위한 백일기도 등 참여 불자님을 모시는 기도안내문이 여럿 보였다. 이곳 관음성지는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란 뜻으로 여기에서 진심으로 기도하면 그 어느 곳보다 가피(불교에서 부처나 보살이 중생에게 힘을 주는 일)를 잘 받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보문사 중심 도량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 중턱 위에 있는 마애관세음보살 앞은 물론이고 여기저기에서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유난히 많아 보였고, 기도를 주도하는 스님에게서 참여하는 불자들의 주소와 이름이 염불처럼 연이어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허황되지만 소원을 읊조리고 있었다.

보문사는 석모도의 연륙교가 생겨난 이후 사람이 훨씬 많아진 것 같았고, 비가 오는 휴일임에도 많은 이들이 가팔라지는 절의 입구부터 북적였다. 처음에 보문사를 방문했을 때는 전혀 정보 없이 갔던터라 입구부터 급격하게 기울어진 경사도에 당황스러웠고, 여느 절과는 다르게 볼거리가 유난히 많아 불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꽤 흥미롭게 다녀간 기억이 있다.

절의 입구 주차장에서 보문사 일주문을 향하는 길옆에 거의 가로로 누운 노송도 볼만한데 급격하게 경사진 곳을 올라 숨도 고르기전에 발견한 엄청 많은 수의 나한상과 사리탑은 그 자체로 멋진 조형물처럼 보였다. 자세히 보니 오백 개의 나한상은 모습과 표정이 모두 달라 수백 개의 보살님이 원형으로 나열되어 있어 보는 이를 압도하는 힘이 느껴졌다. 그 옆의 높은 계단을 올라가 도량안을 들어가보니 이번에는 엄청나게 큰 부처님이 누워계셨다. 부처님이 앉아계시지 않고 누워있으니 뭔가 이상하기도 하여 그 옆에 쓰인 안내문을 보니 부처님이 열반하여 마지막으로 누우신 모습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과연 어떤 말씀을 하셨을까 궁금하기도 하였는데 안내문을 읽어보니 ‘자등명 법등명’이라는 유언을 남기셨으며, 그 뜻은 ‘자기 자신을 등불을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라. 부지런히 정진하라’고 하셨다 한다. 부처님은 종교에 의지하라고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고 의지하라니…. 여느 종교인의 말씀과는 일치하지 않는 듯하였지만, 법문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뭔가 신선한 말씀이었다. 꾸준히 깨달음으로 정진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인지... 다른 것을 의지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이 가벼우면서도 동시에 책임감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박상희_마애관세음보살__23x31cm_종이 위에 수채_2021
박상희_마애관세음보살__23x31cm_종이 위에 수채_2021

 

 

와불전을 내려와 오른쪽을 바라보니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 아래 문이 있고 그 안은 또 하나의 사원이 있었다. 이곳이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된 암벽 아래 천연 석굴사원이다.

수령이 약 600년 된 향나무를 지나 화려한 단청이 웅장하게 어우러진 극락보전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 계단 앞에 섰다. 처음에는 이렇게 계단이 많아 질지 모르고 겁 없이 올라갔다가 숨이 턱까지 헐떡여 중간중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눈썹바위까지 올라갈 욕심과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으로 기어이 계단을 올라가 고개를 돌려보니 서해의 풍경에 그만 힘들었던 시간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어쩜 이런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니 오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뿐이었다.

막바지 힘을 짜내어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 새겨진 마애관세음 보살과 마주하자 정말이지 감격의 순간이며 누구든지 불심이 샘솟아 나는 코스임에 틀림없었다. 마애관세음 보살이 새겨진 바위를 등 뒤로 하고 바라본 서해의 낙조 풍경은 말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성스럽기까지 하였다.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9호인 마애관세음 보살이 새겨진 왼쪽에는 뜻밖에도 일제강점기 한국의 문화재를 지켜낸 대 수장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의 명문이 발견되었다. 그 명문은 보문사의 불사를 후원했다는 기록으로 (학술계간지 <문화재> 2020년 가을호) 어려운 시절에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고 가꾼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전국적으로 펼쳐진 활약이 다시 한번 돋보이는 현장이었으며 존경심과 감사한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강화도의 보문사는 마치 다채로운 음식이 준비된 뷔페와 같이 볼거리가 다양해 특별한 재미와 감동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런데 강화도 내에 회정대사가 창건한 절이 또 하나 있는데 그곳은 마니산 동쪽 기슭에 있는 정수사이다. 재미있는 점은 정수사는 보문사와 전혀 다르게 매우 소박하고 울창한 숲속에 아담하게 자리한 모습이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고상함 마저 드는 곳이다. 시간이 된다면 두 절을 방문하여 비교해 보면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21. 08. 20 글과 그림 박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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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2021-08-25 10:17:16
아이들 모두 마애석불에 올라가서 그리면 더 좋았을텐데요 ㅎ 거기서 본 풍경도 멋지고 마애석불도 멋지더군요~ 감사합니다^^

이진우 2021-08-24 21:34:49
아이들이랑 1박2일로 엠티가서
보문사의 목어를 그렸던 기억이 있네요.
저기 위에 마애불상은 아이들 일부만 올라갔었는데
보문사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은 그리고
그림보다 저기 올라갔다 오는 아이들은 대신 그림을 그리지 않았거든요 ㅎㅎㅎ

언제고 보문사 마애석불 보러갈겁니다.
마애석불 모노톤으로 잘 담으셨어요.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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