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파트를 생각한다 - 흉물인가, 미래주거 모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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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파트를 생각한다 - 흉물인가, 미래주거 모델인가?
  • 조항필
  • 승인 2022.02.0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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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칼럼] 한국의 아파트① - 조항필 / 감정평가사
인천 검단신도시 전경
인천 검단신도시 전경

지난 2007년 ‘아파트 공화국’의 저자인 프랑스의 여성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전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서울의 아파트를 보며, 궁극적으로 “대단지 아파트는 서울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로 만들고 있다.”분석했다.

그는 왜 아파트가 서울의 지배적인 주거형태가 됐으며 한국의 중산층은 왜 아파트에 집착하는지에 대해 “서울은 땅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아서 아파트라는 거주형태 선택이 불가피했다”는 일반적 분석 대신, 1970~1980년대 산업화를 주도한 ‘권위주의 정권’과 ‘재벌’ ‘중산층’이 맺은 ‘3각 동맹’이 아파트를 상위 계급화하고, 나아가 한국인 욕망의 절대적 상징으로 올려 놓았다며 결국은 ‘지속될 수 없을 것’으로 분석했던 것이다.

그의 연구는 2003년 발표되고, 2007년 이를 토대로 ‘아파트 공화국’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1980년 7% 수준이었던 한국의 아파트 비중이 1990년 22.7%, 2000년에는 47.7%로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리고 2020년에 62.9%로 1990년 대비, 10년 마다 배로 성장해 명실공히 한국의 대표 주거양식으로 자리하고 있다. 반면, 1980년 87.5%에 달했던 단독주택은 2020년 31.0%로 축소됐다. 도시별로 아파트 비중을 보면, 세종시가 75%로 1위, 광주가 66%, 대구가 56%로 3위를 차지하고, 인천은 광역시 중 가장 낮은 54.9%, 서울은 42.8%로 강원도의 46.2%보다 낮다. 서울도 한창 진행되고 있는 강북지역 재개발입주가 시작되면 저 수치도 빠르게 높아질게 분명하다.

필자도 “아파트공화국” 출간 당시, 토건국가 한국의 한 단면으로서, 아파트로 획일화 되어가는 한국주거형태의 문제에 대해 그의 분석에 깊이 공감했다. 단독주택이 늘어선 미국이나, 고풍스런 유럽도시에 비해, 우리의 아파트는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른 불가피한 선택으로, 우리나라의 치부처럼 여겨졌다. 강남 아파트냐, 수도권 변방의 아파트냐에 따라, 임대주택에 사느냐,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나, 브랜드 있는 아파트단지에 사느냐에 따라, 새로운 사회계급으로 구분되고, 옆집도 잘 모르는 아파트의 폐쇄성 등은 우리 아파트 문화의 부끄러운 단면으로만 생각해 왔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 필자의 생각과 달리 한국의 아파트는 진화해 왔고, 한국인의 2/3가 가장 선호하는 주거형태는 아파트며, 앞으로도 이러한 선호는 당분간 변화의 조짐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베트남 호치민시나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도 한국의 ‘자이아파트’가 건설되고 있고, 중동의 두바이나, 이라크에서는 우리나라의 소도시급 신도시를 옮겨놓은 듯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다. 땅 덩어리가 큰 중국에서도 신도시는 모두 한국의 아파트 단지를 옮겨 놓은 것 같다. 땅 덩어리가 작은 나라의 어쩔수 없는 선택이 아닌 것이다. 세계적으로 한국의 아파트 단지식 주거문화는 새로운 신도시건설의 모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아파트는 1960년대 제1세대 아파트가 등장한 이래, 현재 4세대 아파트로 진화해 왔다. 1세대 아파트는 이전의 소규모 아파트와 달리, 대규모 주택용지에 6층 건물 10개동이 지어진 서울의 ‘마포아파트’를 시작으로, 70~80년대를 거쳐 반포, 잠실, 둔촌주공아파트 등의 저층 주공아파트의 시대를 거쳤다. 2세대는 1990년대 1기 신도시를 중심으로 판상형 고층아파트로 재건축되는 시기다. 소위 ‘성냥갑’ 아파트가 한국의 보편적 주거형태로 부각되고, 그 '성냥갑'으로 획일화된 아파트 공화국 이미지을 만들었던 시기이다.

2세대까지는 유럽의 부정적 이미지로 각인된 임대아파트나,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아파트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부터 한국의 아파트는 3세대 아파트로 진화하며 달라졌다. 시공회사의 브랜드를 내걸고 고급화 전략이 추구되면서 주차공간의 지하화와 그 지상에 단지공원을 조성하고, 실내 운동시설 등 각종 공동편의시설을 결합한 자립형 단지로 변모한 것이다. 이어 2010년대부터는 한층 더 발전한 정보기술(IT) 기반시설에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스마트홈 주거시스템이 접목돠며 주목받았다. 4세대형 아파트가 등장, 스마트 아파트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로, 빠른 인터넷, 어디서나 터지는 와이파이, 어디로든 배달되는 “배달문화”, 밤에도 꺼리김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치안이라고 한다. 이러한 한국 도시문화의 장점이 아파트 단지로 집적화되지 않았다면 과연, 인터넷 등 정보통신 인프라, 신속한 배달 시스템, 세분화된 재활용 분리시스템 등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구조화된 도시형태가 친환경, 4차 산업혁명시대의 가장 효율적인 주거모델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줄레조는 흉물스럽게 쳐다본 한국의 아파트지만, 우리에게 아파트는 빠른 시간 내에 주거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주었고, 오늘날 싫든 좋든 국민의 대다수가 살고 있는 삶의 공간이 되었다. 한때는 유럽식 삶의 방식이 전세계가 선망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외국인도 한국 아파트의 편의성과 스마트 홈시스템에 놀라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한국의 아파트단지 중심의 주거문화는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 걸맞는 가장 효율적인 주거모델이 될지도 모른다.

최근 3년여간 급등한 아파트 가격, 빈부격차의 상징화 등으로 사회적 갈등이 심화돼 아직 한국의 아파트는 해결되어야 할 문제점이 매우 많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 삶의 주류적 공간으로서 마주하여 적극적으로 반드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를 해결해 나갈 때, 아파트 단지는 더 이상 우리의 치부가 아니라, 4차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선진적인 주거형태로 자리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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