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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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있다
  • 박교연
  • 승인 2022.11.10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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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어려운 일이지만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있다. 게임 비즈니스 모델로 예를 들자면, 게임은 모바일로 넘어오면서 다양한 사람을 대상으로 삼고 발전해왔다. 돈은 적지만 여유시간이 많은 사람, 일 시간은 길지만 업무 강도가 낮아서 게임을 병행할 수 있는 사람, 돈은 많지만 시간이 없는 사람 등을 나눠서 각각에 맞추어 접근한다. 덕분에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세상에 접속해서 본인이 편한 방식으로 성취를 얻을 수 있다.

이걸 인문학에 적용해보면,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혁신을 이루면 된다. 그러다 보면 그게 쌓여서 제도적, 사회 문화적 개혁으로 이어질 것이다. 페미니즘도 마찬가지고. 모든 것은 작은 실천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4B 운동 같은 과격한 지향점을 갖는 운동은 좋은 전략이 아니다. 4B 운동은 비연애, 비섹스, 비혼, 비출산을 지향하는 운동이다. 거기에 보통 비소비, 비돕비를 더한다.(비돕비는 B운동 참여자끼리 서로 돕는 걸 말한다.) 가부장제의 근본을 결혼제도라 보고 거기에 반기를 들겠다는 생각은 이해하나, 이건 비즈니스 모델로서 최악이다. 광고효과나 전시효과도 썩 좋지 못하다.

개인적 삶의 선택은 결코 대중운동의 지향점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도식화된 모델은 많은 이탈자를 낳는다. 페미니즘 운동의 목적은 모두의 상식을 개선하는 것에 있다. 그러려면 일상에 침투하여 누구나 실천할 수 있고 누구나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단계적으로 실천방안이 제시되어야 하며, 운동이 도달해야 할 최종단계가 열린 상태여야 한다. 오늘도 조그맣게 이바지했다는 보람을 느끼게 하고, 유대감과 연대감을 저금통에 동전을 모으듯이 쌓아가게 하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4B 운동은 마치 첫 만남에 인생의 모든 것을 정형화된 틀에 맞춰 살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심지어 이게 와전되어 페미니스트의 성취척도를 가늠하는 데 쓰이고 있어서, 훌륭한 기혼 페미니스트들이 온라인 운동을 포기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럼 이들이 그들의 공백을 잘 메꿨느냐? 그렇지 않다. 한 명 한 명이 귀한 운동영역에서 누군가를 대체하는 건 쉽지 않다.

마케팅 영역에서 비즈니스 모델(BM)은 만드는 게 끝이 아니다. 어떻게 단계적으로 제시하고, 사람들의 삶에 매끄럽게 스며들까를 고민하는 후속 과정이 남아있다. 아니, 후속 과정이 더 중요하다. 훌륭한 사유를 통해 코르셋도, 가부장제도, 자본주의도 거부하겠다는 건 좋으나, 그걸 어떻게 많은 여성의 삶에 녹여낼지는 더 큰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작년 한 해 동안 재보궐선거 및 국민의 힘 전당대회 등을 거치며 페미니즘이 정치권의 화두로 등장했다. 그리고 2021년 6월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절반 이상이 페미니즘 및 페미니스트에 대한 거부감을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남성은 전 세대에서 거부감이 든다는 응답이 높았으며, 여성도 거부감이 든다는 응답과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각각 42.8%와 41.7%로 팽팽히 맞섰다.

정치권에 불려 나가 자극적인 의제로 소모된 페미니즘을 다시 우리의 삶의 주요한 명제로 돌려주는 것, 그것이 지금의 페미니즘이 마주하고 있는 가장 큰 과제이다. 여성혐오를 분석하고 모든 세대, 모든 성별에게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제시해야 한다.

물론 이건 한 단체가,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상에서 겪는 작은 차별을 포착하고 그에 저항하는 경험, 그런 용기에 공감하고 응원하는 경험, 그리고 그걸 널리 알리는 경험이 모두에게 쌓여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작은 차별부터 개선해보는 게 어떨까. 작은 생각. 작은 말. 작은 용기. 그 모든 게 결국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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