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아직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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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아직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여성들
  • 박교연
  • 승인 2023.01.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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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박교연 / '페이지터너' 활동가

제야의 종이 울리고 텔레비전은 신년에 태어난 첫 아이를 축하한다. 그리고 뉴스는 어느새 출생률이 더 낮아졌다며 대한민국 인구감소, 인구절벽의 심각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출생률 증대를 위해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아니다. 기존의 예산도 너무 많았다. 집값 1% 오르면 출생률은 7%가 하락한다. 종합부동산세를 줄이고 재산세를 내려야 한다. 국회에 모여 본인의 이익과 밀접한 이론으로 갑론을박을 펼치지만, 그 어디에도 이 문제의 원인이 대한민국 여성의 고단한 삶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피임은 놀랍게도 투쟁의 산물이다. 그리고 우리 세대는 결혼과 재생산을 선택할 수 있는 역사상 최초의 세대다. 비혼이 여성성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삶의 다른 방향성이라는 것을 당당히 선언할 수 있는 첫 세대이다. 그걸 염두에 두면 출생률의 난제는 여성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한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피임은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권리니까.

지금부터 약 백 년 전, 미국의 간호사이자 사회운동가 마거릿 생어가 “여성의 근본적인 자유는 어머니가 될 것인지, 몇 명의 아이를 가질 것인지 선택하는 데에 있다”라고 말하기 전까지 모든 것은 불법이었다. 피임을 설명하는 출판물도, 피임과 임신중절도 불법이었기에 여성은 임신이 되면 낳았고, 기르다가 또 낳았고, 낳다가 죽었다.

1873년 미국에서 입법된 컴스탁 법(Comstock Laws)은 피임과 산아제한에 관한 공적 담론을 금지해왔다. 이 법은 미국 우정공사(USPS)가 음란, 피임기구와 약, 성기구 등 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우편물을 전달하면 범죄로 규정했고, 점차 다른 운송 수단이나 개인이 해당 내용의 출판물을 판매, 대여, 전달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이 모든 게 남성지도자 입장에선 도덕적으로 불건전했기 때문이다.

생어는 간호사로 일할 때의 경험을 예로 들며 피임법 보급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자신의 어머니, 주변, 안타까운 색스 부인의 사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다. 1912년 여름, 응급 전화를 받고 달려간 생어는 색스 부인이 자가 임신중절을 하려고 먹은 독극물 때문에 빈사 상태에 빠진 걸 보았다. 다행히 목숨을 구한 색스 부인은 의사에게 임신을 막을 수 없느냐고 물었지만, 의사는 그저 남편과 각방을 쓰는 걸 권고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몇 달 뒤, 다시 임신한 색스 부인은 사망했다.

비극의 해결책을 찾다가 생어는 유럽에서 산아제한 방법을 접했고, 답은 피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1914년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여성 반란(The Woman Rebel)』이라는 신문을 발간하여 여성이 임신이라는 생물학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전면으로 컴스탁 법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1916년 산아제한 클리닉 개설과 폐지, 1923년 산아제한 연맹 개설, 산아제한 클리닉 재개설, 여성용 피임기구 밀수, 1929년 산아제한입법 국가위원회 조직 등 생어의 운동은 계속됐다. 그리고 1932년, 70년 동안 자리를 지켜 온 컴스탁 법은 결국 폐지됐다.

사실 인구조절론은, 기하급수적인 인구 증가가 산술급수적인 식량 생산을 초과하므로 자연적으로 빈곤이 발생한다는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 이론에 기대있다. 그리고 산아제한은 빈곤층의 수를 감소시켜야 한다고 믿는 인구조절론자와 우생학자의 머리에서 나온 방책이다. 하지만 당시 주류였던 이 이론은 생어에게 여성해방에 대한 영감을 주었고, 1950년 생물학자 핀커스에게 피임약 개발을 의뢰할 수 있게 했다.
 

당시 핀커스는 토끼의 체외 수정을 실험하며 시험관을 이용한 포유류 재생산을 연구 중에 있었다. 생어의 저렴하며, 사용하기 쉽고, 절대 실패하지 않는 피임약 개발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핀커스는 1937년의 연구를 떠올린다. 여성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 주입이 토끼에서 배란을 막았다는 연구였다. 자연은 이미 피임방법을 자체적으로 마련했을 거라는 믿음 아래, 핀커스는 프로게스테론을 경구 투여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그리고 1960년 최초의 경구 투여 피임약 이노비드가 출시된다.

약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가격은 10불로, 현재 가치로는 거의 10만 원에 가까운 가격임에도 많은 여성이 약을 처방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첫해에 40만 명의 여성이 처방을 받았고, 1963년 가격이 내려가면서, 처방받는 여성의 수는 230만 명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그 약(The Pill)” 전후로 세상은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다. 임신에서 해방된 여성은 교육과 노동으로 진출했다.

생어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결국 문제가 되는 부분이 ‘강제성’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다. 그 누구도 여성 본인이 가진 재생산권을 좌우할 수 없다. 옛날에도 못 했고 지금은 더더욱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출생률이 걱정된다면, 대한민국은 아이가 태어나 행복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여성이 재생산하고 싶도록, 예비 양육자가 아이를 기르는 꿈을 꿀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장치 없이 출생률 회복은 올해도 내년에도 어려울 것이다. 2023년 대한민국에서 아직 많은 여성은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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