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나니, 올 해는 설 연휴가 유난히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온갖 잡다한 정치 기사로 마음만 번거롭게 만드는 TV 시청도 질리고, 마땅히 보고 싶은 영화도 없다. 도서관도 피트니스 센터도 문을 닫았다.

전부터 한번 방문해 보고 싶었던 수도사로 향했다. 필자의 집에서 걸어서 7분쯤 거리다.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에 자리 잡은 수도사는 도심 속의 사찰로 유명하다. 지금처럼 완전히 도시화되기 이전 한적할 때부터 이곳에 자리잡고 있어 기억도 새롭다.

수도사는 태고종에 속하는 사찰로 석바위 사거리에서 시청 후문으로 가는 길 우편에 있다. 번잡한 도심에서 한발 비켜 들어서니 어느새 고요가 자리 잡은 사찰 경내다.

밖에서 사찰의 일주문만 보고는 경내가 별로 넓지 않은 줄 알았는데 안에 들어서 보니 대지도 넓고(3,000평) 미륵상과 범종각을 비롯하여 대웅전, 삼천불전, 무량수전, 극락보전, 삼성각, 석탑 등이 짜임새 있게 들어서 있다.

도심 속이건만 깊은 산속에 있는 절의 조용한 분위기를 풍긴다.

경내 한 쪽에 몇 개의 공덕비와 함께 「통일기원 일붕선시비(統一祈願一鵬禪詩碑)」가 있다. 수도사 혜운 용복 스님의 그간의 행적을 보여주는 듯하다.

혜운 용복 스님(85)은 어린 시절 해인사 주지스님의 설법을 듣다가 자신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국 사찰을 돌며 수행을 계속하였다.

1968년 인천 석암산(원래 지명은 휴양산)에 수도사(修道寺)를 창건했다.

이 자리는 1933년 벽해 스님이 토굴에서 기도했던 곳이다. 1972년에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로 희망의 신앙을 상징하는 미륵불상을 중건했다.

그 후 범종각과 석탑 등을 세워 지금은 대지 3,000평에 2,000천평 규모의 법당을 지닌 인천의 대표 사찰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전래된 것은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때였다. 그 이후 백제와 신라에 불교가 전래되어 통일신라와 고려시대까지 천년동안을 국교로서의 위상을 자랑했었다.

어찌 보면 우리 민족의 피 속에는 불교적인 DNA가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산속 고찰(古刹)에서 들려오는 맑은 풍경(風磬)소리에 세속의 번뇌가 일순 씻겨 나가는듯함을 느끼고, 깊은 산속 쇠락한 절의 처마에 매달린 물고기 모양의 풍경에서 많은 시인들이 영감을 얻고 있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닐까?

특히 불교는 개인의 깨달음과 더불어 나라가 위급할 때마다 호국불교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 개인 뿐 아니라 국가를 보호하는 성격이 강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사명대사 유정은 그의 스승인 서사대사 휴정의 격문에 호응하여 의승군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웠다.

그는 승병장으로 전투에 직접 참여하여 큰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고, 전쟁이 끝난 후 일본군과의 강화교섭 과정에서 조정을 대표하여 국교 재개와 조선포로 송환에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일제 강점기 1919년 3.1 운동의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33인 중 한분인 한용운도 스님의 신분이었다. 이러한 호국 불교로서의 성격은 수도사 혜운 스님에게도 맥맥히 흐르고 있는 듯하다.

그는 한국불교신문사 사장을 역임했으며 인천불교연합회장을 18년간 수행했다.

국정자문회의 위원을 지냈고, 14, 15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 운영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인천부의장직을 15대, 18대 두 번에 걸쳐 수행하였다.

종교인으로서 중생의 깨달음을 돕고 사회발전에 헌신한 공으로 그는 국민훈장목련장, 동백장 등 수많은 훈포장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 또한 주인이 없는데, 어차피 내 것이 아닌데, 무엇을 자랑하고 집착하겠는가? 잠시 빌려 쓰다 갈 뿐입니다”라는 말로 자신의 심경을 내비친다.

인천이 북한의 지척에 위치해 있고 이북에서 피난 온 수많은 이산가족이 삶의 터전을 가꾸어가고 있는 곳이므로 무엇보다 남북통일이 중요한 과업임을 믿고 이를 위한 실천에 힘쓰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통일을 위한 각종 사업과 봉사에 끊임없이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불교계의 최고 원로격인 한국불교승정이며 대종사이다.

설 연휴들어 가장 추운 날씨임에도 법당에서는 〈국운융창, 시민행복기원 법회〉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 법회에는 유정복 시장님도 참석하였다.

법회에서 들려오는 경문 소리 은은히 울려 퍼지는 수도사 경내를 한 바퀴 돌고 나오는 내 가슴속이 어느새 한결 따뜻해진다.